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재원 > 안녕하십니까? '이슈철가방' 주재원입니다. 이번 주말은 81주년 광복절입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광복절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의미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광복절을 맞아서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반추해 보고 또 함께 생각해 볼 사안들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하신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신승엽 교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 신승엽 > 안녕하세요.
◇ 주재원 > 내일이 광복절인데요. 우리가 그냥 휴일로만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교수님께서 보실 때 광복절이 갖는 역사적 의미,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 신승엽 > 일단 광복절은 우리 다 아시겠지만 일제로부터 한국이 해방돼서 주권을 되찾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죠.
첫 번째는 '해방'입니다. 해방은 말 그대로 일본 제국의 붕괴로 인해 피지배 상태에 있던 한국이 벗어났다는 역사적 사건이나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한국의 수동적인 측면, 주어진 해방이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인의 주도적인 투쟁의 결실이라기보다는 연합국의 승리로 인해 주어졌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독립'이 있습니다. 타국의 지배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주적인 근대 주권국가를 수립했다는 정치적·법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임시정부나 독립운동가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목표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광복'이 있습니다. 광복은 한자어 그대로 '빛을 되찾음'이라는 뜻이죠. 빼앗겼던 주권과 국토를 다시 찾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빼앗겼던 것을 되찾는다는 의미에서 한국의 내재적인 역사적 맥락이라든가 주체적인 투쟁을 강력하게 내포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국사학계에서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또 민족의 주체적 역량을 부각하기 위해 광복을 공식 용어로 채택해 온 상태입니다.
그래서 의미를 말씀드리자면 사실 기본적으로 광복이라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일제 식민지배의 압제와 통치로부터 벗어난 정치적인 경축이자 민족이라는 관점에서도 환희의 순간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광복이라는 것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여러 층위의 풀어야 할 숙제를 남겨두고 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주재원 > 지금 교수님 말씀하시는 게 세 가지 층위로, '해방·독립·광복'이라는 세 단어를 통해 풀이를 해주셨는데요. 일각에서는 우리 민족이 이룬 성취가 아니라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얻어진 것이라는 입장을 주장하는 분들도 있지 않습니까?
◆ 신승엽 > 결국은 두 가지의 해석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주체적으로 쟁취한 독립이냐, 아니면 수동적으로 주어진 해방이냐. 사실 그동안은 정부가 중심이 돼서 탈식민의 역사적 서사를 주도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광복이라는 말과 의미가 국가적인, 또 공식적인 하나의 서사와 제도로 정착돼 왔습니다. 국사학계도 이에 발을 맞춰 온 것이죠.
1960년대부터 70년대에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주요 의제가 있습니다. 그동안 36년간 식민지배를 받다 보니까 식민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이념으로 채택된 식민사관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것인가, 그리고 민족사적인 역사 서술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집중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역사의 주체가 아무래도 민족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고, 이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독립운동사가 그동안의 역사 서술에서는 중심이 됐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작용이 크면 반작용도 크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독립운동사도 우리가 굉장히 여러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사실 여러 조직과 다양한 계층, 이념, 또 지역과 국가를 넘나드는 하나의 네트워크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고려되지 않고 모든 해방 이후의 역사 서술 자체가 민족 중심으로 수렴되다 보니까, 이에 대한 거부 반응에서 이른바 '수정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독립이 우리의 투쟁이 아니라 연합국들이 승리하고 일본이 패배했기 때문에 오직 가능했다는 인식이 생겨나게 된 거거든요. 그런데 이 인식 자체만 봤을 때는 저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패망만으로 광복 설명하는 건 편협…독립운동·국제정세 함께 봐야"
