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에 동거인 부탁해봐야죠"…비거주 1주택자 '혼돈'

연합뉴스

직장인 김모(47)씨는 소위 '비거주 1주택자'다. 5년 전 서울 A구에 아파트를 구입했고 전세를 놓은 뒤 한 번도 거주하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실만으로 그는 정부가 규정한 '투기적 목적의 비거주 1주택자'다. 하지만, 사정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일주일에 두 번 병원을 가야 하는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구매한 집과 차로 40분 거리인 본가 근처에 전세를 얻었다. 지방에서 사업을 하는 동생이 서울에 올라오면 그때 자신이 구매한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투병은 계속됐고, 동생의 사업도 더 어려워졌다. 집을 구매한 뒤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아직까지 매매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그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계속 부모님 댁 근처에서 살아야 하는데 비거주 1주택자 전세 대출이 내년부터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걱정"이라며 "아버지를 돌보고 있다는 병원 서류를 모아서 조만간 은행에 상담을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금융위원회가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한 금융 종합대책'에서 전세 대출 보증 제한을 투기적 목적의 비거주 1주택자로 확대하면서 개인 사정으로 거주가 어려웠던 1주택자들의 불만과 걱정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본인 집을 사두고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소위 '갭투자'를 막는 게 정책의 취지라는 입장이다. 현재는 다주택자와 투기지역, 투기과열지역에서 3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를 취득한 사람을 대상으로 보증기관의 전세대출 보증을 제한하는데, 여기에 투기 목적의 비거주 1주택자를 추가했다. 본인 혹은 배우자가 해당 주택에 실거주한 적이 없으면서 세입자의 보증금을 주택 매입자금으로 활용한 소위 '갭투자'에 해당한다는 해석이다.

천정부지 전셋값에 월세 비율도 역대 최대…전세난민 쏟아지나

14일 서울 시내 한 은행 창구 모습. 연합뉴스

전세대출은 주택금융공사(HF)·주택도시보증공사(HUG)·SGI서울보증의 보증을 바탕으로 취급되는 만큼 보증이 중단되면 사실상 대출을 받을 수 없다.  금융당국은 수도권·규제지역 아파트를 보유한 1주택자의 전세대출 규모를 약 9조 3천억원, 약 6만건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세대출이 막힌 비거주 1주택자가 실거주를 선택하면 세입자는 다른 전월세 매물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최근 전세 물량이 줄어 선택지가 좁아진 세입자들이 월세나 외곽 지역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실제로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만 1023건, 월세 매물은 1만 7737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전세 매물 2만 3074건, 월세 매물 1만 8819건과 비교하면 각각 2051건(8.9%), 1082건(5.7%)이 줄었다.

전세 매물이 감소하면서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KB부동산이 발표한 전국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7억 458만원으로 처음으로 7억원을 넘어섰다.

반면 서울 아파트 임대차시장에서 월세 계약 비중은 절반을 넘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 아파트 전체 임대차 계약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55.1%로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 1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집주인 주소만 이전? 은행으로선 알 길 없다"

서울 서초구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집주인 대출 가능 매물이 붙은 모습. 연합뉴스

집주인은 집주인대로, 임차인은 임차인대로 대출규제에 골머리를 앓다 보니 집주인이 세입자와 주민등록상 함께 거주하는 '한 지붕 두 가족' 편법까지 거론되고 있다.

자녀 교육 때문에 자신의 집을 세 주고 타 지역에서 거주중인 B씨는 "전세대출을 유지하려면 현 세입자에게 세대분리 동거인 등록을 요청하는 방법도 고려중"이라고 전했다.

세대분리 동거인은 같은 주소에 거주하더라도 주민등록상 별도 세대로 분리돼 세대원이 아니라 세대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임차인이 허락만 한다면 집주인이 주소만 이전해 놓은 걸 은행이 무슨 수로 알 수 있겠냐"며 "소유자나 배우자가 하루라도 그 집에 살았다는 게 증명되면 전세 대출을 해 준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어서 갭투자를 없애는 정책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지난 6.27 대책 이후 1억원으로 제한된 전세퇴거자금대출 액수를 늘려달라는 요구도 나온다.

다른 지역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 C씨는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줘야 내가 들어가서 살 수 있는데 한도를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전세퇴거대출 한도를 올리는 건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본인의 자산으로 살 수 없는 집을 임차인의 보증금으로 구매하는 걸 투기라고 규정한 만큼 해당 주택을 매매하라는 게 정책의 요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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