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걸어온 길을 설명하는 곡들이 될 거 같아요. '재밌게 잘 들어주세요'라고 말씀드리고 싶고, 숨겨놓은 포인트들도 있으니까 재밌게, 찾아서 한번 들어보시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연태희)
"언젠간 내야 할 앨범"(서도)이었다. 공연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던 '춘향가'를 중심에 두고 정규앨범을 내자고 이야기 나누곤 했다. 어느 날 지역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정규앨범 한 번 해 볼까요?' 했다. '춘향가'를 가져가는 방향은 또렷했기에, 그때부터 편곡에 들어갔다. 어떻게 하면 지금의 팬들과 대중에게 "공감 드릴 수 있을까"(김태주)를 첫머리에 뒀다.
때마침 알맞은 앨범명이 나왔다. 올해 2월 팀에 합류한 막내 정현빈의 아이디어였다. 여러 가지 주제를 쥐고 있는 상황, 처음에는 AI를 좀 돌렸다.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제목이었으면 했다. 무심코 떠오른 단어가 '원'이었고, '어? 어?' 하다가 "이거다!"(모두 정현빈) 했다.
"크리에이터라면 다 공감할 텐데 어떤 목적이나 생각을 (내내) 가지고 작업하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얻어걸리는 게 많은 것 같아요. 비단 우연이라기보다는 정신의 에너지에서 스파크(불꽃)가 팍 터졌달까요." (서도)
그렇게 서도밴드(sEODoBAND)는 첫 번째 정규앨범을 '원'이라 지었다. 영원한 슬픔도 기쁨도 없이 그저 돌고 돈다는 '순환'의 이치를 풀어낸 앨범으로, 서도밴드는 '조선팝'이라는 장르를 정립하고자 했다. 판소리 '춘향가' 서사에 삶의 희로애락을 입체적으로 담아냈고, 각 곡에 맞는 아니리(판소리의 사설, 가락 없이 이야기를 풀어낸다)를 더해 총 12곡을 실었다. '언제까지'와 '나를 너를'이 더블 타이틀곡이 됐다.
CBS노컷뉴스는 8월 초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서도밴드를 만났다. 인터뷰 두 번째 편에서는 '원'이라는 앨범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데뷔 9년 만에 처음 내는 정규앨범. '드디어' 정규앨범을 발매함으로써, 서도밴드가 '해소'한 것이 있을까. 프론트맨인 서도(보컬)는 이 팀이 처음 만들어졌던 시기로 기억을 더듬었다. 행사에 다녀야 해서 '30분 분량의 레퍼토리'가 필요했고, 서도가 이를 만들었다.
"정말 초창기 때부터 했던 세트 리스트(공연 목록)여서 앨범의 전체적인 구성은 많이 완성돼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적 지혜가 될 수도 있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될 수도 있고… 그간 그런 게 쌓이면서 30분의 셋도 조금 더 완성도가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 그것도 10년 있다가 보면 조금 다르겠죠? 그치만 거듭된 십 년의 시간 동안 쌓였던 것들이 잘 드러난 앨범이 아닐까 해요. 전통성, 예술성, 대중성… 진짜 모르겠는데, 그래도 저희가 가는 방향에 있어서 (각각의) 퍼센티지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고요." (서도)
음악과 앨범을 조목조목 뜯어보면 지금까지 걸어온 9년이 고스란히 담겼지만, 어쨌든 약 두 달 만에 완성해야 했기에 촉박한 게 사실이었다. 보컬인 서도가 "정말 마지막 녹음"을 한 건 인터뷰 이틀 전이었다. 정식 발매까지 남은 시간은 열흘 무렵. 믹싱과 마스터링은 언제 하냐고 장난스레 물으니 서도는 "아마 요번 주(8월 첫 주)에 끝나지 않을까"라고 예상했다.
