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광복절에도 올림픽공원을 찾아 '부정선거'를 외쳤다. 제1야당 대표가 선거 제도를 통째로 부정하는 구호를, 그것도 순국선열을 기려야 할 날에도 거침없이 반복했다. 6·3 지방선거 이후 그는 부정선거론이라는 성(城) 쌓기에 여념이 없다.
장 대표는 6·3 지방선거를 앞둔 시기에는 미국을 찾아 부정선거론을 옹호하는 공화당 인사들을 만났다. 그에게 미국은 매력적인 나라였을 것이다. 부정선거론자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나라에서 어쩌면 큰 꿈 하나를 품고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올림픽공원이 그를, 그가 올림픽공원을 키웠다
장 대표는 원래 부정선거론자는 아니었다. 지난 2월만 해도 그는 선거 제도의 허점을 손보겠다는, 개선론자였을 뿐이다. 그러다 변신했다. 바로 올림픽공원에서다. 올림픽공원이 그를 부정선거론자로 키웠고, 그는 다시 올림픽공원을 부정선거의 성지로 만들었다. 서로가 서로의 변신을 부추긴 셈이다.올림픽공원은 지방선거 당시 투표용지가 모자라 유권자들이 발길을 돌려야 했던, 선거 관리 부실의 상징이다. 그런데 장 대표는 이 '부실의 현장'을 '부정의 성지'로 치환시켰다.
그 치환은 통했다. 이후 장 대표는 정치적 부활에 성공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그는 사퇴 압박에 시달리는 처지였다. 6·3 참패는 그 압박의 절정이었다. 지도부 총사퇴 요구가 분출했고, 그의 리더십은 벼랑 끝에 몰렸다.
바로 그때 동아줄이 내려왔다. 투표용지 부족에서 촉발된 선관위 사태였다. 그는 선관위를 향한 광장의 분노를 제도권으로 실어 날랐다. 마침내 선관위 특검법 통과로 이어졌다. 부실에서 시작된 불씨를 부정선거라는 거대한 불길로 키워, 사그라들던 자신의 정치 생명을 되살렸다.
불안했던 리더십은 안정을 찾았다. 임기까지 사실상 보장받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가 재선에 도전했듯, 그도 내년 8월 당 대표 연임을 노릴 것이다. 그다음은 총선 공천권일 테고, 그 꿈의 끝은 2030년 대권일지 모른다.
'부정'과 '부실'은 엄연히 다르다
애초에 민주당이 국민의힘의 선관위 특검 요구를 받아들인 것은 선거에 '부실'은 있었을지언정 '부정'은 있을 수 없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특검이라는 가장 날카로운 칼 앞에 내놓아도 두렵지 않다는 계산 때문이었다.국민의힘 일각은 투표 부정이 가능했다면 개표 부정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개표는 실물 종이 투표지를 손에 쥐고 진행된다. 투표지 분류기가 1차로 나눈 표를 사람이 육안으로 확인하고, 위원이 또 한 번 재검표하며, 그 전 과정을 각 정당이 파견한 참관인이 코앞에서 지켜본다. 이의가 있으면 표는 법원 재검표대에 다시 오른다. 조작을 하려면 수천 개 투표소와 3500여 개 위원회, 수만 명의 참관인과 사법부까지 한꺼번에 매수하거나 침묵시켜야 한다.
물론 선관위 특검은 개표 과정까지도 두루 살피게 된다. 핵심 대상은 중앙선관위 청사 2층에 있는 서버다. 이 서버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통해 손대려 했던 바로 그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수사 대상인 선관위가 특검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특검이 서버까지 가지고 가서 의혹을 하루빨리 해소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서버 분석 등을 통해 특정 정당을 위한 개표 조작 같은 의혹이 사실이 아님이 낱낱이 밝혀진다면, 부정선거론이라는 모래성도 마침내 무너질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정작 특검을 기다리는 쪽은 선관위다
이재명 대통령도 18일 드디어 선관위 특검으로 이태한 전 부장검사를 임명했다. 국민의힘의 의사가 반영된 특검 추천위의 추천을 받은 인사다. 이태한 특검은 170일간 수사를 지휘하게 된다. 특검법상 특검, 특검보, 수사관은 모두 정당 활동 경력이 없는 중립적 인사로 채워진다. 이들에 대한 임명 규정까지 담은 그 특검법에 장 대표를 포함해 본회의 참석한 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장 대표의 도박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이라는 성을 쌓으며 부활했지만, 그 성의 기초를 파헤칠 수 있는 특검을 자기 손으로 세운 셈이다. 만약 그 특검이 밝혀낸 것이 '부정'이 아니라 '부실'이라면 장 대표가 올림픽공원에서 쌓아 올린 부활의 서사는 통째로 무너진다. 자신이 벼린 칼에 자신이 베이는 것이다.
이태한 특검은 이제 진짜 범인을 잡아내면 된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갉아먹어 온 부정선거라는 망령을, 그리고 그 망령을 퍼뜨려 온 자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