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으로 둘러싸인 영정사진과 조문객을 맞는 유족, 사흘째 아침의 발인. '장례식'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풍경이지만, 앞으로 당신의 마지막에는 이 중 몇 가지가 없을지도 모른다. 빈소를 차리지 않을 수도, 묘나 봉안당을 남기지 않을 수도 있다.
불과 25년 전만 해도 세상을 떠난 사람 10명 가운데 6명가량은 땅에 묻혔다. 이제는 10명 중 9명 이상이 화장된다. 빈소 없는 장례가 등장했고, 화장한 유골을 자연에 뿌리는 길도 열렸다. 사람이 떠난 뒤에는 SNS와 이메일, 온라인 계정처럼 과거에는 없던 유산도 남는다.
'2천만원 삼일장' 대신 '300만원 무빈소 장례'
17일 국회입법조사처의 '늙음과 죽음은 왜 국가의 일이 되었는가' 보고서에는 이처럼 달라진 죽음의 풍경과 그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과제들이 담겼다. 보고서는 고령자의 삶과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예방 가능한 죽음, 장례와 상속 등 죽음 이후의 문제까지 생애 전 과정에 걸쳐 살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화장의 보편화다. 2001년 38.5%였던 국내 화장률은 올해 1분기 94.9%까지 올랐다. 25년 사이 매장과 화장의 비중이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장례식 자체도 달라지고 있다. 빈소를 마련해 사흘 동안 조문객을 받은 뒤 발인하는 삼일장이 여전히 익숙하지만, 최근에는 빈소를 차리지 않고 절차를 간소화하는 '무빈소 장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일반적인 삼일장 비용은 1500만~2천만원에 달하지만 무빈소 장례는 300만원 수준이다.
유골을 모시는 방식도 변하고 있다. 봉안당이나 봉안묘에 안치하는 대신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바다나 산 등에 뿌리는 '산분장'이다. 정부는 지난해 산분장을 제도화하고 2027년까지 이용률을 30% 수준으로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분석한 산분장 관련 언론보도도 2021년 1건에서 지난해 108건으로 급증했다.
'가족이 장례를 치른다'는 오랜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 죽음도 늘고 있다. 1인 가구 증가와 가족관계 단절 등으로 시신을 인수하거나 장례를 치를 사람이 없는 무연고 사망자가 대표적이다. 이에 지방자치단체 등이 장례를 지원하는 공영장례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보고서는 달라진 가족구조에 맞춰 장례를 가족에게만 맡겨온 기존 체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화장률 95%인데…화장장 없으면 비용 10배
장례 문화의 변화는 현실적인 인프라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지난해 사망자는 약 36만3천명으로 코로나19가 유행한 2022년을 제외하면 역대 가장 많았다. 반면 전국 장례식장은 2021년 1107곳에서 지난해 1075곳으로 오히려 줄었다. 상조회사도 2017년 163곳에서 올해 1분기 76곳으로 감소했다.특히 화장이 사실상 보편적인 장례 방식으로 자리 잡았지만 화장장은 지역별로 고르게 설치돼 있지않아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은 유족이 애를 먹는 경우도 종종 벌어진다. 그럼에도 화장장 신규 건립은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화장시설을 갖춘 지방자치단체는 대체로 해당 지역 주민에게 낮은 관내 요금을 적용한다.
반면 화장장이 없는 지역 주민은 다른 지자체 시설을 '관외 주민' 자격으로 이용하면서 훨씬 비싼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관내 주민은 10만원 안팎에 화장시설을 이용할 수 있지만, 관외 주민에게는 100만원 이상의 이용료를 받는 사례도 있다. 사는 곳에 따라 같은 화장에 10배 넘는 비용 차이가 생길 수 있는 셈이다.
보고서는 화장시설의 지역별 불균형으로 이용료 격차뿐 아니라 원거리 이동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화장시설을 확충하는 동시에 여러 지자체가 시설을 공동으로 설치·이용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죽고 나면 내 SNS는 누구 것?…'디지털 유산' 숙제
사람이 떠난 뒤 남기는 유산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다. 집이나 땅, 금융재산뿐 아니라 온라인에 남긴 기록과 자산까지 유산의 일부가 되면서 이른바 '디지털 유산'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SNS에 올린 사진과 글, 이메일과 전자문서, 온라인 계정부터 암호화폐와 디지털 저작권까지 범위도 넓다. 암호화폐나 디지털 저작권처럼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자산이 있는가 하면, SNS 사진이나 글처럼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지만 개인적인 가치가 큰 기록도 있다.
문제는 상속이 일반 재산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점이다. 온라인에 저장된 기록에 접근하려면 서비스를 운영하는 사업자의 협조가 필요한데, 사망자의 계정과 데이터를 누가 어떤 절차를 거쳐 넘겨받을 수 있는지에 관한 법적 기준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유족이 고인의 데이터 제공을 요구해도 사업자가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거부하면서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계정을 이용할 권리와 그 안에 저장된 콘텐츠의 권리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고인이 작성한 글이나 직접 찍은 사진에는 저작권 문제가 따르고, 다른 사람과 주고받은 메시지에는 상대방의 개인정보와 통신비밀까지 얽혀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디지털 유산의 범위와 승계 절차를 명확히 하고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의 협조 의무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용자가 생전에 자신의 디지털 기록을 사후에 어떻게 처리할지 미리 정할 수 있는 제도 마련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