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당국은 영어 중심의 인공지능(AI) 용어를 중국어로 대체할 것을 주문했다. 최근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사설을 통해서다.
이는 단순한 언어 순화나 모국어 정책에 그치지 않는다. AI 분야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밑그림 중 하나다. 인민일보는 "국가의 '담론권'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담론권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제시한 '권력은 담론을 통해 작동한다'는 이론을 차용한 것으로, 중국은 이를 국가 전략으로 확장·적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의제 설정권, 규칙 제정권, 사상 주도권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인민일보는 "외국 전문 용어에 의존할 경우 중국이 핵심 개념에 대한 정의권을 상실하고, 국내 독자적 이론의 성장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외국 용어를 쓰다 보면 '인지적 의존성(cognitive dependency)'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용어들이 "기술에 대한 중국식 담론 체계 발전을 방해할 수 있다"고도 했다.
올 3월 중국발전포럼에서는 텍스트를 처리하는 최소 단위인 '토큰(token)'의 표준 중국어를 치위엔(詞元)으로 결정했듯이, '에이전트(agent·자율형 AI)'나 'LLM(Large Language Model·대규모 언어 모델)'과 같은 영어 용어도 중국식 용어로 바꿔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컴퓨터라는 단어를 디엔나오(電腦)로 현지화해 일상에 정착시킨 것을 사례로 들었다.
인민일보가 담론권과 함께 언급한 '개념 정의권'도 중국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용이다. 개념을 누가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국제 규범·표준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달 17일 상하이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서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주도권을 잡겠다고 공언했다. 전날에는 29개국이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WAICO) 설립에 관한 협정에 서명하는 가시적인 성과도 이끌어냈다.
이는 기술적 자립을 넘어 중국 중심으로 새로운 규범과 표준을 만들어 AI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중국의 야심찬 다음 목표와 닿아 있다.
당국은 당장 언론과 기술 기업들에게 표준화된 용어를 사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중국어 용어와 빠른 기술 발전 속도 사이의 간극을 메워야 한다고 재촉하고 있다.
빅테크·플랫폼 기업들은 "AI 기능을 일반 사용자에게 제공할 때 중국어 용어가 더 직관적"이라며 당국의 정책에 호응하는 모습도 보인다.
중국 당국은 다만 국내 교육 및 정책에는 중국어 용어를 적극 도입하되, 국제적 교류와 협력에서는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영어 용어를 유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온라인에서는 "와이파이(Wi-Fi), 심(SIM) 카드, 앱(APP) 등은 이미 중국인의 일상 언어가 됐다", "굳이 중국어 번역어를 쓰면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불편하다"라고 지적하는 글들이 올라와 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그레이엄 웹스터 중국기술정책 연구원은 "AI 용어의 중국어화를 국가 권력·문화 주권 문제로 연결하는 것은 상징적 행위에 가깝다"며 "중국의 실제 영향력은 AI 모델의 성능과 국제 기술 커뮤니티가 중국 모델 등을 채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