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결과물 아닌 창작의 주체…아이돌 틀 깨고 아이콘이 된 빅뱅[파고들기]

[기획] 빅뱅 데뷔 20주년 ① - 빅뱅이라는 팀

오늘(19일) 데뷔 20주년을 맞은 그룹 빅뱅. 빅뱅 공식 트위터

"우리도 운 좋은 거 알고 있어요. 모든 면에서 좋은 시기를 타고났고 지원도 잘 받고 있어요. 축복받았죠. VIP 대접 받고, 좋은 환경에서 활동하는 건 빅뱅의 능력이 아니라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잖아요. 축복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드래곤)

데뷔 넉 달이 채 지나지 않은 2006년 11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빅뱅(BIGBANG) 리더 지드래곤은 빅뱅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든든히 지탱해 주고 있다는 점을 '축복'이라며 그 축복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이돌 그룹의 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도, 멈춘 채 시간을 누적하는 것이 아니라 곡과 무대를 꾸준히 선보이며 20주년을 맞은 그룹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만만치 않은 굴곡이 있었으나, 빅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그룹으로 굳건한 존재감을 가지고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YG엔터테인먼트의 5인조 신인 보이그룹으로 데뷔한 빅뱅(BIGBANG)은 그야말로 기존 아이돌의 틀을 깨는 행보와, 무엇보다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음악'과 '무대'로 그해 가장 뜨거운 신인이 됐다. 데뷔 당시인 2006년뿐 아니라 20년이 지난 지금도 빅뱅의 위치는 독특하고 독보적이다. 반론의 여지 없이 성공한 아이돌이면서, 다른 아이돌과는 상당히 다르고 그래서 또렷이 구별된다.

5인조로 출발한 그룹 빅뱅. 왼쪽부터 대성, 태양, 지드래곤, 승리, 탑

1990년대 중후반부터 뚝심 있게 힙합과 알앤비 등 흑인 음악(블랙 뮤직)을 고수한 소속사 출신이었기에, 빅뱅도 음악적인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다. 빅뱅을 "2000년대 들어 주춤했던 K팝 아이돌 시장의 폭발적인 구원투수로 등장한 그룹"이라고 한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힙합과 알앤비(R&B)라는 장르 음악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 그것을 셀프 프로듀싱한다는 정체성을 중심에 둔 확실한 차별점을 가진 팀"이라고 말했다.

성상민 문화평론가는 "YG에는 본인들이 육성하는 아이돌 그룹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팀"이고 "한국 대중음악 전반을 돌아봤을 때 힙합을 비롯한 흑인 음악을 어떻게 아이돌 시스템과 연결할 수 있는지를 제시한 그룹"이라고 평했다.

"YG는 지누션(Jinusean) 원타임(1TYM) 등 힙합 색채가 진한 그룹을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제시했다"라고 한 성 평론가는 "하지만 이후 JYP 원더걸스(Wonder Girls), SM의 소녀시대(Girls' Generation) 등이 대두되기 전까지 상대적으로 아이돌 시장이 침체했던 시절을 거치고, 다시 MC 스나이퍼나 다이나믹 듀오(Dynamicduo)처럼 언더그라운드~오버그라운드 영역에서 활동하며 본격적인 힙합을 시도하는 가수가 모습을 드러내는 상황이었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힙합을 내건 아이돌 그룹을 만들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라고 바라봤다.

이어 "빅뱅은 힙합적인 요소는 상대적으로 타협하되, 당시 한국 힙합이 지녔던 반항적이고 톡톡 튀는 모습에서 아이돌의 매력 포인트를 느낄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전환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빅뱅의 성공으로 YG에서 투애니원(2NE1)이 등장했고, 다른 기획사에서도 흑인 음악 요소를 보다 강화한 그룹을 낳게 한 만큼 빅뱅의 존재는 한국 대중음악에 중요한 분기점을 만들었다"라고 부연했다.

