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본명 안하영)의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의혹으로 비판받자 사실상 괘씸죄로 걸린 것 아니냐고 언급한 역사학자 심용환이 안상호의 친일파 규정은 신중해야 한다고 재차 입장을 냈다.
심용환은 1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대정친목회'라는 친일파 조직의 멤버였으면 그 자체로 친일파이고 '매일신보' 보도라는 명확한 증거가 있지 않았는가"라며 "분노의 핵심은 이 부분이었던 것 같다"라고 글을 올렸다.
그는 대정친목회가 "친일 단체가 맞고 역사 연구자에게는 매우 익숙한 단체"라며 '대정친목회와 내선융화운동'이라는 논문에서 안상호 이름이 6번 나온다고 말했다. 안상호는 1916년 11월 평의원 21명 중 한 명으로 등록돼 있고 이후 명단에서 사라지며, 고종의 전의 출신으로 안상호 진찰소를 운영한다고만 설명돼 있다는 점을 들어, 심용환은 "이것이 현재 논문에 나와 있는 내용의 전부"라고 밝혔다.
이어 "이정은의 논문에서는 그가 황실 촉탁의로 전염병이 만연했을 때 했던 의료봉사활동 그리고 자혜병원 설립자 등 초기 근대 의료기관 형성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에 대한 서술이 대부분"이라며 "하지만 이 논문에서는 '일본 부인과의 국제 결혼' 그리고 여러분이 익숙히 알고 있는 '매일신보'의 보도로 인해 한국인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고 뒤늦게 고종 독살설에 연루를 시켰다고 설명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심용환은 "저 또한 여러 각도로 추정해 본 결과 그는 식민지 지배에 순응했고, 근대 의료 보급에 있어서는 적극적이었지만 나머지 영역에서는 적당히 일제와 결탁하면서 영화를 누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앞에서 설명했듯 '대정친목회' 연구에 있어서 그의 친일 활동이 초기 '친목 단체 활동' 당시의 가입 사실과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인생 말년의 단편적인 기록밖에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가 이를 두고 단정한다면 그것은 시류에 영합하여 대중적인 호감을 사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학문적으로는 결코 옳지 못한 행동입니다. 소위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을 법학이 아닌 역사학에 단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일상에서도 누군가를 쉽게 규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과거사에 대해 그렇게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라고 썼다.
심용환은 "반민법을 보면 굳이 '수뇌', '지도적 행동', '악질적인 행위' 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6조에는 '개전의 정상이 현저한 자는 그 형을 경감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라며, 본인의 신중론 바탕에는 1949년 반민족행위처벌법 정신이 있다고 주장했다.
△대정친목회 명단에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친일파로 규정해야 하는가의 문제 △안상호가 역사적 단죄를 받을만한 죄를 지었는가에 대한 문제 등을 확인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고, 친일인명사전에도 이름이 빠져 있으며, 안상호 관련 연구 자료가 적으므로 쉽사리 친일파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부연했다.
앞서 심용환은 지난 11일 "어떤 학자의 발언 하나를 두고 언론이 '역사학계'라고 단정 지음으로 이제 그녀는 친일파의 후손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라며 "'그냥, 방송 나왔다가 의사 집안 자랑해서 괴씸죄(괘씸죄의 오기)로 걸린 거 아니에요?' 아마 이 말이 진실에 가장 가까울 것"이라고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린 바 있다.
심용환은 "여배우(하영)의 잘못이라면 그러한 가족사의 불편한 진실에 대한 진실한 반성이 없었다는 점"이라며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쉽게 누군가를 '친일파'라고 단정해 버리며 과거사에 있었던 너무나 많은 이들이 친일파가 될 것이고, 결국 친일 부역의 기준이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비판하고 기억해야 하는지 그 기준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라는 견해를 내놨다.
KBS2 예능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증조부-조부-부친-언니까지 4대째 의사 집안 출신이라고 밝힌 하영은 "증조할아버지는 양의학을 일본에서 배워오시고 한양에 개원하신 첫 의사"라며 조선의 26대 왕인 고종을 진료하기도 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전에도 인터뷰에서 증조부와 '의사 집안' 언급을 한 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증조부가 안상호는 맞지만 그에게 제기된 친일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던 하영은 이후 소속사를 통해 성급한 입장부터 냈다는 점과, 안상호가 친일 단체인 대정친목회에 속해 있었다는 점을 시인했다.
