서울 전역에 사상 처음으로 폭염중대경보가 발효됐다. 기상청은 '생명을 위협하는 더위'라며 야외활동 즉시 중단을 권고한 가운데 일부 어르신들 사이에서 공항이 사실상의 피서지로 자리 잡고 있다.
4일 복수의 매체 보도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 내부 벤치에서 장기판을 펼쳐놓고 둘러앉아 있거나 목재 마루에 자리를 깔고 신발을 벗고 쉬는 모습의 이용객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의 정체는 폭염을 피해 공항으로 몰려든 어르신들이다. 이런 풍경은 올해가 처음도 아니다. 수년동안 여름철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에서 비슷한 모습이 발견된 바 있다.
어르신들이 공항으로 피서를 오는 이유는 일관적이다. 집에서 에어컨을 가동하기엔 냉방비가 부담되고 카페에서 피서를 하기엔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인천공항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어르신들이 대합실에 계시는 것을 확인했지만 24시간 계시는 건 아니다"며 "대중교통을 이용해 오셨다가 밤에 돌아가시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인천국제공항은 24시간 냉방이 가동되고 터미널 내부 곳곳에 벤치와 음수대가 설치돼 있어 방문객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 김포공항에서 한 매체와 인터뷰한 어르신들은 "대합실은 추울 정도로 시원한 데다 물을 마음대로 마실 수 있어 친구들과 매일 온다", "도시락과 커피를 준비해와 먹을 수 있어 돈 한 푼 안 들이고 시원하게 여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공항"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무료 시설과 냉방 공간 이용을 위해 공항으로 피서를 간다는 명분은 확실하지만 서울에는 무더위쉼터가 4017곳 있다. 걸어서 닿을 쉼터를 두고 왕복 두세 시간 공항으로 가는 이 행렬은 개인의 취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실마리는 서울시가 공개한 데이터 안에 있었다.
CBS노컷뉴스가 '서울 열린데이터광장'에 공개된 '서울시 무더위쉼터' 현황 자료(8월 3일 기준) 4017곳을 전수 분석한 결과, 70.0%인 2813곳이 경로당 등 회원만 이용할 수 있는 '회원이용시설'로 분류돼 있었다. 특정 계층만 이용하는 시설로 넓히면 71.5%에 이른다. 이 가운데 "누구나 이용 가능"에 동의했다고 명시된 곳은 202곳에 그쳤다. 쉼터 지도를 보고 찾아가려 해도 회원이 아니면 망설여지는 구조다.
쉼터 문이 열리는 조건도 까다롭다. 운영 조건이 기재된 1376곳을 분석하면 주말·공휴일 미운영을 명시한 곳이 366곳이었다. '주말·공휴일은 폭염 중대경보 시에만 운영'처럼 특보가 발효돼야만 주말이나 야간에 문을 여는 조건부 운영도 145곳이었다. 23곳은 두 조건에 모두 해당했다.
여기에 평일 영업시간에만 이용할 수 있는 금융기관 165곳과 공공청사 475곳까지 감안하면, 경로당이 닫는 저녁이나 주말에 실제로 갈 수 있는 쉼터는 지정 숫자보다 훨씬 적어진다.
어르신들이 공항으로 가는 이유가 여기서 설명된다. 자격을 묻지 않고, 연중무휴로 냉방이 가동되고, 지하철로 닿을 수 있는 공간. 쉼터 데이터에 없는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 공항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쉼터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 무더위쉼터는 9만 3천여 곳에 이른다. 서울에 처음 내려진 폭염중대경보는 야외활동을 멈추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갈 수 있는 문 열린 쉼터는 현실적으로 부족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