이번에는 녹음, 믹싱, 마스터링은 모두 한 곳(AFM Laboratory)에서 했다. 서도는 "되게 멋진 작업들을 많이 한다. 한국대중음악상에 선정된 앨범, 아티스트와도 작업 많이 하신 곳이다. 워낙에 멋있는 곳인데 급하게 부탁드렸음에도 너무너무 감사하게도 '인디펜던트'(독립적인) 정신을 이해해 주셨다"라고 말했다.
믹싱과 마스터링은 결국 '더 나은' 완성도를 위한 마무리 작업이다. 하지만 아무리 후작업에 공들인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원본의 훌륭함'이지 않을까. 첫 정규앨범 '원'의 '원본' 만족도를 질문하자 김태주(베이스)와 연태희(기타)는 주저함 없이 "좋아요"라고 입을 모았다. 연태희는 "너무 갈아 넣은 느낌이 있다. 디테일한 부분을 하나하나 신경 썼다. 음질이라든지 악센트라든지"라고 말했다.
정현빈(드럼) 역시 "녹음할 때 물리적인 시간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 점에서) 개인적으로 되게 만족한다. 몇몇 곡은 거의 한 30분 안에 끝내기도 했다. (일부는) 다음 날까지 이어진 경우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빨리 끝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렇게 빨리 끝내도 괜찮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라고 돌아봤다.
"저는 원래 만족한다는 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다, 저한테도 남한테도"라고 운을 뗀 김성현(키보드). "뭔가 더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막는 것 같아서"란다. 그런 김성현을 보고 김태주는 "본인한테 조금 과하게 엄한 편"이라고 말했다.
물론 김성현도 '불만족'한 건 아니다. 그는 "제가 작업한 건반이라든지 이런 부분이 나쁘지는 않은데 '완전 만족'하지는 않는다. 몇 번이고 수정하면서 고쳐 나간다. 이런 부분을 엄하다고 한다면 이게 업(業)인 사람은 (당연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라는 견해를 내놨다.
그러자 연태희는 "(저희도) 만족한다고 하지만 몇 년 뒤에 들으면 '이 부분은 아쉽다'라고 할 수 있다. 그건 당연하고, 인생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발전하는 존재니까"라면서도 "그 시간 안에 끝내야 했고, 그때 당시에는 '최상의 연주'를 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서도도 녹음이 생각보다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특히 '사랑가'는 "정말 정말 많이 불러서 툭 치면 나올 정도의 노래"였고, "녹음도 심지어 많이 해 본" 곡이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노래 녹음이 영 빨리 되지 않았다는 게 서도의 설명이다. 역시나 수백 번 불러본 '언제까지'도 정작 녹음할 때는 만만치 않았다.
제일 만족한 녹음은 '아리랑'이다. 서도는 "힘을 다 빼고 읊조리듯이 부른다. 집에서 편집하는데 한 번도 (저희) 앨범에서 내지 않았던 조용하고 평화로운 소리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기대된다. 사람들도 서도밴드 공연과 무대에서 에너제틱한 모습을 많이 좋아해 주시는데, '피스풀'(peaceful)한 감성도 있고 그걸 '아리랑'에 잘 녹여보고 싶었다. 사람들도 좋아해 주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완전히 피스풀 자체"로 편곡한 '아리랑'은 서도가 유일하게 앉아서 녹음한 곡이기도 하다. 그는 "양반 다리하고 힘 빼고 불렀다. 에너지를 빼려면, 릴랙싱한 소리를 내려면 저는 앉아서 하는 게 편한 것 같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아리랑'은 정말 지구의 역사가 계속 이어온 인간의 삶과, 삶의 터전에 관한 사랑을 가득 담은 곡"이라고 소개했다. 녹음할 때도 마이크와의 거리를 좁혀 정말 가까이서 불렀다.
'조선팝'은 전통음악 고유의 특징과 그에 어린 선조들의 정서를 서도밴드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장르다. 국악기가 아닌, 일반적인 밴드 셋(기타·베이스·키보드·드럼)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서도밴드가 꾸준히 선보인 '조선팝'의 "정체성을 대중 앞에 정립하는 선언"(앨범 소개 글)이 이번 '원'이다. 멤버들이 보기에도 '원'은 서도밴드표 조선팝의 '정수'일까. 서도는 "활동하는 9년 내내 고민했던 지점"이었기에, "저희끼리 정말 많이 고찰했다"라고 답했다.