빅뱅은 현재 3인조로 재편됐다. 왼쪽부터 태양, 지드래곤 , 대성.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정민재 음악평론가는 "음악적으로 힙합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전 댄스 팝 중심의 보이 그룹과는 완전히 달랐다. 빅뱅이 등장함으로써 K팝에 힙합이 본격화되었고, 다채로운 색깔이 생겨났다"라고 말했다.

김도헌 음악평론가는 "창작하는 보이그룹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재능 있는 멤버들이 증명하며, 유행의 최전선에 있는 음악 장르를 신속하게 결합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기승전결 뚜렷한 팝송을 만들며 시대를 장악했다"라고 평가했다.

'자체 제작'하고 '셀프 프로듀싱'하는 아이돌의 길을 연 점도 비중 있게 언급됐다. 음악 비평 웹진 이즘의 박시훈 에디터는 "빅뱅의 등장과 동시에 K팝 패러다임은 바뀌었다"라며 힙합 문화와 자체 프로듀싱이라는 당시 K팝에서 생소했던 개념을 이 신에 정착하게 한 공로가 크겠지만, 핵심은 아이돌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을 퍼포머에서 아티스트로 확장했다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바탕이 있었기에 "창작에 고뇌하는 음악인, 넘칠 듯한 카리스마로 무대를 휘어잡는 가수"로 자리매김했고, "독보적인 스타일을 쟁취"할 수 있었다는 게 박 에디터의 설명이다.

빅뱅 지드래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황선업 음악평론가 역시 "빅뱅은 아이돌을 기획의 결과물이 아니라 창작의 주체로 바라보게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한 그룹이다. 팀의 색에 맞춰 멤버 각자를 깎아내는 것이 그때까지의 방식이었다면, 빅뱅은 서로 다른 결을 그대로 둔 채 그 개성들의 마찰로 독특한 시너지를 발생시켰다. 여기에 곡과 안무, 스타일링까지 멤버들의 참여로 완성된 결과물은 하나의 시대적 유행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그야말로 아이돌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전과 이후로 갈라놓은 팀"이라고 분석했다.

빅뱅은 이른바 '전형적인' 아이돌 그룹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이를 두고 정 평론가는 "한 마디로 정형성을 거부한 개성파"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전까지 보이그룹은 에이치오티(H.O.T.) 영향권 아래 있는 정통파가 대부분이었고 예외는 지오디(god) 등 극히 일부였는데 빅뱅은 이런 흐름에서 아예 벗어나 보이그룹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팀"이라고 밝혔다.

"비주얼 측면에서도 정돈된 통일성보다는 자유롭고 개성 강한 '느낌'을 주는 방향으로 기획됐다"라고 한 정 평론가는 빅뱅의 '정형성 탈피'는 △힙합을 전면에 내세운 점 △멤버들의 창작 비중이 월등히 높았던 점에서 가장 돋보인다고 설명했다.

정 평론가는 "특히 지드래곤이 작사·작곡가이자 팀의 디렉터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주체적 창작과 활동을 지휘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전에도 H.O.T. 강타처럼 작사·작곡을 하는 그룹의 멤버가 있긴 했지만, 지드래곤만큼 창작의 비중을 가져간 경우는 없었다. 이게 결국 빅뱅의 색깔을 만드는 결정적 한 수가 됐고, 지금까지도 여러 K팝 그룹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라고 전했다.

빅뱅 태양.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박 에디터 또한 "(빅뱅은) 오늘날 다변화된 K팝의 기반을 마련했다. 흔히 3세대라 불리는 그룹들은 이들의 영향권 아래 저마다의 포인트를 갖춘 랩을 선보였으며, 블락비(Block B) 지코나 아이들(i-dle) 전소연 등 그룹 음악의 주도권을 쥔 뮤지션들 역시 '빅뱅' 이후 팽창한 우주 위에서 대중에게 자신만의 특색을 친숙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힙합 문화를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빅뱅을 우상으로 여기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는" 아이돌의 수가 매우 많다는 점도 덧붙였다.