◇ 주재원 > 그런데 또 한편에서는 일본의 식민 통치로 우리나라가 개화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 역사 인식의 위험성은 어떤 부분에 있다고 보십니까?◆ 신승엽 >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소위 말하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식민지 수탈론'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만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보고 싶은 부분만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 초부터 식민지 수탈론과 근대화론의 충돌 논쟁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내재적 발전론', 그러니까 조선 사회 내부에도 사회·경제적인 발전과 근대화의 동력이 존재했다는 역사관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경제사학계를 중심으로 일종의 연구사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연구가 한국 학자에 의해 나오는데, 충남대 교수였던 허수열 교수의 『개발 없는 개발』이라는 책입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반박이라고 볼 수 있겠죠. 허수열 교수는 식민지 시기의 경제 성장 자체를 부인하거나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경제사학자들이 사용했던 조선총독부가 생산한 방대한 통계자료를 다시 분석합니다. 기존 통계자료의 작성 방식부터 계산법, 누락된 변수, 민족 간 분배 등을 재검토하고 새로운 통계자료도 확인합니다. 그러면서 '성장이 없었다'가 아니라 성장률이라는 단 하나의 총량 지표만 가지고 식민지 경제의 성격과 조선인의 생활 수준을 모두 판단할 수 없다고 본 것이죠. 그러면 무엇을 봐야 하느냐. 과연 토지 소유는 어떻게 돼 있었는지, 그중 몇 퍼센트가 조선인에게 소유됐는지, 민족별로 재산 소유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는지, 임금과 소비, 특히 1인당 곡물 소비량 같은 것들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겁니다.
결국 식민지 근대화론 측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식민지 시기의 GDP가 3~4% 정도 성장했다고 한다면, 이 가운데 과연 얼마나 조선인에게 과실이 돌아갔는가를 따져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조선인의 1인당 실질소득은 증가했는지, 그러한 경제 성장이 실제 삶의 질 향상에 기여했는지도 역으로 질문해야 하는 것이죠. 결국 경제 성장을 했다고 한다면 '이게 누구에게 귀속됐느냐',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공정했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 주재원 > 단순히 경제 규모가 커졌다는 사실만 가지고 식민지배가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는 말씀이군요.
◆ 신승엽 > 그렇습니다. 또 하나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근대'라는 것을 지나치게 절대화해 왔다는 겁니다. 식민지배 때문에 우리가 근대 국민국가이자 자주국가를 이루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다 보니까, 우리가 반드시 근대라는 어떤 목표를 향해 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식민지 수탈론이나 식민지 근대화론 모두 근대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양쪽을 모두 비판하면서 보다 균형 있게 식민지 시기를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도 존재합니다.
"국제정세가 광복의 조건 제공…한국인의 독립 요구와 투쟁도 함께 평가해야"
◆ 신승엽 > 앞서 말씀드렸던 광복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의 패망이라는 국제정세의 변화가 광복의 결정적인 조건을 제공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한국의 해방을 설명하는 것은 굉장히 편협하고 단순한 해석입니다. 광복의 과정에는 다양한 역사적 주체와 집단들이 참여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1943년 11월 말 이집트 카이로에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 중국 장제스가 모여 카이로 회담을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한국의 독립에 대한 약속이 논의됐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국제적 사건이죠.그런데 이러한 선언이 이루어지기까지 한국인들의 자발적이고 강력한 독립 요구가 있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카이로 회담이 열리기 약 6개월 전인 1943년 5월에는 대중국 한인대회 선언이 있었습니다. 한국독립당, 한국민족혁명당, 한국애국부인회, 청년회 등이 참여해 국제적인 선언을 한 것입니다.
또 조소앙이나 김규식 같은 인사들이 장제스를 만나 한국 독립에 대한 중국 측의 지원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한국광복군이나 의용군의 끊임없는 무장투쟁이 있었고, 이승만 역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독립을 요구하는 외교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보면 당시 외부의 강대국들에게도 각자의 이해관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강대국들도 철저하게 자국 중심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고, 다만 국제적인 구조적 조건을 제공했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함께, 다각적인 면에서 봐야 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즉 광복을 바라볼 때 국제정세와 일본의 패망이라는 외부적 조건을 인정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독립을 요구하고 투쟁했던 한국인들의 노력까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 주재원 > 결국 광복절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일본이 패망했고 우리가 해방됐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국제사회의 복잡한 이해관계까지 함께 살펴보는 것이라는 말씀이시네요.
