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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 박성태> 오늘 2부에서는 요즘 화제의 영화죠. 영화 오디세이에 대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영화 오디세이가 주목받으면서 덩달아 책 오디세이아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그리고 서양 고전, 우리나라의 가장 전문가십니다. 김헌 교수와 함께 오디세이에 관련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다.
◆ 김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박성태> 안녕하십니까. 먼저 영화 오디세이. 교수님께서는 사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30년 이상 연구하고 제가 다른 유튜브에서도 봤습니다. 가장 전문가시고 너무 재미있게 또 설명을 해 주시더라고요. 그런데 교수님이 영화를 보셨다고 들었는데.
◆ 김헌> 지난 토요일에 봤습니다.
◇ 박성태> 지난 토요일이에요? 저도 사실 오늘 방송 때문에 어제 봤습니다
◆ 김헌> 그러시군요.
◇ 박성태> 교수님 보시고 원래 오디세이아 전문가신데 영화에서 가장 주목해서 보신 점은 어떤 겁니까?
◆ 김헌> 일단 제가 서양 고전학자이기 때문에 가장 주목해 봤던 건 형식적인 측면이었습니다. 이게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구술 문학의 산물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구술 문학적 특징을 어떻게 영화로 잘 표현했는가, 이런 게 저는 굉장히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오디세이아라는 게 처음부터 이렇게 책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거든요. 근데 우리는 책을 본다면 이렇게 보다가 모르면 앞으로 가고 다시 갔다가 또 오기도 하고 이렇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게 책으로 읽는 오디세이아라고 한다면.
◇ 박성태> 그렇죠.
◆ 김헌> 구술 문학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말이 우리 머릿속에 들어오고 그 말이 들어오는 거에 따라 영상을 이렇게 만들어 나가잖아요. 그런 게 저는 그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과 같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영화를 보면서 앞으로 갈 수가 없잖아요. 기억에 의존해서 그리고 주는 대로 쭉 따라가는데 이런 이미지 형성 방식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의 원작과 영화의 메커니즘이 같다 이런 점에 주목하면서.
◇ 박성태> 호메로스가 처음에 그러면 오디세이를 얘기했을 때와 이 영화가 같은 방식으로 풀어가는구나라는 거군요.
◆ 김헌> 그렇죠. 예를 들면 우리나라 판소리를 듣는다든가 영어에 랩을 할 때 우리가 듣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호메로스를 처음에 들었다라고 보시면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이 놀란 영화에서도 첫머리에 그게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트래비스 스콧이 딱 나오면서 래퍼로서의 아우라를 딱 비춰주는데 이게 구슬 문학으로 시작된 거야, 이 구술 문학으로 전달됐던 거야 하는 거를 선언하듯이 들려주는 거여서 너무나 좋았고요.
◇ 박성태> 여기에 이제 스포일러가 약간 있습니다. 그런데 뭐 그렇게 뭐 범인은 절름발이야 같은 스포일러는 아니기 때문에 그냥 보시면 되는데 지팡이를 짚으면서 누군가 마치 음유시인이 오디세이의 얘기를 하는 첫 장면.
◆ 김헌> 그렇죠, 예. 그리고 이 호메로스 서사시라는 게 특별한 은율이 있거든요. 헥사메트론이라는 은율인데 이게 여섯 도로 이렇게 돼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단단단 단단단 단단단 이렇게 하면서 쭉 진행이 되거든요. 그러니까 이거를 계속 듣다가 보면 마치 주문에 걸리듯이 최면에 이렇게 빠져드는 것처럼 노래에 빠져들거든요. 이런 것을 찾아내서 놀란도 영상을 만들 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요소, ost도 굉장히 신경을 써서. 저는 이 사람이 그 호메로스의 원래의 모습, 그러니까 원래 공연되는 모습을 영화 속에 구현하려고 했구나, 이런 게 너무 잘 느껴졌고요.
◇ 박성태> 그렇군요. 그러면 호메로스는 원래 BC 8세기 정도죠?
◆ 김헌> 9세기, 8세기 사이에 활동했던.
◇ 박성태> 음유 시인이잖아요.
◆ 김헌> 그렇죠.
◇ 박성태> 그래서 본인이 어떻게 듣고 또는 조금 가미하는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했던 건데, 이 장면을 놀란 감독이 그대로 영화로 만들었다라는 그런 게 있는 거군요.
