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투표 첫날 광주·전주 가보니…"차별 끝내자" 동상이몽

민주 8·17 전당대회 '최대 격전지' 호남 당심 탐방
정부發 호남 '반도체 투자'…표심에 적잖은 영향
"호남 간만에 지원…대통령과 가까운 후보 골라"
"군공항 이전 쉽지 않아…성과 입증한 사람 필요"
'홀대론' 작용하는 전주…지방선거 사후평가도

전남광주 동구에 위치한 옛 전남도청. 김재환 기자

더불어민주당 8·17 전당대회의 최대 격전지인 호남에서 권리당원 투표가 11일 시작됐다. 민주당 대통령을 내 손으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는 51만 호남 당원들은 차기 지도부를 신중하게 고르는 모습이었다.

광주·전남에서는 정부의 반도체 투자를 매개로 김민석·정청래 후보에 대한 지지가 엇갈렸고, 전북에서는 이번 전당대회를 6·3 지방선거 공천에 대한 '사후 평가'로 여기는 기류가 감지됐다. 두 지역별로 온도차가 미묘하게 있었지만, 이제는 지역 차별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만은 같았다.

광주 당원들 "대통령과 안 싸워야" "추진력 강해야"

이날 전남광주 동구 대인시장에서 만난 강모씨는 "메시지가 오자마자 바로 투표를 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당대표·최고위원 경선도 비밀 선거"라며 표를 준 후보에 대해 말을 아꼈다. 광주의 판세에 대해선 "김민석이 배신했다고 하는 말도 있고, 정청래는 우리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어서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했다.

처음 경험하는 선호투표제가 낯선 정모(71)씨는 3명의 당대표 후보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정씨는 "누구 하나 성에 차는 후보는 사실 없다"면서도 "호남이 간만에 지원을 받는다고 하니 대통령과 싸우지 않는 후보가 낫겠다 싶어 김민석과 송영길을 찍었다"고 전했다.

광주 당원 중에는 정씨처럼 정부의 반도체 투자 발표를 후보 선택의 이유로 꼽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동안 호남이 정치·경제적으로 차별받았다는 것이 당원들의 공통된 정서다. 그런 당원들에게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은 호남 차별을 끝낼 기회로 여겨졌다.

옛 전남도청 인근에서 50년째 점포를 운영한 노모씨는 "젋었을 때 선거철이면 행상 일을 하느라 경상도에 갔는데 광주에서 왔다고 하면 나더러 간첩이라고 했다"며 "장사를 해야 하니 부산에서 왔다며 어설픈 경상도 사투리를 했다. 우리 후손들은 그런 대접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을 골랐다"고 했다.

민주당 초창기 권리당원인 방정열씨는 "옛날에는 대기업에서 호남 출신이라고 하면 잘 안 뽑아줬다"면서 "이번 정부에서야 좀 우리가 대접을 받으려는 것 같으니 일을 제대로 할 후보를 밀어주려고 한다"고 언급했다.

전남광주 동구에 위치한 대인시장. 김재환 기자

반도체 투자가 성공을 거두려면 추진력이 강한 당대표가 선출돼야 한다는 당원도 있었다. 정 후보에게 투표한 70대 김모씨는 "광주군공항 이전이 사실 쉬운 문제가 아니다"라며 "약속이 말에서 끝나지 않으려면 무게감이 있고 제대로 개혁을 한 사람이 낫지 않겠나"라고 했다.

김씨와 같이 정 후보를 지지하는 당원들은 12·3 비상계엄 국면에서 보여준 그의 대응을 높이 평가했다. 권리당원인 이모씨는 "윤석열이 계엄을 한 걸 본 광주 사람들은 과거의 상처와 공포가 다시 떠올랐다"며 "내란을 청산하고 검찰을 개혁한 정청래에게 마음이 간다"고 말했다.

후보들 사이에서 논쟁 중인 이른바 '적통론'에 대한 당원들의 평가도 있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거를 도왔다는 김모씨는 "김민석이가 당을 배신했다고 하는데 조금 왔다 갔다 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생을 많이 했다. 깊은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배신이 아닌 희생이라고 한다"고 얘기했다.

김성대(72)씨는 "DJ 때부터 권리당원이었던 사람의 입장에서 그 시절에는 모두가 학생 운동을 했다. 그렇지만 모두가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학생 운동을 한 사람들이 '누구와 가깝다' '누구의 뿌리다'라며 너무 많은 혜택을 누려 온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욕심을 내려놓고 여당 대표로서 본분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영길 후보를 지지하는 광주 당원도 적지 않았다. 다만 당원들은 송 후보의 득표율 합산이 3위에 머무르는 탓에 사표가 될 것을 염려하는 분위기였다. 김 전 대통령 선거를 도운 김씨는 "다른 두 사람도 똑똑하지만 송영길처럼 큰 인물은 아니다"라고 했다. 권리당원 B씨는 "송영길을 지지하지만 내 표가 사라질테니 이번에는 김민석을 1위로, 송영길은 2위로 적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북 당원들 "전북도 투자 이뤄져야" "지선 사후평가"

호남의 또 다른 한 축인 전북도 전당대회 관심은 뜨거웠다. 전주의 당원들 역시 후보 한 명 한 명을 꼼꼼히 저울질하며 표심을 정했다.

지금까지 진행된 당대표와 최고위원들의 합동연설을 모두 지켜봤다는 양병환(62)씨는 "우리는 호남 출신이라고 해서 쉽게 표를 안 준다. 영남 출신이 와도 사람과 비전이 좋으면 뽑는다"며 "우리를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건 전주를 무시하는 얘기다. 언제든지 판을 뒤집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60대 권리당원인 주모씨는 "전주는 양반 도시"라며 "약속과 신의를 지킬 수 있는 후보를 고를 것"이라고 했다.

같은 호남이지만 전남과 광주에 비해 전북이 상대적으로 홀대를 당한다는 데 공감하는 당원도 있었다.

정 후보를 선택했다는 A씨는 "호남을 사람에 비유하면 전북이 머리고 전남과 광주가 다리와 발인데, 다리와 발만 중시하는 것 같다"면서 "잼버리 사태 때 우리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세계적으로 낙인을 찍었다. 그런데도 전남과 광주에만 투자가 집중되지 않나"라고 말했다.

일부 당원들은 이번 전당대회를 6·3 지방선거에 대한 '사후 평가'로 여기기도 했다.

권리당원인 정순님(67)씨는 "김관영 전북지사 후보에게 잘못이 있었지만 우리가 후보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정씨는 "전북도지사 등 공천 과정이 실망스러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대로 따라갔다"며 "두 달을 기다렸다. 이번에는 우리에게 정청래 지도부를 평가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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