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마지막 벽에는 포스트잇을 붙일 자리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한국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제주에 가서 해녀를 배우고 싶다.' '나 자신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제주 바다에서 시작된 공동체의 이야기는 브라질에서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 답은 유네스코가 제주해녀문화에서 가장 높이 평가한 가치, '공동체'에 있었다.
유네스코가 제주해녀문화에서 주목한 것은 해녀라는 존재만이 아니었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서로를 지키고,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온 공동체의 삶이었다.
이번 브라질 특별전은 바로 그 가치를 세계에 설명하기 위한 시도였다.
'공동체'의 의미
주브라질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특별전 '바다의 숨: 제주 해녀, 여성 그리고 공동체'를 총괄한 박진희 큐레이터는 전시를 준비하며 가장 오래 붙잡은 단어로 '공동체'를 꼽았다.해녀를 해외에 소개하는 전시는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산소통 없이 잠수하는 강인한 여성의 이미지나 뛰어난 몸기술보다 그 기술을 가능하게 한 공동체의 삶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박 큐레이터는 "제주 해녀문화는 단순한 전통 직업이 아니라 여성 공동체 정신과 자연과의 공존을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며 "해녀 공동체의 가치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향해 있다. 이번 전시가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국경을 넘어 함께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그가 공동체를 강조한 이유는 분명했다. 제주해녀를 떠올리면 많은 사람들이 먼저 산소통 없이 자신의 숨만으로 바다에 들어가는 강인한 여성을 생각한다. 장비 없이 호흡에 의지해 물질하는 몸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문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제주해녀문화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허락한 만큼만 내주는 바다
예측하기 어려운 바다에서 해녀는 결코 혼자 작업하지 않는다. 바다에서는 물벗이 서로의 위치와 숨을 확인하고, 먼저 물 밖으로 나온 해녀는 아직 바닷속에 있는 동료를 살핀다.불턱에서는 물때와 바다 상황을 공유하고, 경험 많은 해녀가 후배들에게 작업 방식과 공동체의 규칙을 전한다. 자기 호흡에 의지하는 만큼, 바다가 허락하는 만큼만 채취한다. 때가 되면 갯닦이를 나서고, 소라나 전복 종패를 뿌린 바다밭을 관리한다.
모든 것을 해녀회의 '약속'으로 정한다.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가 해녀문화를 지탱해 온 것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유네스코가 제주해녀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며 높이 평가한 핵심 가치이기도 하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것은 단순히 산소통 없이 잠수하는 독특한 몸기술만이 아니었다.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지식의 전승, 여성 공동체의 협력, 공동어장을 함께 관리하는 질서, 자연과 공존하며 바다를 지속가능하게 이용하는 방식까지 포함한 살아 있는 문화체계였다.
결국 세계가 주목한 것은 바다에 들어가는 해녀 한 사람이 아니라, 함께 바다를 지켜온 공동체였다.
이번 브라질 전시가 한 해녀의 생애를 따라가도록 구성하고, 물질 도구를 설명하면서도 물벗과 불턱을 함께 소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상에서는 잠수 장면보다 여러 해녀가 함께 수면 위로 올라오는 순간을 오래 보여줬고, 마지막에는 '당신의 물벗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남겼다.
전시 전체가 하나의 문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셈이다.
제주 밖에서 찾은 긍정 시그널
'해녀는 혼자 숨 쉬지 않는다.' 이 같은 기획 의도는 브라질 현지에서도 예상보다 깊은 공감으로 이어졌다.주브라질한국문화원의 집계에 따르면 개막 이후 하루 평균 1000명 안팎의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다. 문화원 전시 가운데서도 높은 관심을 받은 전시였지만, 이번 전시의 성과는 숫자보다 사람들이 머문 시간과 남긴 말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박 큐레이터와 문화원 관계자들은 "오랫동안 제주 안에서만 통용되던 공동체의 언어가 지구 반대편에서도 자연스럽게 공감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고 입을 모았다.
'물벗'은 번역하기 쉽지 않은 해녀들의 용어다. 해녀 공동체를 이해해야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언어보다 더 깊은 울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닿았다.
공동체도 마찬가지였다. 어려운 환경을 이겨낸 강인한 여성의 서사는 감동을 남길 수 있지만,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가치는 공감으로 이어지고 연결된다.
이번 브라질 전시는 제주해녀와 해녀문화를 소개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공동체라는 가치를 세계와 공유하는 하나의 실험이었다. 떠들썩한 공연이나 음식 같은 해녀가 직접 보여주는 형태의 문화 체험 없이 살아온 과정과 살아낸 것들을 돌아보게 했고, 그 질문은 전시장 밖으로 이어졌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두 차례의 대담회에서 브라질 사람들은 더 이상 해녀의 잠수 기술만을 묻지 않았다. 물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는 방법에서부터 서로를 지키는 방식, 그리고 자신의 '물벗'과 공동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