◆ 신승엽 >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런 복합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데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기억하면서 미래 협력해야…한일관계, 역사와 현실을 동시에 보는 성숙한 자세 필요"
◇ 주재원 > 한일관계는 경제와 안보 협력 등이 얽혀 있는데, 과거사를 기억하는 것과 미래 협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할 때 역사학자로서 '이 정도까지는 지켜야 한다'는 대원칙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신승엽 >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기본적으로 첫 번째는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이 반드시 일본을 현재의 적으로 규정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일본과 우리가 현재 협력한다는 것이 과거사를 모두 잊어버리거나 식민지배를 정당화한다는 것도 결코 아니죠. 그렇다면 성숙한 역사 인식이란 무엇이냐. 결국 이 둘을 우리가 동시에 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둘 중 하나만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하나의 프레임만 두드러지게 이야기하는 입장은 역사가 지나치게 정치화됐거나, 저는 개인적으로 '물화된 역사 인식'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결국 광복절을 앞둔 현 시점에서 역사, 특히 식민지 시기의 한국사를 왜 가르치고 배우고 생각해봐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목적도 여기에 결부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사실에 대한 기억이 필요합니다. 식민지배의 폭력과 강제성을 철저히 기억하고 또 파고들면서 당시 한국 사회가 경험했던 식민지 시기의 여러 가지 측면, 정치·사회·경제·문화에서의 변화들을 우리가 인정할 필요도 있습니다. 동시에 현재로 넘어와서는 왜 지금 한일관계가 중요한지, 특히 무역이나 인적 교류, 공급망, 안보 차원에서 어떤 협력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끝으로 우리가 스스로 과거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그런 능력을 키우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성숙한 역사 인식이라는 것은 특정 국가에 대한 증오감이나 적대심을 재생산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미래를 위해서 과거 따위는 모두 덮자'는 것도 아닙니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지배했을 때 그것이 인간의 삶에 어떠한 결과와 영향을 낳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국과 전쟁, 인권, 국제적인 문제의 차원으로 확대돼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 주재원 > 역사를 기억하되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우리가 여전히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독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2026년 일본 방위백서에서도 독도를 일본 고유의 영토인 '다케시마'라고 명시했고, 올해로 22년째 같은 주장을 일본 정부가 반복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매번 항의하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없어보이는데,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우리는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까요?
◆ 신승엽 > 한일 양국은 협력과 갈등이 동시에 존재하는 복합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고,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일 협력을 추진한다고 해서 독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조금도 양보할 필요도 없고, 또 양보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독도 문제에서 일본과 우리가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한일 간의 모든 협력을 거부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
협력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적극적으로 협력하되, 핵심적인 원칙에서는 우리가 물러나지 않는 자세를 갖고 일관되고 차분하게, 또 반복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항의하는 것은 사실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입장을 기록으로 남기는 측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일본에 항의하는 것만으로 당장 일본의 주장을 바꾸겠다는 접근보다는, 우리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확인시키고 기록으로 남긴다는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독도 문제처럼 국민적 감정이 크게 작용하는 사안일수록 오히려 차분하고 일관된 대응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한일관계 전체를 독도 문제 하나로만 규정해서도 안 됩니다. 독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분명하게 견지하면서 동시에 경제, 안보, 인적 교류 등 협력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실질적인 협력을 이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국 역사 문제와 외교·안보 문제를 모두 감정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각각의 사안에서 우리의 국익과 원칙을 분명하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도 문제, 정권 따라 냉탕·온탕 반복 안 돼…초당적·장기적 정책 필요"
◇ 주재원 > 독도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정권에 따라서 유화나 강경 태도가 왔다 갔다 하면서 냉탕과 온탕을 반복할 게 아니라, 초당적이고 장기적인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신승엽 > 그렇습니다.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역사적 근거가 무엇이고, 그 한계와 허점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제대로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국제사회에 감정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서 이 섬이 분쟁지역이라는 것을 계속 환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오히려 일본이 주장하는 '영토 분쟁지역'이라는 프레임에 우리가 말려들어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정부와 역사학자들이 함께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자료를 분석하고, 국제법적으로 논리를 무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간단히 말씀드리면,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에서 칙령 제41호를 공포한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울도군의 관할구역을 울릉전도와 죽도, 그리고 석도로 명시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했고, 반대로 일본에서는 어떻게 했느냐를 살펴봐야 합니다. 1877년 일본의 태정관 지령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신정부가 세워지고 전국에 지적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울릉도와 그 부속 섬을 일본의 지적에 넣을지 말지를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일본 외무성이 태정관에 질의를 했고, 이에 대해 태정관이 '다케시마와 그 일도는 본방과 관계가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습니다.