◆ 김헌> 그렇죠, 영화의 흐름 자체. 그리고 그 관객들을 몰입하게 하는 방식도 비슷하다고 생각이 돼요. 그게 고대에서는 호메로스를 뭐라고까지 얘기했냐면 호메로스 작품에 나오는 세이렌과 같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 거기에 빠져들어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계속 그 노래를 듣고 싶어 하기 때문에 호메로스를 하나의 세이렌에 비유하곤 했거든요.
◇ 박성태> 맨 첫 장면에 나와서 지팡이를 탕 치면서 트로이 전쟁 얘기를 하는 사람, 이 사람이 호메로스라고 보면 되겠군요.
◆ 김헌> 그렇죠. 호메로스를 대신하는 그런 거라고 볼 수 있고. 저는 그런 점에서 호메로스가 구술 문학 속에서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것처럼 저도 3시간 가깝잖아요, 이게. 그런데 그걸 쭉 들으면서 거기에 그냥 몰입해 갖고 빠져드는 걸 보면서 이 사람은 21세기 세이렌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박성태> 그러면 영화 관객들에게 마치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빠져들게 한 구성이다. 놀란 감독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보십니까?
◆ 김헌> 예, 저는 그렇게 느꼈고요. 그 이야기를 이렇게 끌어가는 방식이라든가 음악적인 요소를 집어넣는 것과 그걸 바라봤을 때 제 반응을 보니까 제가 마치 호메로스의 음유시를 들으면서 빠져드는 것처럼 그리고 호메로스의 별명을 세이렌이라고 아까 소개해 드렸는데 세이렌의 목 목소리에 빠져든 것처럼 영화 끝난 다음에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다음에 또 봐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될 만큼 이렇게 매료하는 방식으로 했다 생각합니다.
◇ 박성태>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제가 어제 영화를 봤는데 교수님을 만나고 영화를 봤으면 훨씬 더 재미있게 감상했을 것 같은. 저 장면이 그러면 놀란 감독은 저렇게 한 거겠구나, 물론 해석은 저희의 몫이지만.
◆ 김헌> 내용적인 것도 중요한데 아직 안 보신 분은 그런 점에 착안해서 보시면서 놀란 감독이 어떻게 그 기원전 8세기, 9세기의 호메로스를 구현하려고 했나 이런 것도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박성태> 그 구현 방식, 사실은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관객들이 직접 듣는 것들에 주안점을 둔 것 같다.
◆ 김헌> 네, 맞습니다.
◇ 박성태> 구성이나 음악이나.
◆ 김헌> 그렇죠. 영상 구성 방식도 그렇고.
◇ 박성태> 오디세이는 어떻습니까? 원래 호메로스의 이야기에 나오는 오디세이와 영화의 주인공 오디세이. 이 차이가 있는지 아니면 놀란 감독이 특별한 어떤 걸 강조했는지, 어떻게 보시는지요?
◆ 김헌> 일단 오디세이라는 건 작품 이름이고.
◇ 박성태> 오디세우스.
◆ 김헌> 주인공은 오디세우스인데.
◇ 박성태> 죄송합니다.
◆ 김헌> 영화 속의 오디세우스는 굉장히 착해졌다 이런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굉장히 윤리적, 도덕적 감수성이 높게 표현돼 있다라고 생각이 되고요. 그런 점에서 비교하자면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는 그렇게 도덕적이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착하다라기보다는 교활하다라는 말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그러니까 원작의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목마 작전을 쓰면서 내가 이걸로 적을 속였기 때문에 이거는 좀 비겁한 방법이었다, 뭐 이런 도덕적 죄책감 전혀 없거든요.
◇ 박성태> 전혀 없어요?
◆ 김헌> 네, 오히려 내가 이렇게 뛰어난 지략을 보여줬던 대표적인 사람이야. 나 트로이 목마를 구현했던 영웅 오디세우스 이런 자부심이 있었는데. 놀란 감독을 보면서 제가 그 영화를 보면서 깜짝 놀랐는데 거기에 나온 오디세우스는 내가 목마로 사람을 속이다니. 적이지만 적을 속여서 이거를 아테네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고 트로이인들을 속여서 그들로 하여금 방심하게 만들어 갖고 이 트로이를 무너뜨린 건 정말 내가 그 신의 법칙을 어긴 것이다, 그러면서 되게 자책을 하거든요. 이런 것들이 되게 달랐고요. 그리고 부하들이, 자기를 따르던 부하들이 전쟁터에서 10년, 돌아오면서 10년, 20년 동안 따라왔는데 다 죽었거든요. 거기에 대해서 작품을 읽어보면 나를 따르던 부하들이 다 죽었어, 나는 정말 못된 또는 못난 지도자야, 이런 자책이 없어요.
