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란과의 장기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방공무기를 대거 소모하면서 한반도까지 연쇄적인 파장이 미치고 있다. 중동과 유럽 등 여러 전구에서 동시에 동맹 방어를 뒷받침해야 하는 미국의 부담이 커지면서 주한미군 전력 운용과 동맹국의 역할 분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크라 방공망 부족…젤렌스키, 한국에도 지원 요청
미국의 방공무기 부족 여파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도 미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 등 서방의 방공체계에 의존해 러시아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에 대응해왔지만, 미국이 중동 지역 방공 수요에 대응하면서 방공미사일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젤렌스키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X를 통해 "우리가 부족한 방공 시스템 분야에서 한국의 지원을 받고 싶다"며 "한국에 법적 제약이 있지만 우리는 이런 협력을 기대하고 있고 양국의 외교관들이 접촉 중"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방산물자 제공은 관련 국내법과 정책을 준수하는 가운데 이뤄져 왔다"며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기존 원칙을 재확인했다. 다만 북러 군사협력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방공무기 지원 요청이 나온 만큼 정부의 고민도 커질 전망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한이 러시아에 대규모 추가 파병을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북러 밀착을 앞세워 방공무기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주한미군 방공 전력도 변수…한반도 방어 공백 우려
가장 민감한 대목은 주한미군 방공 전력의 재배치 가능성이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시간) 중동전쟁 장기화로 미국의 무기 재고가 크게 감소하면서 아시아와 유럽에 배치된 무기까지 차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정부는 주한미군 전력의 구체적인 반출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않으면서도 대북 억지력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일부가 반출되는 모습이 포착됐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청문회에서 반출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NYT는 미국의 방공자산이 다른 전구로 이동할 경우 북한과의 전쟁이 발생했을 때 주한미군이 보다 취약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취지의 분석을 전했다. 미국이 한국에 대한 방위 공약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과 별개로, 중동전쟁이 장기화할수록 한반도에 배치된 미군 방공자산의 운용 방식이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재래식 전력 한계에…美 핵전략도 변화하나
핵심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란과의 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이 복수의 전구에서 동시에 군사력을 운용하는 데 따른 부담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맹국들의 안보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미국은 핵전략에서도 변화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차관은 최근 비공개 연설에서 지역 분쟁에서 핵무기가 사용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새로운 핵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재래식 전력만으로 여러 전구의 위협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전술핵무기의 역할을 확대하는 동시에 동맹국에 자체 방위능력 강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미국은 동맹국들이 미국의 방공자산에 의존하기보다 자체 방어능력과 탄약 생산기반을 확대하도록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