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죽이러 갔다" 자백해도…구속심사서 말 바꾸면 기각?

거래대금 분쟁에 흉기 들고 회사 찾아가
피해자 일찍 퇴근해 못 만나…현행범 체포
"죽이고 나도 죽으려" 진술…CCTV도 확보
법원, 구속영장 기각…"살해 고의 소명 부족"
영장심사서 진술 번복 탓?…법조계 "이례적"

연합뉴스

거래 대금을 받지 못하자 앙심을 품고 흉기를 챙겨 상대방을 찾아간 6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지만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살해 의도를 인정하는 진술과 흉기, 폐쇄회로(CC)TV, 112 신고 내용 등 관련 증거가 충분히 확보됐지만, 이 남성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처음으로 진술을 번복했고 결국 구속을 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 영장심사서 돌연 살해 의도 번복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강영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7일 살인예비와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를 받는 60대 남성 김모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강 부장판사는 김씨의 살인예비 혐의에 대해 "고의성 소명이 부족하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증거인멸과 도망의 염려가 부족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씨의 진술 번복이 영장 기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김씨는 심사에서 경찰 조사 당시와 달리 돌연 범행을 부인하며 '살해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씨가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게 되면서 피해자 A씨는 재접촉 가능성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찰은 재접촉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해 A씨에게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 등을 지급했다. 법원은 김씨에게 연락과 접근을 금지하는 잠정조치를 내렸다.

112 신고 내용·CCTV·흉기·자백에도 기각

서울 동대문경찰서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5일 오후 4시 55분쯤 60대 남성 피해자 A씨를 살해하기 위해 바지 주머니에 흉기를 챙겨 A씨 회사에 찾아간 혐의를 받는다.

술에 취한 김씨는 A씨가 사무실에 없자 직접 112에 "(A씨를) 죽이려고 왔는데 (이곳에) 없다"며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은 오후 5시 25분쯤 회사 앞에서 김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흉기를 압수했다.

A씨는 평소대로라면 사무실에 있을 시간이었지만, 당일 다른 용무로 2시간가량 일찍 퇴근해 김씨를 마주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교복 생산업자인 김씨는 지난해 12월 A씨로부터 수백만 원어치의 교복 제작을 의뢰받았지만, 납품 기일을 지키지 못하고 불량품이 다수 나오면서 갈등을 빚었다. 이후 A씨가 계약 위반을 이유로 거래 잔금 300만 원을 주지 않겠다고 하면서 갈등이 심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씨는 술에서 깬 뒤 이뤄진 경찰 조사에서도 "돈을 못 받아서 범행했다", "술의 힘을 빌려 사장을 죽이고 나도 죽으려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찰은 김씨가 사무실 문을 수차례 열어보고 문 앞에서 A씨를 기다리는 모습이 담긴 CCTV도 확보했다. 또 범행 당일 수십 차례 전화하는 등 지난 5월부터 A씨가 거부하는데도 반복적으로 연락하거나 찾아간 사실을 확인해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도 적용했다.

경찰은 이 같은 구체적인 증거들을 토대로 재범과 보복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지난 6일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검찰도 이를 청구했다.
 

법조계 "고의성 입증 증거 부족하다 보기 어려워"

법조계에서는 김씨 사건처럼 살해 의도를 뒷받침할 증거가 다수 확보됐음에도 영장이 기각된 것은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흉기를 챙겨 죽이려 찾아갔다는 진술, 영상, 압수물 등 고의성을 입증할 증거가 많이 부족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피의자가 고령이고 체력적으로 연약해 보이면 구속 여부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며 "범행 당시 술을 마셔 격앙돼 있었다는 점과 심사에서 살해 의도를 부인한 점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영장을 기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