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들도 거리로…105년 후 '독립유공자학교'로 기록되다

[나는 독립유공자학교를 다닌다①]

대흥공립보통학교 학생 김용태에 대한 졸업장 수여 기록(붉은색 네모 부분). '소요사건의 주모자이므로 수업증서(졸업장)를 수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기록이 남아있다. 김정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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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초등학생'들도 거리로…105년 후 '독립유공자학교'로 기록되다
(계속)


졸업장 대신 태극기…어린 학생들, 장터 깨운 함성

1919년 3월 13일 충남 예산군 대흥면 대흥시장. 장터 한복판에 앳된 목소리들이 울려퍼졌다. 인근 대흥공립보통학교(현 대흥초등학교) 학생 300여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독립만세를 외친 것이다. 일제는 만세운동을 주도한 학생 6명(김동욱·김용태·김이기·박동복·이희주·정옥섭)에게 '보안법 위반' 혐의를 씌워 공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했다.

특히 학생 김용태는 이 사건으로 끝내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현재 예산 대흥초등학교에서 보관 중인 일제강점기 '수업증서할인부(학적부)'에는 그에 대해 '소요사건의 주모자이므로 수업증서(졸업장)를 수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기록이 남아있다. 대흥초등학교의 윤민기 교장은 "기록 속 소요사건은 바로 1919년 우리 민족의 만세운동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초등학생'들의 만세운동은 예산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같은 해 3월 14일. 태극기를 준비하는 천안 목천보통학교(현 목천초등학교) 학생 이규태·김소용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오후 4시가 되자 목천보통학교 전교생 179명은 태극기를 들고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천안지역 최초의 만세운동이었다. 두 학생은 일경에 연행돼 고초를 겪으면서도 끝까지 배후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규태는 이후 독립운동을 이어가기 위해 1920년 10대의 나이로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에 합류하기도 했다.

같은 해 3월 24일 서산 해미공립보통학교(현 해미초등학교) 재학생 김관룡의 집에 이계성이 찾아왔다. "다른 학교에서는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데 우리 학교에서만 부르지 않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오늘 밤 만세를 부르자." 그날 열린 졸업생 송별회 자리에서 김관룡은 졸업생과 재학생들에게 "함께 면사무소 앞 등에서 독립만세를 외치자"고 했고 늦은 밤 면사무소와 우시장에서는 수십 명이 만세를 외쳤다.

일제강점기 학적부라고 할 수 있는 '수업증서할인부'. 당시 학생 독립유공자들의 기록도 살펴볼 수 있었다. 김정남 기자


비밀결사 품은 교정과 기숙사…멈추지 않은 항쟁

1919년 4월 1일 공주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운동 또한 영명학교(현 영명중·고등학교) 교사와 재학생, 졸업생 등이 주축이 됐다. 영명학교 교실에 모인 교사와 학생들은 공주 장날에 만세운동을 하기로 했고 학교 기숙사에서는 비밀리에 독립선언서 등사가 이뤄졌다. 학생 이규남은 만세운동에 사용할 대형 태극기 4매를 만들었다. 이 태극기는 4월 1일 오후 2시 공주 장터 한가운데서 펄럭였다.

시간이 흘러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하던 1930년대에도 학생들의 저항은 멈추지 않았다. 1936년 공주고등보통학교(현 공주고등학교) 학생 구자훈 등 7명은 항일결사 '명랑클럽'을 조직했다. 이들은 일어 사용 금지, 신사 참배 거부 등 일제 식민 통치에 항거하는 활동을 전개하며 민족의식을 잃지 않으려 고군분투했다.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 4월. 부여 낙화암에서는 "조선독립만세" 외침이 세 차례에 걸쳐 울려퍼졌다. 당시 낙화암 인근은 일제가 식민 통치의 상징으로 삼기 위한 신사인 '부여신궁'을 짓던 곳이었다. 그런 낙화암에서 만세를 외친 사람은 현 부여초등학교 출신 최을규. 최을규는 이틀 뒤에는 낙화암 위에 있는 백화정의 기둥을 깎아 혈서로 '조선독립만세'를 새겨 넣었다가 옥고를 치렀다.

2024년 '독립유공자학교'로 지정된 예산 대흥초등학교. 김정남 기자


되찾은 '긍지'…충남교육청, 독립유공자학교 발굴

당시 독립을 향한 열망은 '어린 학생'이라고 해 다르지 않았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다양한 독립운동이 전개됐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학교'라는 공간이 있었다.

학교는 독립운동을 모의하는 직접적인 장이 되기도 했고, 일제의 서슬 퍼런 억압 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정신을 잃지 않게 지탱해준 보루가 되기도 했다.

이 같은 독립유공자들의 숨은 공훈은 오늘날 '독립유공자학교' 발굴을 통해 세상에 더 알려지게 됐다.

충남교육청은 2022년 7월부터 국가보훈부 공훈록과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발간 자료 등을 토대로 지역의 학교를 다녔던 독립유공자 자료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14개 학교 출신 54명의 독립유공자를 찾아냈고, 현재까지 모두 27개 학교에 '독립유공자학교' 현판을 헌정했다. 수많은 어린 독립운동가들이 나온 대흥초등학교, 목천초등학교, 해미초등학교 등도 2024년 이름을 올렸다.

100여 년 전, 일제는 학생들의 입을 틀어막고 '소요사건 주모자'가 있는 불온한 학교라는 낙인을 찍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 학교들은 후배들이 가슴 벅찬 자긍심을 품고 다니는 자랑스러운 '독립유공자학교'로 역사의 페이지에 다시 기록되고 있다.

이병도 충남교육감은 "독립유공자학교 발굴 사업을 통해 학교는 올바른 학교사를 정립해 교육 과정 속에 보훈 문화를 녹여내고 있다"며 "학생들은 독립운동가를 '우리 학교 삶의 선배'로 만나며, 역사 정신과 보훈의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의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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