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최근 배우 하영(안하영)의 증조부 안상호(1872~1927)를 둘러싼 친일 행적 논란과 관련해 잇따라 입장을 밝혔다.
백범 김구 선생 증손자인 더불어민주당 김용만 의원은 14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날 때 부모를 결정할 수는 없다"며 "더 중요한 것은 선조의 발걸음에 대해 알게 됐을 때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선대의 과오로 주눅 들기 보다는 내가 어떤 발걸음을 할 것이냐에 대해서 역사 정의의 측면에서 해석하고 행동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며 "그렇게 한다면 우리 사회가, 국민이 평가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속설에 대해서는 "2025년 국가보훈부에서 조사한 현장실태 조사에 따르면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연 소득이 3년 전보다 200만 원이 줄어서 2500만 원"이라며 "1인 가구로 봤을 때 월평균 중위 소득보다도 낮다"고 지적했다.
독립운동가 곽병도 지사 후손인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곽민선도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곽 씨는 "최근 한 방송에서 누군가의 후손이 증조부를 자랑스러워했다는 말에 비통하고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며 "내 증조부는 전 재산을 군자금에 쓰고 독립운동을 이어가다 투옥되셨다"고 전했다.
이어 "어릴 적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왜 가난해서 아버지에게 짐 같은 존재로 남으신 건지 잠시라도 생각한 적이 있다"며 "아버지는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두 딸에게 최선을 다하셨고, 우린 운 좋게도 사랑 속에서 행복하게 자라났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독립유공자 혹은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크면서 알게 됐다"며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겠다"고 덧붙였다.
독립운동가 송기주 선생 외증손자로 알려진 이인철 변호사도 최근 MBN '더 펀치' 방송에서 "하영 씨를 개인적으로 비난할 생각은 없다"며 "당부하고 싶은 건 3·1절 전에 상해임시정부를 다녀왔는데 여길 꼭 가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변호사는 "상하이에 정말 조그만 건물이 있는데 그곳에 가서 눈물이 나왔다. 이런 곳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고생하며 거처를 옮겼더라고 하더라"며 "어렵게 지켜낸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복절에 독립기념관도 가보시라"고 눈물을 보였다.
친일 행적으로 부당하게 형성된 재산에 대해서는 "이 재산이 어떻게 형상됐는지 알 수 없다. 만약 이 재산이 선대로부터 친일로 인한 부당한 재산일 땐 당연히 비난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독립운동 하시는 분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자손들도 마찬가지다. 모진 고문에 옥고를 다 치르고 가족들도 다 희생했다"며 "누구를 위해 그랬겠냐. 그런데 이 사람들은 만약 친일 행동을 했다면 본인들 가족을 위해서 그런 것 아니겠나"라고 전했다.
이어 "아직까진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특별한 보상이 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친일파 후손들은 특별한 혜택을 받으며 잘 살고 있다"며 "정의를 바로 세우려면 이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넷플릭스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 '중증외상센터', '월간남친', '참교육' 등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은 하영은 최근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4대째 의료인의 길을 이어온 집안이라고 소개하며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이후 증조부가 안상호로 확인되면서 여론은 반전을 맞았다.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안상호는 촉탁의(외부 의료진)로 활동하며 순종의 건강을 돌보기도 했지만, 친일 단체인 대정친목회 평의원(대의원 격) 명단에 이름이 올라와 친일 행적에 대해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안중근 의사에게 피살된 이토 히로부미를 추도하기 위해 '국민대추도회(대한국민추도회)' 준비 위원으로 참여하고,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일본 사람과 똑같다" 등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내선일체 모범사례'로 소개된 기록도 확인되면서 논란은 확산됐다.
민족연구소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았지만 명백한 친일 행위라고 공식 입장을 내기도 했다.
논란이 일자 하영은 "그동안 저는 가족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다"며 "부끄럽게도 그런 무지한 상태로 여러 자리에서 증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가족의 자랑처럼 꺼내 왔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일을 계기로 관련 자료를 직접 찾아보는 과정에서 증조부의 친일적 행적을 알게 됐다"며 "일제 강점기라는 뼈아픈 시간을 지낸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족사를 가볍게 언급했던 것을 반성한다"고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