하영은 어제(12일) 자필 편지를 올려 "가족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부끄럽게도 그런 무지한 상태로 여러 자리에서 증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가족의 자랑처럼 꺼내 왔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료를 직접 찾아보는 과정에서 증조부의 친일적 행적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라는 뼈아픈 시간을 지낸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족사를 가볍게 언급했던 것을 반성합니다"라며 "가족의 역사와 그 시대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앞으로 역사를 대하는 데에 있어 더욱 신중한 태도를 갖도록 하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중증외상센터' 이도윤 감독, '참교육' 홍종찬 감독이 사과문에 '좋아요'를 누른 점도 화제가 됐다.
다음은 심용환 글 전문.
| ▶ 심용환 인스타그램 글 전문 |
| 분노의 핵심은 이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 '대정친목회'라는 친일파 조직의 멤버였으면 그 자체로 친일파이고 '매일신보' 보도라는 명확한 증거가 있지 않았는가였습니다. 대정친목회의 경우 친일 단체가 맞고 역사 연구자에게는 매우 익숙한 단체입니다. 관련 연구는 2007년, 2010년 장신에 의해서 <대정친목회와 내선융화운동>, <1920년대 대정친목회의 조선일보 창간과 운영>이라는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두 번째 논문의 경우는 대정친목회가 1910년대 '친목 단체'로의 성격을 벗어나 조선일보 탄생과 관련을 맺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논문이기 때문에 안상호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첫 번째 논문에서는 '안상호'가 6번 명기되어 있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안상호는 1916년 11월 평의원 21명 중 한 명으로 등록이 되어 있고 이후 명단에서는 사라집니다. 논문 저자의 설명 또한 간략합니다. 의료인은 안상호 외 4인이었고 안상호에 대한 설명은 고종의 전의 출신으로 안상호 진찰소를 운영한다고만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현재 논문에 나와 있는 내용의 전부입니다. 지난번 글에서 이야기했듯 이정은의 논문에서는 그가 황실 촉탁의로 전염병이 만연했을 때 했던 의료봉사활동 그리고 자혜병원 설립자 등 초기 근대 의료기관 형성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에 대한 서술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논문에서는 '일본 부인과의 국제 결혼' 그리고 여러분이 익숙히 알고 있는 '매일신보'의 보도로 인해 한국인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고 뒤늦게 고종 독살설에 연루를 시켰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정도 자료를 두고 그는 '친일파가 맞아'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앞선 글에서 밝혔고 저 또한 여러 각도로 추정해 본 결과 그는 식민지 지배에 순응했고, 근대 의료 보급에 있어서는 적극적이었지만 나머지 영역에서는 적당히 일제와 결탁하면서 영화를 누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앞에서 설명했듯 '대정친목회' 연구에 있어서 그의 친일 활동이 초기 '친목 단체 활동' 당시의 가입 사실과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인생 말년의 단편적인 기록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를 두고 단정한다면 그것은 시류에 영합하여 대중적인 호감을 사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학문적으로는 결코 옳지 못한 행동입니다. 소위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을 법학이 아닌 역사학에 단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일상에서도 누군가를 쉽게 규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과거사에 대해 그렇게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제가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은 1949년 반민족행위처벌법의 정신 때문입니다. 5. 독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했거나 그 단체의 수뇌 간부로 활동하였던 자 10. 일본 국책을 추진시킬 목적으로 설립된 각단체본부의 수뇌 간부로서 악질적인 지도적 행동을 한 자 12. 개인으로서 악질적인 행위로 일제에 아부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자 반민법을 보면 굳이 '수뇌', '지도적 행동', '악질적인 행위' 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6조에는 "개전의 정상이 현저한 자는 그 형을 경감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적극적인 부일 협력자에 대해서는 단호한 처단을, 그렇지 않은 자 혹은 죄를 지었더라도 반성을 하면 그에 걸맞는 처벌을 하겠다는 발상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때 제대로 처벌을 했다면'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극히 공감합니다. 많은 분들이 '친일파 파묘 및 재산 환수하자'고 합니다. 저 또한 부일협력 관련 특별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몇 가지를 확인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첫째, 대정친목회 명단에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친일파로 규정해야 하는가의 문제, 둘째, 안상호가 역사적 단죄를 받을만한 죄를 지었는가에 대한 문제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현재는 친일인명사전에 그의 이름이 빠져 있고 연구 결과가 위와 같은 수준입니다. 당연히 이는 학자들의 추가적인 연구와 관련 전문가들의 합의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국민적인 소통으로 결정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있다면 저 역시 그것에 근거해서 행동할 것입니다. 여하간 오해와 모욕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저의 부덕이라고 생각하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욱 반성하며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친일파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숙고하고 그래서 더욱 확실하게 역사적 진보를 이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