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가뭄' 견뎠더니, 시간당 124mm '극한 호우'…'기후재난' 현실로

'시간당 124.5mm' 1972년 거제 기상 관측 이후 최고치
거제·통영 사흘간 여름 강수량 90% 쏟아져, 1명 사망·3명 부상
경남 저수율 32.2%→43.1% 회복, 남해안 6개 시군 가뭄 영향 벗어나
강수량 적은 밀양 저수율 27.8% 여전히 가뭄 '심각', 극단적 기후변화 현실화

엑스(X)에 올라온 거제 폭우 피해 현장. 엑스(옛 트위터)

유례없는 극심한 가뭄으로 단비를 타들어 가듯 기다리던 경남 지역에 사흘간 역대급 폭우가 남해안을 중심으로 쏟아졌다. 가뭄의 시름은 순식간에 덜어냈지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의 '극한 호우'가 거제 도심을 덮치면서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17일 오후 2시 현재 거제에는 호우경보가 여전히 발효 중인 가운데, 일운면 일대에 시간당 50㎜ 이상의 강한 비가 내리자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하는 등 기상 상황이 여전히 좋지 못하다. 창원·통영·사천·고성·남해에는 호우주의보가 유지되는 등 경남 남해안을 중심으로 강한 바람과 함께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기상 관측 이래 최악의 호우…사흘 만에 여름 비 90% 쏟아져

광복절 연휴 기간인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경남 남해안 일대에는 기록적인 기습 폭우가 집중됐다. 특히 거제에는 17일 새벽 1시간 동안 무려 124.5㎜의 폭우가 퍼부었다. 이는 거제에서 1972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고치다. 통영 역시 시간당 97.4㎜의 비가 내려 관측 사상 최고 강수량을 경신했다.

거제 주민 대피. 경남소방본부 제공

사흘간 거제에 내린 비는 800㎜, 통영은 670㎜를 넘어섰다. 불과 사흘 만에 해당 지역의 여름 전체 평균 강수량의 90%에 달하는 폭우가 쏟아부어진 셈이다. 이 밖에 사천·고성 등 남해안 전역에 300㎜가 넘는 장대비가 이어졌다.

거친 흙탕물에 도로 침수·정전…산사태 사망 1명·3명 부상

단시간에 폭포수처럼 쏟아진 비로 도심 전체는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거제 장평동 등 주요 도로에는 황톳빛 흙탕물이 몰아쳐 주차된 승용차가 바퀴까지 잠긴 채 떠내려갔고, 강한 물살에 도로 아스팔트가 뿌리째 뜯겨 나가기도 했다.

통영 곤리도 60대 주민 매몰 2시간여 만에 구조. 경남소방본부 제공

거제 옥포동 아파트 인근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해 토사가 들어차고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등 대피 소동도 벌어졌다. 현재 거제 아파트 산사태로 20대 남성 1명이 숨지고, 통영 곤리도에서는 60대 여성 1명이 매몰됐다가 2시간여 만에 구조되는 등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거제 고현동, 수월동, 일운면, 둔덕면 일대에서는 도로 침수와 하천 범람으로 주민과 차량이 고립돼 구조를 요청하는 112·119 신고가 폭주했다. 또, 거제·통영 등 주민 125세대 165명이 대피했다.

거제와 통영, 고성 일대 주요 도로와 터미널이 물에 잠겨 시내·시외버스와 택시 운행이 차질을 빚었다. 거제 26곳, 통영 2곳, 진주·고성 각 1곳 등 모두 30곳의 도로가 통제됐다.

거제 토사 매몰자 구조. 경남소방본부 제공

거제와 통영 등 일대 2천여 세대가 정전 피해를 입었으며, 학교 등 교육시설 12곳이 침수되는 등 피해가 전방위로 확산했다. 거제 지역 양대 조선소인 한화오션·삼성중공업은 출근을 하지 말라고 안내했다.

박완수 경남지사는 이날 오전 산사태 사망 사고가 발생한 거제시 옥포동 현장을 직접 찾아 상황을 점검했다. 이어 옥포성지중학교에 마련된 임시주민대피소를 방문해 대피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생활 지원 상황을 살폈다.  
박 지사는 도내 18개 시군 전역에 "무엇보다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2차 피해 방지에 총력 대응하라"는 내용의 특별지시를 통보했다.

박완수 경남지사 거제 아파트 산사태 현장 점검. 경남도청 제공

이에 따라 각 시군 부단체장이 현장 대응 전 과정을 직접 지휘하고, 산사태 위험지역·하천변·지하차도 등 인명피해 우려 지역에 대한 예찰 활동 강화와 함께 위험 징후 포착 때 즉각적인 사전 통제와, 주민 대피에 나선다.

통영·거제를 제외한 도내 전 소방은 펌프차량 50대를 거제에 보냈고, 소방청도 중앙119구조본부 영남·호남119특수구조대와 울산119화학구조센터 등 특수 구조대를 급파했다.

'저수율 껑충' 가뭄 해갈 단비지만 …'극과 극' 재난에 근심 깊어진 경남

이번 폭우로 경남 전역을 짓눌렀던 극심한 가뭄은 조금 해소됐다. 폭우 직전인 지난 14일 경남 시군 농업용 저수지 평균 저수율은 32.2%에 불과했지만, 이번 비로 43.1%(17일 오후 2시 기준)까지 껑충 뛰어올랐다. 평년(69.8%) 대비 약 70% 수준까지 회복했다.

특히 800㎜ 이상의 비가 집중된 거제시의 저수율은 28.7%에서 73.6%로 급증하며 평년 수준을 되찾았고, 남해안권 6개 시군(창원·통영·사천·고성·남해·거제)은 가뭄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바짝 마른 논. 경남소방본부 제공

그러나 밀양 등 내륙 지역은 상대적으로 비가 적어 여전히 가뭄 위기 수준이다. 현재 농업용수 가뭄 '심각' 단계는 저수율 27.8%에 그친 밀양 1곳으로 줄었다. 의령·창녕·산청 등 3개 시군은 '경계', 하동·거창·합천 등 3개 시군은 '주의', 진주·김해·양산·함안·함양 등 5개 시군은 '관심' 단계다.

가뭄 사태는 급한 불을 껐지만, 기후변화가 가져온 재난의 폭주 속에 주민들의 근심은 더 깊어지고 있다. 마른 땅을 적셔줄 단비를 간절히 원하던 농민과 주민들은 또다시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피해 현장을 복구하고 추가 침수에 대비하느라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일상 파고든 '기후재난'…극단적 기상 변화 현실로 

이번 '극한 가뭄'에 이어진 '극한 호우'는 한반도의 기후 위기가 단순한 예측을 넘어 현실로 다가왔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장기간 비가 오지 않는 극심한 가뭄 끝에 곧바로 역대 최대 수준의 기습 폭우가 뒤따르는, 극단적 기상 이변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CBS 경제연구실 유튜브 영상 캡처

앞으로 이러한 '극과 극'의 재난 양상이 더 자주, 더 강하게 반복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온도 상승 등의 이유로, 특정 지역에 짧은 시간 동안 강한 비를 뿌리는 '극한 호우'와 장기 가뭄이 공존하는 기후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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