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도권 주택 공급의 80%, 서울은 90%를 차지하는 민간 공급을 되살리기 위해 재개발·재건축과 비아파트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 재개발 조합설립 동의율을 현행 75%에서 70%로 낮추고 다세대·다가구주택은 더 넓고 높게 지을 수 있도록 건축 규제를 푼다.
국토교통부가 13일 발표한 '전월세 및 매매시장 안정을 위한 주택 신속공급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정비사업의 지연 요인을 줄이고 공급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른 비아파트와 매입임대 공급을 확대해 민간 주택 공급 생태계를 복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2022년 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이후 민간 주택 공급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수도권 주택 공급의 80%, 서울은 90%를 민간이 담당하는 만큼 공공택지 공급만으로는 수급 불안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서울의 재개발·재건축 착공을 최근 10년 평균인 연간 2만2천호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도심복합·소규모 정비사업을 통해 연간 8천호를 추가해 서울 도심에서 연 3만호 수준의 착공을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
재개발 동의율 75→70%…용적률보다 '속도'
정부는 우선 재개발·재건축의 사업 기간을 줄이고 규제를 개선해 2030년까지 수도권에서 약 23만4천호가 정상적으로 착공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재개발 조합설립 동의율은 재건축과 같은 수준으로 낮춘다. 현재 토지 등 소유자 75%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조합을 설립할 수 있지만 이를 70%로 완화한다. 공공재개발·재건축의 사업시행자 지정 동의율도 현행 67%에서 60%로 낮춘다.
시공사 선정 절차도 간소화한다. 일반경쟁입찰에 시공사가 한 곳만 참여한 경우 재입찰 절차를 줄여 시공사 선정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한다.
사업을 빨리 진행하는 정비사업에는 인센티브를 준다. 재개발 사업시행자가 현금청산자로부터 2028년까지 취득하는 부동산에 대해서는 취득세를 감면한다.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고 부동산 취득일로부터 2년 이내 착공하는 사업장이 대상이다.
PF 대출보증 한도를 총사업비의 60%까지 높여주는 정비사업 특례도 2027년까지 1년 연장한다. 정비사업 이주비 조달 여건도 개선해 자금 문제로 사업이 지연되는 것을 최소화한다.
사업장별 관리도 강화한다. 국토부가 직접 사업 추진 현황을 관리하고 속도가 더딘 사업장에는 관계기관과 함께 맞춤형 지원에 나선다. 수도권 공공재개발 38곳, 약 6만호에 대해서도 사업 기간 단축을 추진한다.
이번 대책은 용적률을 추가로 높여 사업성을 개선하기보다는 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병목을 제거해 착공 시기를 앞당기는 데 방점을 찍었다.
국토부 정우진 주택공급추진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정비사업 활성화의 방점은 속도"라며 "병목되는 부분은 풀어주고 단축할 수 있는 부분은 단축하겠다"고 밝혔다. 용적률 완화에 대해서는 사업성 개선에는 효과가 있지만 지방정부와 기부채납을 협의해야 하고 추가 사업성을 주민들이 어떻게 나눌지를 놓고 갈등이 발생할 수 있어 실제 사업 속도 향상으로 이어질지는 확신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세대·다가구 더 넓고 높게…비아파트 13만호 착공 지원
아파트보다 공급 기간이 짧은 다세대·다가구와 오피스텔 등 일반주택의 공급 생태계도 복원한다. 정부는 전세사기 여파와 각종 규제 등으로 비아파트의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위축되면서 공급 실적이 장기 평균의 25% 안팎까지 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국토부 장우철 주택정책관은 사전 브리핑에서 도시형생활주택과 다세대·다가구, 오피스텔 공급이 어려워진 상황을 설명하면서 "사실상 공급 생태계가 붕괴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장기 평균의 한 25% 내외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건축·세제·금융 규제를 함께 풀어 2030년까지 수도권 일반주택 13만호의 착공을 지원한다. 우선 다세대·다가구주택을 더 넓게 지을 수 있도록 건축 가능한 바닥면적 기준을 현행 660㎡에서 1000㎡ 미만으로 확대한다. 다가구주택은 현재 3층에서 4층까지 지을 수 있도록 층수 제한도 완화한다.
건설자금 지원도 확대한다. 다세대·다가구 건설자금 대출 한도를 현행 7천만원에서 9천만원으로 높이고 금리는 3.5%에서 3.2%로 낮춘다.
민간공급 활성화를 위해 오피스텔을 포함한 일반주택(비아파트) 공급생태계를 정상화해 2030년까지 수도권에 13만 호의 착공을 지원한다. 공급속도가 빠른 일반주택 공급을 적극 추진해 전월세 물량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소형 신축주택에 대한 주택 수 제외 특례도 연장한다. 사업자가 소형 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현재 시행 중인 세제상 주택 수 제외 특례 적용기한을 2028년 12월까지 연장한다.
공실이 늘고 있는 지식산업센터 등 비주거시설을 주거용으로 활용하는 길도 넓힌다. 지식산업센터 내 지원시설 면적 한도를 산업단지와 수도권에서는 현행 30%에서 50%, 비수도권에서는 50%에서 70%로 한시 확대한다. 기존 입주업체 근로자가 아니더라도 지원시설에 입주할 수 있도록 허용해 오피스텔과 기숙사 등 다양한 주거시설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지식산업센터와 상가 등 비주거시설을 주거시설로 용도 변경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수선 비용에 대해서는 취득세를 면제한다.
매입임대 14만호…공공이 민간 공급의 '수요자'로
민간이 지은 주택을 공공이 사들이는 매입임대도 비아파트 공급 회복의 한 축으로 활용한다. 정부는 LH 등의 신축 매입약정을 활용해 2030년까지 수도권에서 매입임대 14만호를 착공한다. 사업자의 초기 부담을 낮추기 위해 취득세·양도소득세 감면 등 세제 지원을 확대하고 매입가격 산정방식도 개선한다.
민간 사업자가 주택을 짓기 전에 LH가 매입을 약정해 확실한 수요처를 만들어줌으로써 전세사기 이후 크게 위축된 다세대·다가구 등 비아파트 건설을 다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장 정책관은 지난 5월 LH가 규제지역에서 신축 매입약정을 대폭 확대했다고 설명하면서 이번 대책에는 이를 더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이 담겼다고 밝혔다. 이어 "공공 부문에서 또 수요자 역할을 해줄 수 있기 때문에 무너진 도시형 생활주택, 오피스텔 생태계가 상당 부분 복원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소규모 정비사업 지원도 확대한다. 이주비 지원 등을 강화해 2030년까지 수도권에서 4200호를 추가 착공한다.
정부는 앞으로도 민간 주택 공급을 가로막는 규제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손질할 방침이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난 몇 년간 자재비 상승과 PF 위축으로 주택 공급이 부진했다고 진단하면서 금융·세제 지원과 규제 완화를 통해 공급을 활성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히 김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이 주택 공급 대책을 주문하면서 "이재명 정부는 집 못 지어서 미쳤나 이런 생각을 사람들이 할 수 있어야 돼", "마른 수건 짜듯이 짜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김 장관은 "실제 국토부 차원에선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서 영끌해서 했다"며 민간 공급 활성화를 위해 가용한 정책 수단을 계속 동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