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본명 안하영)의 증조부를 둘러싼 친일 논란이 역사 인식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하영이 방송에서 '4대 의사 집안'을 소개한 뒤 증조부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이 거론됐고, 여기에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친일 강박증"이라고 주장하면서 논쟁의 성격이 달라졌다.
박 교수는 지난 1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친일 강박증'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안상호가 '조선의 첫 번째 양의'로 불렸고 대한제국 1호 국비유학생이었다는 점을 들어 "대한제국이 만든 인재"였다고 평가했다. 귀국 뒤 순종의 주치의가 된 것도 "당연한 수순"이며, 그의 명예와 부를 곧바로 친일의 결과로만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박 교수는 안상호가 이완용을 치료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이완용이 아니라 서민이라도 가능하다면 그에게 치료받고 싶었을 것"이라고 했다. 의료 행위 자체를 친일 행위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논란의 핵심은 안상호가 일제강점기 친일 성격 단체로 평가되는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이다. 하영 소속사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도 처음에는 친일 의혹을 부인했지만, 이후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는 기록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밝혔다.
안상호 가족사가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식민지 통치 선전의 사례처럼 소개됐다는 점도 논란을 키웠다.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 안상호의 가정이 '일선동체'의 모범처럼 다뤄졌다는 것이다.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아카이브에 안상호 관련 송덕비가 '친일 시설'로 분류돼 있다는 점도 함께 거론됐다.
다만 안상호는 현재 정부가 공식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이나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은 아니다. 이 때문에 단체 가입과 총독부 기관지 보도, 식민지 엘리트로서의 행적을 어디까지 친일 부역으로 볼 것인지를 두고 해석이 갈린다.
박 교수는 이를 '구조적 친일'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제 치하에서 정치·경제·문화·교육 모든 분야에서 리더 위치에 있었던 사람은 구조적으로 친일파일 수밖에 없다"며, 당시 조선인 엘리트 전체를 부정하는 방식의 접근은 위험하다고 했다. 하영 개인에게 증조부의 행적을 이유로 비난을 퍼붓는 것 역시 "순결 강박"이자 "친일 강박증"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식민지라는 구조가 개인의 선택을 제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같은 시대 전문직 지식인 가운데 독립운동을 택한 이들도 있었다는 지적이다.
의사 김필순, 이태준, 박서양 등은 근대 의학을 배운 엘리트였지만 망명과 의료 활동, 독립운동 지원의 길을 선택했다. 따라서 "그 시대에는 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만으로 모든 행적을 덮기는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영에 대한 비난이 정당한가와 안상호의 역사적 행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후손인 하영이 조상의 행적에 대해 법적·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방송에서 '4대 의사 집안'이라는 가족사가 긍정적 서사로 소비된 만큼, 그 안에 포함된 식민지 시기 이력도 공적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 역시 나온다.
이번 논란은 연예인의 가족사 문제를 넘어 식민지 엘리트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꺼내 들었다. 친일 행적을 단정할 때는 구체적 근거와 신중함이 필요하다. 동시에 식민지 체제 안에서 얻은 지위와 명예를 '근대화'나 '구조'라는 말로만 설명할 때, 그 시대 다른 선택을 했던 이들의 삶이 지워질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