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제주해녀 유산적 가치 세계의 언어로 번역해야

[제주가 보여준 해녀⑤]
브라질이 제주에 남긴 '공동체'의 힘
물벗·경험 축적…해녀문화 세계화 새로운 언어
공감에서 연결로, 유산적 가치 활용 확대해야

제주도는 주브라질한국문화원(원장 정정희)과 공동으로 지난 6월15일부터 오는 8월 30일까지 브라질 상파울루 소재 문화원 본원에서 특별전 '바다의 숨 제주 해녀, 여성 그리고 공동체'전을 열고 있다. 고미 칼럼니스트

해녀를 넘어 '나'를 만나다

"나의 물벗은 아버지입니다." 브라질 방송인의 고백은 그날 대담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제주해녀를 이야기하던 객석은 어느 순간 브라질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심혈관을 전공하고 있다는 현지 의대생은 지난해 잠시 중단했던 해녀 관련 연구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며 연구 방향과 자료를 물었다. 다른 참석자는 해녀 공동체를 보며 아프리카의 공동체 철학인 '우분투(Ubuntu)'를 떠올렸다고 감상을 전했다.

'나는 우리가 있기에 존재한다'는 우분투 정신이 제주 해녀공동체가 보여주는 공동돌봄과 닮아 있었고, 브라질 여성문화와도 접점이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한국계 2·3세 젊은 여성들의 반응도 인상적이었다. "오늘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워졌습니다.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며 대담회 현장에 가장 오래 머물렀다.

누군가는 해녀학교에 대해 물었고, 현지 팟캐스트 운영자는 제주해녀와 공동체 문화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들이 가져간 것은 해녀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아니었다. 공동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었다.
 

문화의 변화를 읽다

"예전 물옷과 지금의 고무 잠수복은 해녀의 삶에서 무엇을 바꾸었나요." 겉으로는 잠수복에 대한 질문처럼 들렸지만 그들이 궁금해 했던 것은 장비의 변화가 아니었다.

물옷에서 고무 잠수복으로 바뀌며 해녀들의 일상과 공동체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기술의 발전이 삶의 방식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진지하게 살폈다.

물옷을 입던 시절 해녀들은 잠수 시간이 짧았던 대신 불턱에서 함께 몸을 녹이며 바다 사정과 삶의 이야기를 나눴다. 고무 잠수복은 작업 시간을 늘리는 등 노동 환경을 바꾸었지만, 잠수병의 등장과 공동체 모습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브라질 사람들이 읽어낸 것은 잠수 기술이 아니라 문화의 변화였다. 그 질문은 이번 전시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가장 정확하게 짚어낸 질문이기도 했다.

비슷한 변화는 또 다른 곳에서도 확인됐다. 2018년 브라질에서 제주해녀 사진전을 열었던 사진작가 루시아노 칸디사니는 이번 전시를 통해 '에너지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17년 제주 우도와 성산읍 삼달리에서 35일 동안 머물며 65세부터 90대에 이르는 해녀들의 삶을 흑백사진에 담았다. 당시 그의 시선은 바다에서 살아가는 따뜻하면서도 강인한 여성에게 머물렀다.
 
주브라질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해녀 전시 연계 대담 참석자들이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다. 고미 칼럼니스트

경험의 힘과 정의 의미

하지만 이번 전시와 대담을 통해 그는 또 다른 해녀를 봤다. 루시아노 작가는 "해녀 사진을 보면서 예전 제주에서 작업할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 그들이 같이 작업을 하고 살아가면서 쌓은 신뢰를 다시 앵글에 담고 싶다"며 "제주해녀문화에는 힘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힘이 아니라 경험이 주는 힘이다. 정(情)이란 것도 있다. 그걸 깨달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더는 이 일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품고 제주를 찾았던 그는, 평생 바다를 삶으로 살아낸 해녀들에게서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앞선 작업으로 해녀를 '기록'했다면, 이번에는 해녀를 '이해'하게 된 셈이다.

해녀는 누군가에게 문화유산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시 시작할 이유였다. 브라질에서 확인한 공동체는 전시장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전시와 연동해 꾸려진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KOWIN) 브라질지회 강연에서도 같은 장면이 이어졌다. 오랜 시간 이민사회에서 봉사와 돌봄을 실천해 온 회원들은 해녀공동체를 낯선 문화가 아닌 자신의 삶과 닮은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서로를 돌보고 경험을 나누며 공동체를 이어온 삶. 해녀들이 제주 바다에서 지켜온 가치가 지구 반대편 한인 여성들의 삶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었다.

브라질에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해녀에게 다가왔다. 루시아노는 다시 시작할 용기를 발견했고, 방송인은 자신을 지지해 준 아버지, 그리고 가족을 떠올렸다. 의대생은 연구를 이어가기로 했고, 한국계 젊은 세대는 자신의 뿌리를 다시 바라봤다. 코윈 회원들은 자신들이 실천해 온 돌봄과 연대의 가치를 해녀공동체에서 확인했다.

사람은 달랐지만, 모두가 같은 곳에 도착했다. 공동체였다.
 

또 다른 연결의 시작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는 세계가 제주해녀문화를 '알게 된'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2026년 브라질은 그 문화를 '이해하기 시작한' 현장이었다.

이번 전시는 문화원 안에서 끝나지 않았다. 브라질 현지 '유산의 날(Dia do Patrimônio)' 행사에 참여해 상파울루 봉헤찌로(Bom Retiro) 지역 오스왈 극장으로 전시를 옮기며 더 많은 브라질 시민들과 만난다. 이러한 반응을 바탕으로 브라질 내 다른 도시 순회 전시도 검토되고 있다.

이번 전시가 남긴 가장 큰 가능성은 전시 횟수가 아니라 해녀문화를 이해하고, 연구하고, 기록하고, 자신의 언어로 다시 전하려는 사람들이었다.

해녀문화를 이해하는 사람을 늘리는 일. 제주가 넓혀야 할 그 가치가 지구 반대편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제주가 브라질에 건넨 것은 숨비소리였다. 브라질은 그 숨을 '유산적 가치'로 읽어냈다.

이제 해녀문화 세계화의 과제는 전시를 한 번 더 여는 일이 아니다. 해녀가 품은 유산적 가치를 세계의 언어로 번역하고, 사람들의 삶과 연결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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