◇ 박성태> 원래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는 오디세우스의 그런 자책은 1도 안 나옵니까?
◆ 김헌> 예, 조금 이렇게 비춰지는 것들이 있긴 한데 대체적으로 저것들은 지들이 잘못해서, 내 말만 잘 들었어도, 자기네들의 어리석은 욕망 때문에 이러면서 하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 속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착해요. 그래 갖고 자기가 잘못해서 내 부하들이 다 죽었구나. 그 부하들의 잘못도 있다고 하지만 부하들에 책임을 돌리기보다는 내가 잘못했다, 내가 지도자로서 잘못했다 이런 것도 보이고요. 그 원작에서 오디세우스가 제일 이상한 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자기 아내를 그리워하는 것도 있는데, 여신이나 요정들과 잘 지내요.
◇ 박성태> 재밌게.
◆ 김헌> 소위 말하면 저거 이상하다, 불륜 바람 피는 거 아니야? 집에서는 그 아내가 그렇게 혼자 힘들게 기다리고 있는데 집에 안 가도 되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데 그런 어떻게 보면 그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라고도 볼 수 있잖아요. 남자가 힘들게 전쟁 치르고 집에 갈 길이 막막하고 그런데 예쁜 여신과 요정이 옆에 있고 그러면서 이렇게 빠져들 수도 있는데. 그럴 수 있지, 남자라면 다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 우리는 인정하잖아요. 그런데 영화 속 오디세우스는 그런 점에서도 굉장히 청결하고 또 금욕적이고 그런 모습을 보여주죠. 논란은 아예 키르케, 작품 속에서는 키르케라는 마녀랑 1년을 같이 살거든요.
◇ 박성태> 그래요?
◆ 김헌> 네, 그러면서 남편이라는 표현도 쓰고 후대에 의하면 그 속에서 자식, 둘 사이에서 자식도 낳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잠깐 만나고 그냥 헤어지는 거, 그것도 서로 나쁜 감정 비슷한 것들이 있는.
◇ 박성태> 그냥 하나의 사건 정도로 됐어요. 그러니까 당일 오후에 만나서, 당일 오후에 해결하고 바이바이한 듯한 느낌 그렇게 돼 있더라고요.
◆ 김헌> 그렇죠. 그리고 칼립소와 7년을 지내게 되는데 거기에서도 놀란 감독은 기억 상실증이라는 요소를 집어넣어서 오디세우스가 거기서 자발적으로 7년을 머문 게 아니다, 이런 표현으로 가잖아요. 그런데 작품 속에서는 아주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키르케 아니, 그러니까 칼립소와 즐기는 듯 안 즐기는 듯. 그러니까 즐길 건 다 즐기고 나와 갖고 고향 가고 싶다, 이러고 있거든요.
◇ 박성태> 너무 좋은데 이게 또 좋은 게 지속되면 또 지루하기도 하니까 집에 가야 되는데 이 정도, 원작에는 그렇다는 말씀이죠.
◆ 김헌> 아침에 일어나서 잘 대접받고 재미있게 놀고 저녁에 뜨거운 사랑까지 나누고 그리고 내가 왜 이랬지 그리고 나와서 고향을 가고 싶은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면 또 그 환락의 안락함에 젖어드는 거죠. 그게 반복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것도 이상하다.
◇ 박성태> 칼립소는 이제 요정이죠, 요정.
◆ 김헌> 요정이라고도 표현돼 있고 여신이라고도 표현돼 있습니다.
◇ 박성태> 여신.
◆ 김헌> 그러니까 그런 점에서 보면 그 오디세우스가 굉장히 도덕적이냐 그럴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원작에 많은데. 놀란 감독은 굉장히 도덕적으로 감수성이 예민하고 수준이 높은 그리고 속된 말로 착하게 살자, 이런 인간으로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에 그 구원자들 다 퇴치하잖아요. 그때도 그 원작에서는 텔레마코스가 창을 들고 같이 죽여요. 그러니까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지켜야 된다, 이런 건데 작품 속에서는 그렇지 않잖아요. 뭐 스포가 좀 될 수.
◇ 박성태> 그거는 약간 스포가 될 수가 있겠네요. 뒷부분이어서.
◆ 김헌> 할까요? 말까요?
◇ 박성태> 그 정도까지는 괜찮습니다.
