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 깨어나길 원했다" 99세 韓 패션 창시자 노라 노의 철학

노라 노 패션 디자이너. EBS 제공

'한국 최초 패션 디자이너, 한국 최초 패션쇼 개최, 최초의 무대의상 감독…'

한국 패션사에 수많은 '최초'를 남긴 디자이너 노라 노(본명 노명자·99)의 100년에 가까운 삶이 조명됐다.

노 디자이너는 9일 방송된 EBS 다큐멘터리 시리즈 '시대목격'에 출연해 자신의 패션 철학과 지나온 삶을 돌아봤다.

그는 "유행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다. 그 사람이 잘 입고 어울리면 그게 유행"이라며 "우리 집 옷을 보면 어머니가 입은 걸 대를 이어 입는 경우가 많다. 저도 20년 동안 옷을 해 입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옷을 하면서 우리나라 여성들이 깨어나길 원했다"고 덧붙였다.

노 디자이너의 패션에 대한 관심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 초등학교 4학년때 부터 직접 옷을 만들어 입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 위안부 동원을 피하기 위해 17살 나이에 결혼을 선택해야만 했고, 이후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다.

노 디자이너는 "잘 모르는 시부모와 얼굴도 잘 모르는 남편과 이 집에서 살면 식모살이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다"며 "나가면 '미지수'였다. 미지수의 길을 걸었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때부터 노라로 살아온 것"이라고 떠올렸다.

그는 '노라'라는 이름을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인형의 집'은 아내 노라가 남편에게 존중받지 못한 자신의 삶을 깨닫고 미련 없이 집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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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디자이너는 "노라같은 처지가 됐을 때 나도 집을 나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여자가 독립해서 나간다는 결심과 그걸 실행하는 모습이 제게 많은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이후 19세에 미군정청의 타이피스트로 일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로 저녁 파티에 초대를 받았고,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기모노 옷감을 활용해 이브닝드레스를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패션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한 뒤 1947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패션 유학길에 올랐다. 2년 만에 귀국한 그는 "(한국전쟁 발발 직전이었지만) 우리나라로 가서 같이 고생하고 같이 죽고 살기로 해보자는 마음이었다"고 전했다.

귀국 후에는 본격적으로 한국 패션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1956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패션쇼를 개최하며 디자이너로서의 이름을 알렸고, 이후 문혜란, 남미리, 윤복희, 엄앵란, 오현주 등 수많은 유명 연예인들과 합을 맞췄다. 최근에는 그룹 방탄소년단(BTS)과도 협업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아리랑드레스, 미니스커트, 나팔바지 등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며 한국의 패션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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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원숙 작가는 "노라 노 선생님의 옷은 누구한테 보이기 위한 것보다는 편안하면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행동에 불편함이 없다"며 "누구한테 자랑하기보다는 내 자신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불편함이 없는 일하는 여성을 위한 옷"이라고 강조했다.

정구호 패션디자이너는 "외국의 경우 패션디자이너가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에 많이 참여한다"며 "무용, 오페라, 영화 등 우리나라에선 그걸 처음으로 노라 노 선생님이 하셨다"고 평가했다.

끝으로 노 디자이너는 100년에 가까운 세월을 돌아보며 "하고 싶은 일을 했고 또 잘됐다. 무조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다 그 이상 뭐가 있겠나. 모든 게 이 두 마디로 끝이다"고 웃었다.

한편, '시대목격'은 영화, 연극, 문학, 음악, 바둑, 예능, 스포츠, 패션, 언론, 광고, 안무 등 문화·예술·언론과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삶과 발자취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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