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의 긴급조치로 진정되는 듯했던 장기국채 금리가 하루 만에 반등하면서 글로벌 증시를 다시 짓누를 조짐이다. 미국의 국가부채가 40조달러를 넘어서면서 재무부의 미봉책이 시장금리를 통제하지 못하면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금리인상도 현실화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유럽과 일본 등 주요국 모두 비슷한 상황에 놓여 글로벌 자본시장은 당분간 극심한 변동성을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베선트 '바이백' 확대 발표 하루 만에 美장기국채 금리 반등
미 CNBC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수요일인 지난 19일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의 구두개입으로 잡히는 듯했던 미 장기국채 금리가 하루 만인 20일 일제히 반등했다.
지난 18~20일 사흘간 미 30년 만기 국채금리는 금융위기 때 수준인 연 5.33%에서 5.196%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5.248%로 튀었다. 10년물도 4.704%→4.647%→4.704%로 돌아왔다. 특히 10년물 국채금리는 주택담보대출이나 자동차대출 등 금리의 기준이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5.3%였다.
수치 자체가 높은 문제도 있지만, 재무부의 조치가 하루 만에 신뢰를 잃었단 점에서 시장의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재무부는 9월 9일부터 11월 4일까지 10~30년 만기 국채 매입, '바이백'(buyback·발행한 국채를 재무부가 사들이는 조치) 규모를 기존 '회당 20억 달러'에서 '최소 4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시장을 잠재우지 못했다.
국채 투자 수익률을 의미하는 국채금리는 국채가격과 반비례한다. 안전자산으로 꼽혀온 미 국채가 매력을 잃은 여러 이유 가운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부채가 있다.
재무부에 따르면 미국의 국가부채는 40조470억달러(약 5경5313조원)로 사상 첫 40조 달러를 넘어섰다. 앞서 2023년 5월 미 의회예산국(CBO)은 국가부채가 40조달러에 달하는 시점을 2028년으로 예측한 바 있는데, 도달 시점이 1년 반 이상 당겨진 셈이다.
연방예산감시단체(CRFB)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1기가 출범하던 2017년 1월 미국의 국가부채는 19조9500억달러였다. 임기 중 부채는 7조8천억달러 늘고, 바이든 행정부에선 8조4천억달러가 추가됐다. 이어 2025년 1월 트럼프 2기 출범 뒤 3조8천억달러가 불어났다.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면 재무부는 계속해서 국채를 발행해 재정적자를 감당하게 된다. 현재 미국 정부는 국채 이자 지급에만 매년 1조달러 넘게 지출한다. 미 국채의 약 80%는 국내외 투자자가 사들이고 있어 부채 증가가 통제되지 않을 경우 초(Hyper)인플레이션이나 정책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글로벌 자본시장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미 연준은 기준금리 인상 여부와 관련해 다소 모호한 입장을 취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는데, 미국의 지난주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6.7%에 근접하며 생활비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韓 포함 주요국에 번지는 부채위기…시장 변동성↑
미국만의 일도 아니다. 프랑스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4.0516%로 2009년 6월 이후 최고, 독일도 10년물 국채금리가 3.2138%로 2011년 이후 최고치다. 이에 유럽중앙은행(ECB)의 9월 기준금리 인상 확률이 약 85%로 사실상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일본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도 2.945%로 1996년 9월 이후 최고치를 찍어 일본은행(BOJ)의 9월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올해 2분기 성장률이 시장 예상치를 하회해 통화정책 향방에 불확실성이 크다.
우리나라도 지난 18일 30년물 국고채 금리가 4.751%, 50년물 4.661%로 나란히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한국은행은 오는 27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하는데, 추가 인상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빅테크 기업이 AI 개발 자금 조달을 위해 더 수익률 높은 장기 채권을 발행하는 까닭도 있다. 삼성증권 김지만 연구원에 따르면 아마존과 알파벳 등 하이퍼스케일러 6개사의 상반기 회사채 발행은 1820억달러(약 252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14배 늘었는데, AA급 신용도에 30% 이상이 30년물이며 수익률 높은 채권은 금리가 6.147~6.375%에 달한다.
문제는 이런 자금 조달 경쟁이 '치킨게임'처럼 심화하면 결국 다같이 우려하던 버블 붕괴로 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에선 특히 일본계 자금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는 '리패트리에이션'과 일본에서 저금리로 돈을 빌려 해외에 투자해온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우려하지만, 뇌관은 어디서든 터질 수 있다.
증시는 이미 불확실성을 한껏 반영한 모습이다. 미국 뉴욕증시 3대지수는 금리 우려가 불거진 지난 18일부터 일제히 하락→반등→하락을 반복하고 있다. 닛케이지수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코스피도 다시 변동성을 키웠다.
KB증권 이은택 이사는 "대공황과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글로벌 금융위기 세 차례 버블붕괴를 연구해보면 이유는 각기 달랐지만 한 번도 빠짐없이 나타난 현상은 바로 '금리의 추세적인 상승'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벤치마크인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5% 초반을 추세적으로 돌파하면 AI 개발에 대규모 투자자금 공급이 끊길 임계점이 올 수 있다고 봤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재무부 구두 개입을 통해 오는 11월 3일 중간선거 전까진 이를 막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시장이 방향을 틀 수 있다는 게 확인된 이상 글로벌 자본시장 불안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