◆ 김헌> 그러니까 너는 피를 묻히면 안 돼. 너는 이 나라의 깨끗한 왕이 돼야 돼 그러면서 텔레마코스의 개입을 막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점도 굉장히 다르다고 볼 수 있죠.
◇ 박성태> 저는 보면서 초반부터 어떤 느낌을 받았냐면 맷 데이먼이 연기한 오디세우스가 되게 주저하고 있다. 우리가 알던 영웅 서사시의 영웅과는 너무 다른 모습. 그러니까 어깨도 약간 움츠러들어서 나오고, 실제 전투할 때 빼고는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완전 영웅을 다르게 해석했구나,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 김헌> 그런 점은 호메로스 원작부터 있긴 해요.
◇ 박성태> 있긴 해요?
◆ 김헌> 그러니까 호메로스의 두 작품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인데 일리아스의 주인공은 아킬레우스잖아요. 우리가 2004년에 나왔던 영화 트로이에서는 브래드 피트가 그거를 역할을 했는데, 당당하고 멋있고 잘 싸우고 한 번에 적을 퇴치하고 이런 모습에서 정말 전형적인 영웅을 볼 수 있는데. 반면에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에서는 추레하고 또 이렇게 쩔어 있고 또 자기가 아무것도 못했다는 어떤 그 무력감, 이런 것에도 어느 정도 젖어 있고. 집에를 가야 되는데 집에 잘 갈 방법도 찾지 못하고, 그런 전통적인 영웅의 모습은 아닌 거는 분명해요.
◇ 박성태> 약간 지락을 쓰기도 하고. 그런데 아킬레우스랑은 조금 대비되는 영웅, 두 영웅의 모습을 보인 거군요.
◆ 김헌> 그렇죠. 애초에 호메로스 작품에도 그 두 영웅에 대비되는 것 속에서 새로운 영웅상을 제시했다라고 얘기를 하는데. 그런 무기력하고 또 나약하고 절망감에 빠져 있는 오디세우스에다가 놀란 감독은 굉장히 도덕성을 부여해서 정의롭고 착하고 자기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질 줄 알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저까지도 배려할 줄 아는 아주 인간미 넘치는 모습으로 바꿨기 때문에 현대적인 해석이 많이 가해진 그런 오디세우스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박성태> 인간적인 회한, 전쟁에 대한 그런 부분, 사실 그런 게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그건 순전히 현대적 해석이라는 것이군요.
◆ 김헌> 놀란 방식의 현대적 해석.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현대 관객들이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아마도 놀란은 자기가 본 이 문명사, 인류 문명사, 21세기 문명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 속에서 오디세우스라는 인간을 내세워서 단순히 생존 경쟁에서 이겨낼 수 있는 경쟁력 있는 능력 있는 영웅상이 아니라 그런 능력이 어떤 결과를 내는지, 그 결과의 그늘도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정의. 그리고 가야 한다면 어떤 길을 가야 한다면 그 길은 정의로워야 하고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어야 된다라고 생각한 그런 모습을 그려낸 것 같아요.
◇ 박성태> 사실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서도 좀 강조가 돼서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트로이의 나중에 성을 함락시킨 다음에 오디세우스였던 양민에 대한 학살 같은 부분도 부각돼서 나오고요. 그럼 그것도 놀란 감독이 좀 부각을 시켰다. 왜 그러냐하면 현대에 있어서도 지금도 전쟁은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 김헌> 그렇죠. 그런데 그것도 사실은 고대에 어느 정도 있긴 해요. 그러니까 이게 8세기 작품이라고 한다면 5세기쯤 들어가면 그리스 비극 작품들이 막 나오잖아요. 거기에서 특히 에우리피데스라는 작가는 전쟁의 참상,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하는데 트로이아의 여인들을 내세워서 전쟁 이후에 여자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가, 이런 것도 조명하곤 했거든요. 이제 그런 요소들을 놀란 감독이 또 차용해서 8세기 호메로스에다가 5세기의 비극 작가의 비극적 감수성을 놓고 거기에 약간 그리스 철학적인 윤리학 또는 기독교적인 요소까지도 많이 넣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 박성태> 알겠습니다. 사실 몇 가지 에피소드는 앞서 세이렌도 그렇고요. 그다음에 키르케인가요? 그 마녀 들어갔고. 그런데 그런 것들이 사실은 잠깐 잠깐 넣었는데 되게 빨리 지나가서 이게 한 편의 영화로 만들다 보니까, 그냥 뭐랄까요? 그냥 어떤 장치 아니면 그냥 하나의 이벤트처럼 그냥 쑥 지나간 느낌이 들긴 하더라고요. 이런 건 어떻게 보셨어요? 세이렌의 노래도 저는 사실 세이렌은 대체 어떻게 할까, 그런데 다들 귀를 막고 있어서 뭐라고 부르는지는 못 들었습니다.