'우리가 원했던 조선팝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 서도밴드는 '정서'에서 힌트를 찾았다. 서도는 "처음에는 박자나 악기 사용에 신경 쓰며 (조선팝이) 음악(장르)적으로 어떤 음악이라고 풀어내고 싶었다. 그건 지금도 유효하지만 중요한 건 한국인의 정서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라고 설명했다.
정규앨범 중심에 '춘향가' 서사를 놓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에서만 풍기는 "묘한 기시감"(서도)이 있었다. 서도는 강강술래를 부를 때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경험을 나눴다. 여러 사람이 오는 큰 공연이었는데, 설령 서도밴드를 모르더라도 상관없었다. '강강술래'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자연스레 떼창이 나왔다.
우리가 가진 정서적 에너지나 시대적 정신을 내포해 전통적으로 풀어내면 그걸 조선팝이라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뻗어나갔다고 서도는 전했다. 그는 "모든 장르는 특정한 지역에서 파생되지 않나"라며 "저희는 '원본'을 낼 수 있는 환경인 거다, 한국인으로서. 이게 제일 큰 무기가 되지 않을까. 지금은 (세계가)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시기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 같다"라고 짚었다.
인터뷰 말미, 서로가 고생한 점을 격려하는 말을 해 보자고 제안했다. 서도는 "인스타(그램)에서 되게 좋은 글을 봤다. 어떤 '인정욕'에 관한 글이었다. 인정은 사실 공허한 건데, 또 달리 보면 '공헌감'이라는 거다. 예를 들어 릴스(짧은 동영상) 올렸을 때 '왜 100명밖에 안 보지?' 할 수도 있지만, '100명은 봤네' 하고 자기 만족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내가 이걸 이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만족감을 느끼는 거다. 감히 말하자면 한국 가요, 음악 역사에서 전통을 가져가는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봐서 스스로 공헌(힘을 써 이바지함)감을 느낀다. '사회공헌' 이런 것으로만 들어본 단어인데, 인정은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힘에서 나온다고 하니 왠지 위안이 되더라"라고 돌아봤다.
연태희는 팀에 가장 늦게 합류한 막내 정현빈이 가장 많이 고생했을 거라고 언급했다. 그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형들의 애정어린 말을 듣기도 했고, 녹음은 거의 처음 작업하는 거다 보니까 스트레스를 받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라며 "고생했다"라고 전했다.
앨범 표지(커버) 아트워크는 꿈의 풍경과 현실의 장면을 기록하는 윤해승 작가가 맡았다. 표지에 담긴 각각의 이미지는 개별 트랙의 정서를 표현하고, 앨범의 콘셉트인 '원'으로 수렴된다. 앨범의 순환적 세계관을 돕는 장치 역할을 한다.
윤 작가는 서도가 검정고시 학원에서 만난 친구다. '너희 아트워크 한번 해 줄게'라는 약속을 받았고, 성사됐다. 서도밴드의 미니 1집 '문: 디스인탱글'(Moon : Disentangle) 표지에 이어 두 번째다. 윤 작가를 꼭 소개하고 싶었다고 강조한 서도는 "(윤 작가와) 정규앨범을 꼭 같이하고 싶었다. 워낙 이 앨범이 가진 서사가 있어서 파인(fine)한 거로 하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언제까지 님을 기다릴거나'라는 구절이 21번 반복되는 타이틀곡 '언제까지'는 도무지 오지 않는 몽룡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춘향의 복잡한 감정이 담긴 곡이다. 서도밴드가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원'이라는 것은 그 시작도 그 끝도 명확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시작을 했다면 계속해서 굴러갈 뿐이죠. 마치 영원할 것처럼요. 우리의 음악이 그러하길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공명하고 계속 굴러가길 바라는거죠." (서도밴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