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와 이내 몸이 천지간에…."
나라를 잃고 만주 서간도로 떠난 한말 유학자 이건승은 망명길의 비통한 심정을 이렇게 한글 가사로 적기 시작했다. 권말에는 '신해 춘 삼월 일 작'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일강제병합 이듬해인 1911년 봄, 망명 직후 쓰인 작품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은 강화학파 유학자 이건승(1858~1924)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망명가사 '서행별곡' 유일본을 후손인 이겸주 울산대 명예교수로부터 기증받아 공개한다고 13일 밝혔다.
'서행별곡'은 1910년 한일강제병합 뒤 일제 통치를 거부하고 서간도로 망명한 이건승이 1911년 3월 지은 141장 분량의 한글 가사다. 조국을 떠나야 했던 비통함과 나라를 되찾겠다는 의지가 망명 여정의 시간 순서에 따라 담겼다.
작품에는 망명을 결심한 배경, 후학 교육을 일찍 펼치지 못한 아쉬움, 서울에서 신의주로 향하며 마주한 문화유적에 대한 감회, 서구 문물 유입에 대한 우려가 담겼다.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향하는 과정에서는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낯선 음식·언어로 인한 고통, 독립에 대한 희망과 척박한 현실 사이의 복잡한 심경도 드러난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서행별곡'을 현존하는 친필 유일본으로 보고 있다. 전통 유학자가 시대의 아픔과 독립 염원을 한글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문학사와 독립운동사 양쪽에서 가치가 큰 자료로 평가된다.
이번 기증은 2025년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서행별곡' 외에도 강화학파의 학문 성과를 담은 '초원담로', '두시약설', '양명문초' 등 희귀 고문헌이 포함됐다.
도서관은 오는 9월까지 기증 자료의 목록과 해제를 먼저 공개하고, 2027년 고화질 디지털화를 마친 뒤 누리집을 통해 원문을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