◆ 김헌> 그런데 사실 원작 자체의 구성도 그렇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처음에 형식적인 면을 얘기했었는데 놀란 감독이 오디세이아 원작의 구성 자체도 상당히 충실하게 따라가려고 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디세이라는 작품이 전부 24권으로 되어 있거든요. 그중에 반,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눠지는데. 전반부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오디세우스의 모습을 그려주고 13권부터 24권까지는 고향에 들어갔을 때의 모습을 보여줘요. 그러니까 모험 이야기를 넣는다 그러면 그 반.
◇ 박성태> 전반부에.
◆ 김헌> 절반보다 못해야 되거든요.
◇ 박성태> 그렇죠.
◆ 김헌> 그런데 그 앞에 부분도 고향이 어떤 상태인지, 기다리는 아들과 아내는 어떤 상태인지 이런 게 그려져 있고. 그다음에 9권부터 12권까지만 오디세우스가 파이악스인들이 사는 스케리아라는 섬에 들어가서 그 왕이 아니 당신이 오디세우스냐, 그 유명한.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냐, 이렇게 물어보니까 내가 사실은 어떡하다가 여기까지 왔냐면 하면서 그 10년간의 얘기를 해주거든요. 그러니까 이 모험 얘기 자체가 이 원작에서도 에피소드처럼 한 6분의 1 분량으로 들어가 있어요.
◇ 박성태> 저희는 사실 외눈박이 괴물이랄지 이렇게 돼서 그게 크게 느껴지지만.
◆ 김헌> 크게 느껴지지만.
◇ 박성태> 원작은 또 그건 아니었군요.
◆ 김헌> 그리고 거기에 판타지적인 요소가 거기 다 응집되어 있는데, 이 구성을 호메로스도 아주 영리하게 했거든요. 그러니까 자기의 목소리로 마치 사실을 전달하는 것처럼 하는 게 아니라 오디세우스가 직접 얘기하는. 그러니까 마치 군대 갔다 온 사람이 자기 군대 얘기할 때 그걸 믿을 수 있느냐고 우리 많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잖아요. 오디세우스가 사실은 내가 10년 동안 트로이 전쟁 마치고 집에 오는데 어떤 일이 있었는 줄 알아? 그러면서 얘기하다 보니까 굉장히 과장된 형태로 나오고 그리고 자기가 이렇게 부각되는 형태로 나오죠. 그러니까 전체 작품에서도 작을 수밖에 없는 부분인데, 놀란 감독은 그런 점에서 그 전체 구성을 그 원작의 흐름에 맞게 잘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관객들이 갖고 있는 상식과 편견 또는 기대감 이런 걸 충족시키려고 하기 위해서 짧지만 그래도 전체 분량으로 봐서는 상당 부분을 이렇게 할애하면서 모험 얘기를 부각시켰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 박성태>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저는 보면서 좀 이해가 약간 안 됐던 게 제우스의 법이라는 거죠. 낯선 손님을 정중하게 대접해야 된다. 환대라는 표현도 나오고요. 왜 그러냐면 이 걸인이 신일 수 있으니 이건데 실제 그런 게 통용됐습니까?
◆ 김헌> 예, 맞습니다. 그리스 로마 고대 사회에서도 그걸 크세니아라는 표현을 쓰거든요. 크세노스 이게 외국인, 손님, 외지에서 온 사람을 크세노스라고 불렀어요. 그 사람을 잘 대해 주는 것을 크세니아라고 불러서 환대의 윤리라는 표현을 쓰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그 당시에는 내가 나가서 나그네가 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나그네가 됐는데 내가 가는 곳에 사람들이 나를 학대하거나 적대시하면 너무 고통스럽잖아요. 잘 대접받기를 원하는데, 그런 마음이 공동체의 윤리로 이렇게 굳어진 게 환대 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인간적으로 말하면 네가 나가서 손님이 될 수 있으니 너를 찾아오는 손님을 잘 대해 줘라, 그럼 너도 나중에 그 손님이 됐을 때 잘 대접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런 논리거든요. 그런데 아니, 난 잘 대접해 줬는데 그 상대가 일단 나는 나가서 푸대접을 받으면 어떡해, 이런 의문이 생기니까. 안 그래, 신이 도와줄 거야. 신은 손님을 보호하는 자를 보호해 주고, 손님을 박대하고 적대하는 자를 적대시하는 거야, 이런 논리로 크세니아의 윤리, 환대의 윤리를 얘기하거든요.
