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불멸의 4할 타자로 일본 무대까지 한 시대를 풍미하다 하늘로 떠난 백인천 전 롯데 감독. 83세를 일기로 끝내 숨진 고인에 대해 일본 야구의 전설인 재일교포도 애도의 뜻을 드러냈다.
일본 스포츠 전문 매체 '스포니치 아넥스'는 16일 '장훈 씨, 도에이 시절 팀 동료였던 백인천 씨 추모'라는 제목의 기사를 전했다. "스포니치 장훈 평론가가 한국인 프로야구 선수의 선구적 존재인 백 전 감독을 추도하고 당시 에피소드를 밝혔다는 내용이다.
백 전 감독은 지난 14일 충남 천안에서 뇌경색 투병 중 심정지 상태로 구급차를 통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병원에서 "숨이 멎었다"고 선고해 지인은 장례 절차를 준비했지만 백 전 감독이 정기 검진을 받던 천안 단국대병원으로 다시 이동한 뒤 맥박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끝내 15일 오전 백 전 감독은 숨을 거뒀다.
장훈 평론가는 고인에 대해 "나보다 3학년 아래인 소중한 후배로, 같은 시대를 달려간 동료가 죽는 것은 정말 유감"이라는 뜻을 밝혔다. 이어 "백인천은 매우 기가 세고, 강하다고 해도 좋은 남자였다"면서 "한국에 프로야구가 없던 시절, 그 한국에서 혼자 와서 지고 싶지 않다는 강한 생각을 품고 있었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1942년 중국 장쑤성 우시 출생인 고인은 한국 전쟁 때 월남해 경동중에서 야구를 시작해 경동고에서 최고 타자에게 주어지는 이영민타격상까지 받았다. 1961년 실업 야구 농협에 입단한 백 전 감독은 1962년 일본 프로야구 도에이(현 니혼햄)에 입단해 다이헤이요(현 세이부), 롯데(현 지바 롯데) 등 1981년까지 뛰었다. 다이헤이요에서 활약하던 1975년에는 타율 3할1푼9리로 퍼시픽 리그 타격왕까지 거머쥐었다.
장훈 평론가는 고인에 대해 "1962년 한국 야구계 인사로부터 좋은 선수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어떤 선수인지 본 적도 없어 훈련에 참가시켰다"면서 "포수였지만 탄탄한 몸으로 발이 빨라 당시 미즈하라 시게루 감독에게 추천하자 '재미있지 않은가'라며 영입이 결정됐다"고 회상했다. 입단 테스트 끝에 일본 진출이 결정된 것이다.
고인이 생전 "한국에 프로야구가 있었다면 내가 일본으로 가서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눈물을 펑펑 흘린 것처럼 고난의 세월을 겪었다. 장훈 평론가는 백 전 감독에 대해 "무엇보다 언어 장벽에 애를 먹어 처음 1년은 내 뒤에 붙어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었다"면서 "기강은 훌륭해 투수에게도 자신의 사인대로 던지게 하고 싶었는데 거기서 투수와 의견이 맞지 않아 되어 외야로 전향했다"고 전했다.
포지션 변경은 신의 한 수가 됐다. 장훈 평론가는 "이 전향이 일본에서 성공의 첫걸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수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외야수로 타격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혈혈단신 타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인이 강한 기백을 보였던 일화도 들려줬다. 장훈 평론가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경기 전 라커 룸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백인천은 당시 도에이 4번 타자였던 오스기 가쓰오와 사이가 나빴는데 그래서 경기 전에 싸우게 해 달라고 했다"면서 "어쩔 수 없어 10분만이라고 허락했는데 사람들 보는 앞에서 주먹다짐을 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기싸움에서 고인이 앞선 것으로 보인다. 장훈 평론가는 "10분이 지나서 멈추려고 했더니 오스기가 '선배, 내가 때린 횟수가 한번 적어서 조금만 더'라고 하더라"면서 "지금은 생각할 수 없는 시대의 프로야구를 살아냈다"고 감개무량을 드러냈다.
장훈 평론가 영광의 시절도 고인이 함께 했다. 그는 백 전 감독에 대해 "1980년 내가 통산 3000안타를 달성했을 때는 롯데 팀 동료였다"면서 "지난 1982년에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할 때 MBC(현 LG)의 겸임 감독으로 추천했다"고 전했다.
백 전 감독은 선수 겸 사령탑으로 그해 타율 4할1푼2리로 MBC의 우승을 이끌었다. 39세의 나이에 이룬 시즌 4할 타율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는 대기록이다. 장훈 평론가는 고인을 "그야말로 시초라고 해도 좋은 존재였다"고 기렸다.
재일교포로 일본 야구에서 성공하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겪었던 장훈 평론가와 한일 관계가 더욱 예민하던 시절 한국에서 건너와 더욱 힘든 길을 걸어온 백 전 감독. 각고의 노력으로 이겨냈기에 두 영웅은 한일 프로야구의 전설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