한성현 음악평론가는 빅뱅을 "남성 대중도 거부감 없이 소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K팝 보이그룹"이라고 소개했다. 한 평론가는 "랩을 기반에 둔 음악과 지드래곤을 필두로 한 자체 제작이 힙합 장르에 내재된 '남성성'을 자극하면서도,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출연하여 아이돌로서의 친숙함을 놓치지 않은 덕분에 팬층을 폭넓게 포섭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음악하는 아티스트'를 넘어 여러 영역에 폭넓은 영향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었다. 김윤하 평론가는 "'나의 것'을 무기로 음악은 물론 패션, 문화계 등으로 자연스럽게 영향력을 넓혀 나간 것도 빅뱅이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될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라고 바라봤다.

그러나 빅뱅은 활동 기간 멤버들이 각종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도마 위에 올랐다. 중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나 팀에서 사실상 퇴출당하듯 팀을 떠나는 일도 있었다. 5인으로 시작했던 빅뱅은 현재 지드래곤·태양·대성까지 3인으로 재편됐다.

빅뱅 대성.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정 평론가는 "승리의 경우 워낙 비중이 작았기 때문에 별 타격이 없었다고 본다. 그러나 탑의 경우 특유의 음색과 카리스마, 퍼포먼스에서의 존재감 때문에 팀을 떠났을 때 타격이 적지 않았는데, 팀의 음악적 지주이자 상징인 지드래곤이 남아 있기 때문에 활동이 계속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태양, 대성의 역량도 물론 뛰어나지만"이라고 말했다.

성 평론가는 "빅뱅은 여러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버닝썬 스캔들'처럼 큰 피해를 준 사건도 있었다"라며 "빅뱅이 본래 '삐딱한 악동' 면모를 강조하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그 점이 다른 아이돌과 비교해도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을 고려하면, 여러 스캔들 이후에는 그런 면모를 드러내기 어려워진 게 사실"이라고 운을 뗐다.

성 평론가는 "초기 인기곡이나 '판타스틱 베이비'(Fantastic Baby) '뱅뱅뱅'(Bang Bang Bang) 등 빅뱅의 노래를 상징하는 날카롭고 빠른 음색, 비트의 곡을 시도하는 대신, '봄여름가을겨울'(Still Life)에서 상대적으로 힘을 뺀 소프트 록 스타일을 전개한 것은 이전과 같은 콘셉트로 활동하는 것이 녹록지 않게 된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을 이었다.  

한 평론가는 "파장이 워낙 큰 사건도 많아 조심스럽지만, 처음부터 빅뱅이라는 그룹 자체가 일반적인 K팝의 테두리는 조금 벗어났기에 여러 잡음은 오히려 이들의 아웃라이어 면모를 더 부각하는 서사의 재료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탑의 탈퇴 이후 올해 코첼라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을 부르는 세 멤버의 모습에 각별함을 느끼던 사람들이 많은 것도 같은 이치"라고 밝혔다.

그룹 빅뱅.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박 에디터는 "대개 멤버 이탈이 발생할 경우 향후 행보에 대한 우려가 짙어지겠지만, 이들의 미래를 여전히 낙관할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좋은 음악을 들려줄 거라는 굳건한 믿음이다. 여기에는 멤버 개개인의 음악적 특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내재한다"라고 빅뱅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이어 "작년에는 니체의 철학을 빌려 독자적인 세계를 펼쳐낸 리더 지드래곤과 팝 록 스타일을 기반으로 탄탄한 보컬 실력을 재차 입증한 대성이, 올해에는 짙은 알앤비 색채를 심도 있게 풀어낸 태양이 각각 솔로 앨범을 발표한 만큼, 저마다의 또렷한 개성과 노련함이 그룹의 음악에 스며들 것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챕터의 시작이니 앞으로의 이야기가 진정한 관전 포인트"라고 전했다.

김도헌 평론가는 "3인조 빅뱅으로 낸 작품이 나오면 그때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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