◇ 박성태> 그런데 이게 실제 그리스에서도 되게 당시에 8세기, 9세기에 통용됐던 거고.
◆ 김헌> 통용됐고,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고 호메로스 작품 속에도 많이 나오고 놀란 감독은 그걸 차용해서 이 작품 전체에 깔려 있는 어떤 기본적인 윤리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걸 깨는 자는 저주를 받거나 응징을 받을 것이고 이걸 잘 지키는 자는 나중에 대접을 받고 또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이렇게 얘기했는데. 사실 그런 점에서 보면 논란보다 호메로스가 훨씬 더 파격적이고 도전적이고 도발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 박성태> 그래요?
◆ 김헌> 왜냐하면 이 작품 원작을 읽어보면 호메로스는 크세니아의 원리, 그러니까 환대의 윤리를 긍정하면서도 어떤 질문을 던지냐 하면 정말 환대해 주면 나도 잘될 수 있어? 환대의 윤리가 정말 그렇게 행복을 보장해? 이런 의문을 던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당연히 손님을 잘 대접해 줘야 된다. 거기에 대해서 잘 대접하면 정말 좋아? 이러면서 당대의 상식적인 윤리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데 놀란은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게 맞아. 그리고 굉장히 전통적인 윤리로 회귀하는 것 같고 오히려 호메로스는 거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으로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작품 속에서.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그러니까 오디세우스가 아까 이 작품 영화에서는 생략됐는데 스케리아 섬에 도착해서 그 왕이 너 어쩌다 여기까지 왔어, 그런 장면이 있고. 얘기를 다 들은 다음에 너 정말 10년 동안 고생 많았구나, 내가 선물을 주고 집까지 잘 데려다 줄게. 그래서 정말 그렇게 해서 겨우 집에 오거든요, 오디세우스는. 이 사람들이 환대의 윤리에 충실했던 거 아니에요. 그런데 돌아가는 와중에 포세이돈이 노해서 폭풍을 맞고 그 배 자체가 그 선원들과 함께 돌덩어리가 돼버려요. 그럼 우리는 어떤 의문을 제기할 수 있냐면 아니, 잘 대해 줬는데 왜 신에게 이런 벌을 받지?
◇ 박성태> 그렇네요.
◆ 김헌> 환대의 윤리 이거 정말 우리가 지켜도 안전한 거야? 이런 질문을 던진 작가가 호메로스라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작품 전체에서 봤을 때 이게 10년 동안 집에 못 돌아가잖아요. 그 원인을 잘 생각 따져보면 환대하는 사람들의 환대에 젖어서 거기서 나 집에 가지 말까? 여기 너무 편한데, 나 여기서 그냥 주저앉을까? 이런 마음을 먹다가 오히려 환대의 윤리의 함정에 빠져가지고 그 집에 안 돌아가는 기간이 훨씬 길거든요. 그런 거를 잘 생각해 보면 환대의 윤리는 손님의 안전을 보장하고 손님에게 잘 대해 주고 친절이지만 그게 상대를 나약하게 만들고 안락에 빠지게 하는 것은 아닌가.
◇ 박성태> 사실 오디세우스의 대사 중에는 신에게 맞선다, 신이라고 다 맞는 것도 아냐라는 대목도 나오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그때 그랬나 라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호메로스가 그러면은 신에 대한 불만도 좀 있었던 건지.
◆ 김헌> 그렇죠. 호메로스는 신들의 얘기를 하고 신들을 존중하는 기본적인 틀은 유지하면서도 신은 정말 우리 인간을 사랑하는가. 우리가 신에게 잘했을 때 신은 우리를 대접하는가. 신이 말했던 윤리대로 살면 우리가 잘 살 수 있는가. 이런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그런 작품이라고 볼 수 있어요.
◇ 박성태> 거기에 대한 고뇌를 사실 오디세우스가 표현했던 거고.
◆ 김헌> 네, 그래서 저는 호메로스의 원작이 훨씬 더 문제 제기적이고 비판적이다 이런 생각입니다.
◇ 박성태> 알겠습니다. 정말 더 듣고 싶은데 시간이 여기까지입니다. 너무 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오디세우스 이야기,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김헌 교수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헌>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