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자라던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였다…침묵을 추적한 손녀

홍범도와 초원에 남겨진 사람들…'뭉우리돌의 광야'
의열단 독립운동 도운 헝가리인 폭탄 전문가 '마자르'

한겨레출판 제공

가족은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집안의 수치, 전과자, 말해서는 안 되는 이름. 미국 휴스턴 교외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 자란 마거릿 주혜 리에게 할아버지는 존재했지만 설명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신간 '비밀의 들판'은 저자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할아버지의 삶을 추적하며 쓴 가족사이자 현대사 기록이다.

침묵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성인이 된 저자가 할머니의 증언을 듣고, 병으로 조사를 끝내지 못한 아버지의 작업을 이어받으면서다. 기자가 된 저자는 오래 숨겨졌던 가족사의 빈칸을 따라 한국과 미국을 오간다.

추적 끝에 드러난 할아버지는 단순한 전과자가 아니었다. 애국지사 이철하. 그는 일제강점기 충남 공주에서 항일 동맹휴학을 이끌고 여러 차례 항일 시위를 조직한 학생운동가였다.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 참여해 비밀결사 활동을 하다 투옥됐고, 공산주의 혁명에 뿌리를 둔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였다.

책은 잊힌 독립운동가 한 사람을 복원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한국전쟁과 분단의 시간 속에서 '공산주의자 전과자의 아내'라는 낙인은 가족의 생존을 위협했다. 할머니에게 과거를 지우는 일은 침묵이 아니라 자식들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저자와 아버지의 노력 끝에 할아버지 이철하는 사후 60여 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다. '비밀의 들판'은 묻힌 이름을 되찾는 이야기이면서, 가족이 삼킨 침묵이 어떻게 다음 세대의 정체성과 공허로 이어지는지를 따라가는 책이다.

저자는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답이 현재가 아니라 과거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집이란 장소가 아니라,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설명할 수 있게 되는 상태라는 사실도 함께.

마거릿 주혜 리 지음 | 장상미 옮김 | 한겨레출판


수오서재 제공

중앙아시아 광야에는 한인들의 이름이 흩어져 있다.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이끈 홍범도 장군의 마지막 생, 3대에 걸쳐 독립운동가 열네 명을 낸 허위 가문, 고려극장과 집단농장을 일군 이들, 벌판에 방치된 옛 무덤들이다.

'뭉우리돌의 광야'는 국외독립운동사적지 기록 프로젝트 '뭉우리돌을 찾아서'의 세 번째 책으로,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에 남은 한인 독립운동과 강제 이주의 흔적을 담았다.

저자는 2017년부터 세계 곳곳의 독립운동사적지와 후손들을 찾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 왔다. 이번 책은 중앙아시아를 여러 차례 답사하며 만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증언과 현장 사진 183컷을 함께 실었다.

책의 출발점은 1937년 한인 강제 이주다. 연해주에 살던 한인들은 소련의 명령으로 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내던져졌다. 허락된 짐은 1인당 30㎏뿐이었다. 낯선 기후와 언어, 황무지 속에서도 이들은 농장을 일구고 극장을 세우며 공동체의 기억을 지켜냈다.

'뭉우리돌의 광야'는 잘 알려진 이름의 뒤쪽을 들여다본다. 홍범도 장군은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뒤 병원 경비와 고려극장 수위, 정미소 노동자로 일하다 크즐오르다에서 생을 마쳤다. 허위 가문의 후손들은 중앙아시아 곳곳에서 어렵게 삶을 이어갔고,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의 흔적도 폐허와 무덤 사이에서 겨우 이어진다.

책에는 이름이 거의 잊힌 인물들도 여럿 등장한다. 고려극장에서 독립운동의 기억을 무대 위로 되살린 태장춘, 기록물을 모으며 역사를 남기려 한 이인섭, 항일 의병과 한글학자, 농업 지도자,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삶이 광야의 좌표처럼 이어진다.

김동우 지음 | 수오서재


집문당 제공

영화 '밀정'에는 의열단의 독립운동을 돕는 외국인 폭탄 전문가가 등장한다. 한국 독립운동사에서도 그는 박태원의 '약산과 의열단'에 '마자알'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돼 왔다. 김원봉과 가까웠다고 전해졌지만, 정확한 신원과 행적은 오랫동안 불분명했다.

헝가리의 한국학 학자 초머 모세가 쓴 '마자르'는 의열단을 도운 헝가리인 폭탄 전문가의 실체를 추적한 연구서다.

저자가 밝힌 그의 이름은 마자르 가보르(Magyar Gábor)다. 그동안 전설처럼 남아 있던 인물을 역사적 사료 위에서 복원한 것이다.

100여 년 전 한 헝가리인은 어떤 경로로 한국 독립운동의 주요 무대였던 중국과 러시아에 이르렀고, 왜 의열단을 돕게 됐을까.

저자는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유라시아 대륙에서 헝가리인과 한국인이 만났을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사료를 추적했다. 헝가리 국립기록원에 보존된 네덜란드·이탈리아·폴란드·중국·일본 관련 외교문서와 신문기사, 기고문, 경찰조서, 개인 문헌 등을 발굴해 교차 검증했다.

'마자르'는 한 외국인의 행적을 밝히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 독립운동이 국경 밖에서 어떤 사람들과 연결됐는지, 또 그 과정에서 어떤 이름들이 기록 밖으로 밀려났는지를 함께 묻는다.

책은 의열단과 김원봉의 주변부에 머물던 인물을 다시 불러내며 한국 독립운동사 속 외국인 조력자의 존재를 새롭게 조명한다.

초머 모세 지음 | 집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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