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육상에선 인간 넘은 로봇…'일상 업무'로 도전장

사무실 정리·전자레인지 요리 등 임무 맡은 로봇
음식 없이 전자레인지만 돌려…아직은 미숙한 모습
100m·높이뛰기 등 육상경기선 인간신기록 넘어
축구·격투기 등에선 엉뚱한 실수로 '웃음' 선사

음식을 조리하기 위해 집게를 집어 들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정영철 기자

어질러진 사무실. 의자는 책상 밖으로 삐져나와 있고, 종이상자와 파일 정리대, 쓰레기통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딩굴고 있다.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이 먼저 의자를 책상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종이상자를 들려고 했지만 미끄러져 놓치고 말았다. 종이상자를 옮기지 못하자 한쪽에 밀어 버렸다. 로봇은 10분이 지나도록 임무를 완성하지는 못했다.

휴머노이드가 자연스럽게 집게를 집고 전자레인지 문을 열고 무언가를 넣었다. 그리고 전자레인지의 타이머를 돌렸다. 이후 10초 정도 지나 전자레인지 문을 열고 음식을 쟁반에 놓고는 집게를 내려놨다. 기다란 팔이 거추장스럽게 보였고 동작도 느렸지만, 치명적인 실수는 다른 데 있었다. 일찌감치 음식을 떨어뜨린 것을 모른 채 빈 전자레인지만 돌린 것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어지럽혀진 사무실을 정리하고 있다. 정영철 기자

중국 베이징 국가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제2회 세계로봇운동회 둘째 날인 23일에는 체육이 아닌 생활 종목을 놓고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됐다.

이번 대회부터는 단순히 몸을 잘 쓰는 것을 넘어 인간의 일상과 현장 업무에서 얼마나 능력을 발휘하는지를 보기 위한 종목들이 크게 늘었다.

이런 생활 종목은 가정청소·호텔서비스·산업생산·응급구조·도서관리·소매·사무·공원관리·전기차 충전 등 9개 분야로 나뉘어 기존 6개에서 21개 종목으로 늘어났다.

정밀한 손기술이 필요한 분말 계량, 블록 쌓기, 핀셋으로 콩 집기, 병뚜껑 열기 같은 종목도 생겼다. 한 대회 참가자는 "이런 기술들이 경기에서 성공하면 곧 일상이나 산업 현장에서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2일 중국 베이징 국가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제2회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운동회에서 로봇들이 100m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간과 격차 벌리는 육상

아직은 생활 종목에서는 인간의 능력에 못 미치지만 전통적인 육상 경기에선 오히려 인간과의 격차를 벌리는 신기록이 쏟아졌다.

개막일인 22일 열린 100m 경주 예선전에서는 중국 베이징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센터의 '텐궁 울트라'가 9초39로 1위를 차지했다. 우사인 볼트가 세운 인간 세계신기록 9초58보다 빨랐다.

첫 대회인 지난해 최고 기록(21초50)을 절반 이하로 단축시킨 기록이다. 주최 측에 따르면 정식 개막에 앞서 치러진 비공식 사전 경기에서는 이보다 더 빠른 기록도 세 번이나 나왔다고 한다.

텐궁 울트라는 같은 날 제자리 높이뛰기 시범경기에서 2.8843m까지 뛰어올랐다. 인간의 도움닫기 최고 기록인 2.45m를 가뿐히 넘은 것이다. 이 로봇은 400m 달리기에서도 39초70의 기록으로 인간의 신기록을 3초 이상 단축하는 기염을 토했다.

축구 경기에서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로봇팀이 골을 넣는 장면. 정영철 기자

'볼거리'로 자리 잡은 운동회

육상 경기뿐만 아니라 축구와 격투기 등 로봇들이 적지 않은 경험과 실험을 거친 종목은 온전한 오락으로 자리 잡았다.

두 곳에서 동시에 열린 축구에선 몸으로 상대 선수를 막아 넘어지기도 하고, 인사이드 킥으로 높은 골 결정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여전히 뒷걸음질을 치거나 골키퍼가 그물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리를 못 잡고 엉뚱한 곳을 헤매는 로봇은 진행자가 데려가 위치를 잡아줬다.

그때마다 관중들은 환호와 웃음을 보내며 '인간을 흉내 내는' 로봇을 응원했다. 축구 경기를 지켜보던 20대 직장인 리모씨는 "로봇들이 귀엽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의 수준하고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면서 "하지만 모두 즐겁게 관람하고 있다"고 말했다.

격투기도 빠른 권투 동작과 화려한 발차기를 보여주며 한층 높아진 기량을 뽐냈다. 동시에 발차기를 주고받으며 둔탁한 소리를 낼 때는 격렬한 인간 격투기를 보는 듯했다. 그러다가도 엉뚱한 방향과 허공을 향한 주먹질과 발길질로 웃음을 자아냈다.

26일까지 닷새간 열리는 이번 운동회에는 16개국 666개 팀, 로봇 2056대가 참가해 51개 종목에서 1301차례 경기를 치른다.

이번 대회에 새로 신설된 탁구 경기에 참가한 로봇(왼쪽)이 서브를 넣고 있다. 두 로봇은 중심 잡기가 서툴러 지지대에 매달린 채 경기를 치렀다. 정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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