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선생은 1876년생으로 일본의 노구치 히데오와 동갑입니다. 그는 매독균을 세계 최초로 발견한 세균학자로 '일본의 슈바이처'로 불리죠. 일본 1천엔 지폐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에 태어난 '천재' 알베르토 아인슈타인과 동갑내기입니다. 1900년생 이봉창 의사는 '어린 왕자'의 생텍쥐페리, 1902년생 유관순 열사는 '분노의 포도'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존 스타인벡과 나이가 같고요.
이렇게 태어난 곳만 달랐을 뿐인데 세계사적 인물들이 과학과 문학을 탐구할 때, 독립운동가들은 일본제국 식민지라는 가혹한 운명 속에서 청춘을 바쳐 독립을 외쳤습니다.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수많은 청춘들이 일제강점기에 스러졌습니다.
그중 하나가 '강제동원'입니다. 강제동원조사법에서 규정한 강제동원은 일제가 1931년 만주사변 이후 태평양전쟁에 이르는 시기 군인·군무원·노무자·위안부 등의 생활을 강요당한 자가 입은 생명·신체·재산 등의 피해를 말합니다.
일본법원의 '무시'…다시 한국에서 15년만의 '첫 인정'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1997년 12월 손해배상과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라며 일본기업을 상대로 일본 법원에 소송을 냈습니다.
1심(2001년 3월)과 2심(2002년 11월), 대법원 격인 일본 최고재판소(2003년 10월) 모두 이를 기각했는데요. 일본 법원은 강제 동원이 아닌 자발적 노동이었고,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손해배상 청구권으로 소멸했다는 논리였습니다.
일본에서 6년의 시간을 보낸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2005년 우리나라 법원에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1심(2008년 4월)과 2심(2009년 7월)은 일본 판결의 효력을 인정하며 일본기업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첫 소송 15년 만인 2012년 5월 대법원에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와 강제동원은 명백한 불법이고, 한일청구권협정도 정부 간의 합의일뿐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살아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이듬해 파기환송심은 일본기업에 1억원씩 배상하라며 강제동원 피해자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일본기업이 재상고하면서 공은 다시 대법원으로 돌아갔습니다.
'재판 거래'가 흘려보낸 5년…청구권 기준 2018년 재확인
일본기업의 배상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은 무려 5년이 흐른 2018년 10월에 나옵니다.파기환송심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이렇게 오래 걸린 것은 이례적인데요. 파기환송심은 대법원 결정의 취지를 살려 선고하기 때문에, 파기환송심 결과를 놓고 대법원이 오래 고민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박근혜 정권과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의 '재판 거래' 의혹이 나옵니다. 한일관계 악화를 우려한 박근혜 정권과 상고법원을 만들고 싶은 양승태 대법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고의로 재판을 연기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입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받고 대법원의 최종 선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재판 거래 의혹의 후폭풍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는 기준으로 삼을 대법원 판결이 2012년인지 2018년인지를 놓고 판결이 엇갈렸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지난 12일 대법원 선고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대법원은 고(故) 민문식씨의 자녀들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본제철이 위자료 총 8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을 기준으로 손해배상 청구권이 발생한다고 확인했습니다. 이에 따라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 3년을 감안하면, 2021년 10월 전까지 낸 소송은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일본의 침묵…역사는 전범의 '동의'로 기록할 것
핵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일본기업이 배상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일본기업의 국내 재산을 찾아 강제집행에 나서야 하는 실정입니다. 여기에 윤석열 정권이 재단을 통해 민간 기여금으로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 카드를 제시하면서 정치·외교적 셈법은 더 복잡해졌고요.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30년 가까운 피맺힌 법정투쟁 끝에 진짜 원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일본기업의 진정성 있는 '사과'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습니다.
법조계에서 침묵은 상황에 따라 세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방관', 스스로를 지키려는 '방어권', 그리고 상대의 주장에 대한 묵시적 '동의'입니다.
피해자들은 침묵(방관)하지 않고 소리쳐 정당한 권리를 쟁취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방어권'으로 침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피해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모든 법적 권리가 소멸하기만을 조용히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일본이 명백한 역사적 증거와 최고 법원의 판결 앞에서도 침묵을 이어간다면, 훗날 역사는 이들의 침묵을 전범행위와 죗값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동의'로 기록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