그리고 1951년 일본이 패망한 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게 됩니다. 그런데 일본은 여기에서 한국을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한 지역으로 규정하면서 독도가 한국 영토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를 반대로 생각해볼 필요도 있습니다. 관련 문서가 여러 차례 변경됐고, 특정 시점의 미국 정부 문서 하나를 최종 조약 자체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입장에서도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부분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감정적인 대응이 아니라 역사적 자료와 국제법적 논리를 차분하게 축적하는 것입니다.
"일본 문화 좋아한다고 친일? 지나친 비약…문화와 역사 인식은 별개로 볼 수 있어야"
◇ 주재원 > 사실 저희 세대만 해도 어렸을 때 일본에 대한 반감이 컸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는 일본을 친근하게 여기고, 일본 만화나 가요, 음식을 즐기고 여행도 많이 가는데요. 이를 두고 '친일문화' 라고 하는 시각도 일부 있는데,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신승엽 > 일본 문화를 소비하는 것 자체를 친일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일본은 단순히 우리를 식민 지배했던, 고통과 아픔을 준 국가라는 하나의 이미지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문화 콘텐츠 생산국이기도 하고, 주요 여행지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공통점을 가진 이웃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우리를 언제 위협에 빠뜨릴지 모르는 나라라는 인식도 함께 공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일본을 바라보는 방식이 구세대와 신세대가 다르다고 해서 특정한 사상을 주입시키거나 대중적인 선동을 통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문화와 정치가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두 가지를 모두 경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 자신을 향해서 '내가 일본 문화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나는 일본의 모든 것이 좋다. 따라서 일본이 어떤 역사 인식을 하든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무비판적이고 무책임하고 몰지각한 태도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타인을 향해서 '네가 일본 문화를 참 좋아하는구나. 너는 정말 친일이야. 너는 역사 인식이 없어'라고 단계적으로 나아가는 것도 지나친 비하이고 과도한 비판이며,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일본 문화를 좋아하면서도 과거사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느냐, 혹은 반대로 일본을 싫어하면서도 필요한 영역에서는 일본과 적극적으로 협력할 수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실 이것이 시민으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성숙한 역사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광복의 기쁨 기억하되 선택적 기억·망각은 경계해야"
◇ 주재원 > 광복 80여 년이 지났습니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역사적 가치는 무엇일지, 끝으로 덧붙이실 말씀이 있다면 듣고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승엽 > 광복절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우리 대한민국과 한국인들에게 정치적으로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큰 기쁨이자 경축할 만한 일입니다. 우리가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자신을 헌신하고 희생했던 분들의 고귀한 열정과 헌신을 높이 평가하고 계속 기억해야 합니다.
다만 동시에 과거를 지나치게 과대하게 하나만 강조한다거나, 필요한 것만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나머지는 지워버리는 '선택적인 망각'과 '선택적인 기억'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주재원 > 네. 지금까지 81주년 광복절을 맞아서 광복절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특별한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한동대학교 글로벌리더십학부 신승엽 교수였습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 신승엽 >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