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대법관 후보 서면 제청 사태'를 고리로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를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다. 그러나 당 일각의 탄핵 주장에는 거리를 두며 여론 흐름을 살피는 기류가 뚜렷하다. 사퇴 압박 수위는 최대치로 끌어올리면서도, 실제 탄핵 추진에는 신중한 민주당의 셈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희대 물러나라" 총력전…탄핵엔 신중, 여러 카드 검토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해방 이후 최악의 대법원장 조희대씨는 물러나는 것이 맞다"고 직격한 데 이어, '법치 파괴 조희대는 물러나야 한다'는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전국에 걸도록 당에 지시했다. 20일 열린 의원총회에선 '조희대는 사퇴하라'는 손팻말과 구호가 등장했다. 김 대표는 의총 발언에서 "조 대법원장이 이미 탄핵될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한다"며 압박 수위를 끌어올렸다.당내 강경파에선 탄핵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당 공식 입장은 신중한 상태다. 김성회 원내대변인은 "사퇴 요구를 당의 입장으로 이해하면 된다"며 "탄핵에 대해서는 논의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당 내부에선 제청권 행사 자체를 탄핵 사유로 걸기 어렵다는 기류가 흐른다.
대신 당장 국회에서 쓸 수 있는 카드는 저울질하는 모습이다. 대법관은 대법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되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한다. 임명 동의안 본회의 통과는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이 필요하다. 161석을 가진 민주당은 단독으로 부결이 가능하다. 일각에선 청와대와 사전 조율이 된 것으로 알려진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만 통과시키고,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만 낙마시키는 선별 부결도 거론된다. 이밖에 인사청문회 일정 자체를 미루는 방안도 있다.
대법관 임명동의안이 국회 표결에서 부결되면 헌정사 첫 사례가 된다. 이 경우 대법원장은 지난 1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나머지 후보 중에서 다시 제청하거나,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추천위 절차부터 새로 밟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법조계 관계자는 "부결은 전례가 없고, 이후 재제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도 없다"며 "최악의 경우 제청, 거부, 재제청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이 대통령이 조 대법원장 퇴임 시점인 내년 6월까지 임명권 행사를 미뤘다가 새 대법원장에게 다른 후보를 제청받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복합적 계산 깔렸나…최종 성과엔 물음표
조 대법원장을 향한 여권의 불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이후 앙금이 쌓여 왔다.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제청이 반년 넘게 지연된 점도 도화선이 됐다. 이번 서면 제청이 누적된 불신에 불을 댕기면서 탄핵 추진 전 단계인 '사퇴 총력전'에 이르게 된 셈이다.
다만 이러한 총력전에는 복합적 계산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먼저 청와대를 대신해 여당이 총대를 메며 '당정 일치'된 전선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을 무시한 처사"라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갈등이 전면전으로 번지는 상황을 우려해 공식 입장을 자제하고 있다. 그 빈자리를 여당이 메우는 모양새다. 김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이른바 '명청 대전'을 끝내고 당정 일치를 이루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권 한 관계자는 "당이 대신 싸우면서 청와대를 엄호하는 효과가 있다"라고 밝혔다.
전대를 거치며 갈라졌던 당심을 다시 결집하는 계기라는 시각도 있다. 이번 전대는 친명(친이재명)·친청(친정청래)계 구도 속에 지지층이 쪼개진 채 치러졌는데, '조희대'라는 공동의 표적이 등장하면서 내부를 봉합하는 명분이 됐다는 것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전대 과정에서 쪼개진 것으로 확인된 당심을 하나로 모으는 효과도 있어 보인다"며 "일단 당이 뭉치면 앞으로 개혁 동력이 더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부동산·세제 논란으로 지지율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시선을 돌리는 국면 전환 카드라는 해석,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법개혁 동력을 확보하려는 포석이라는 관측도 뒤따른다.
다만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이 주도한 법왜곡죄·재판소원제·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 3법은 이미 지난 3월 공포돼 상당 부분 궤도에 올랐다. 추가로 꺼낼 사법개혁 카드가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개혁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민생·확장·유능함'을 전면에 내걸고 출범한 김민석호가 또다시 사법개혁 전선을 여는 데 대한 부담도 거론된다. 무엇보다 대법원장을 아무리 흔들어도 현실적으로 사퇴시킬 수단이 없다는 게 근본적 한계다. 임기가 헌법으로 보장된 대법원장은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탄핵이 인용되지 않으면 자리를 지킨다.
전략의 정교함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일부 나온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사퇴 요구나 탄핵 검토 같은 구호를 넘어서, 대법원에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면밀하게 따져서 여론에 호소하는 게 중요하다"며 "서면 제청 뿐만 아니라 국민적 관심이 있는 내란 재판의 경우 김건희, 한덕수 사건이 대법 전원합의체로 넘어갔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재판에 차질이 없었는지 등 정보를 수집해 논리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법관 임명이 지연되면 결국 김건희·한덕수 사건 상고심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역효과도 우려된다"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지도부는 일단 여론전에 무게를 싣고 있는 모습이다. 김 대표는 의총에서 "아직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는 국민들께 충분히 알릴 시간을 갖는 것이 나쁘지 않다"며 "우리가 행동에 들어갈 경우 완벽한 100점을 맞을 수 있는 준비를 당에서 시작하겠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고도 스스로 물러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면 제청 사태로 지핀 불씨를 민주당이 어떻게 끌고 정치적 성과로 연결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