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형배의 숙의 정치, 지금 필요한 건 '선택과 집중'

[기자수첩]
새 의제 잇따라 테이블 위로…통합 초기엔 덜어내기도 결단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제공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이 시정 전반에 변화의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가운데, 통합 초기인 지금은 새로운 과제를 더하기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 시장은 정치 여정에서 줄곧 시민 참여와 숙의를 중요하게 여겨온 정치인이다. 정책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보다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논의 과정을 거쳐 답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기존 정책이라고 해서 그대로 답습하기보다 필요하다면 다시 들여다보고 변화를 모색하는 것도 '정치인 민형배'의 색깔 가운데 하나다.

시장 취임 이후에도 이런 기조는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부시장 시민추천제를 도입했고 조직개편 과정에서도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거쳤다. 목포대와 순천대가 얽힌 국립의대 문제에서도 숙의를 통한 해법 찾기에 나서는 한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와 도시철도 등 기존 정책에서도 변화의 필요성을 모색하고 있다.

민 시장의 의욕도, 취지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다만 전남과 광주가 하나의 지방정부로 막 출범한 지금은 새로운 의제를 계속 논의 테이블에 올려놓기보다 무엇이 가장 시급한지를 가려내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실시된 '함께 일하고 싶은 공무원' 설문은 이를 생각하게 하는 사례다. 통합특별시는 간부 공무원들에게 함께 일하고 싶은 공무원을 추천하도록 한 데 이어 5급 공무원들에게는 함께 일하고 싶은 3·4급 간부를 1위부터 5위까지 순위를 매겨 적도록 했다. 기존 근무평정만으로 알기 어려운 협업 능력 등을 파악해 인사와 조직 운영에 참고하겠다는 취지다.

시도 자체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통합으로 한 조직이 된 옛 광주와 전남 공무원 가운데 능력 있고 협업이 잘되는 사람을 찾아 적재적소에 배치하겠다는 취지를 탓할 일도 아니다.

문제는 '왜 지금인가'다. 첫 조직개편과 대규모 인사를 앞둔 민감한 시기인 데다 옛 광주와 전남 공무원들이 서로를 충분히 알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간부들의 선호 순위를 매기는 방식은 의도와 달리 친분과 인맥에 따른 '인기투표'나 '줄 세우기'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

통합 과정에서 근무지와 조직개편 등을 둘러싸고 공직사회가 한 차례 홍역을 치른 상황이라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꼭 필요한 설문이었다면 조직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서로에 대해 충분히 파악한 뒤 실시했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취지의 시도도 때를 잘못 만나면 효과보다 논란이 커질 수 있다.

최근 시정 곳곳에서 진행되는 변화의 움직임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ACC의 미래를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고 도시철도 정책을 다시 살펴보는 것에도 이유가 있다. 기존에 결정됐다는 이유만으로 문제가 있는 정책까지 그대로 끌고 갈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모든 문제를 지금 동시에 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통합특별시는 첫 조직개편과 대규모 인사를 통해 옛 광주와 전남 조직을 하나로 묶고 안정시켜야 한다. 국립의대 문제를 비롯해 당장 풀어야 할 현안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지역의 미래가 걸린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가 속도전에 들어갔다. 정부의 지원 의지가 강하고 정책의 창이 열려 있을 때 지역이 준비하지 못해 기회를 놓치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

행정력도 정치력도 무한하지 않다. 새로운 의제 하나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면 이를 검토할 공무원이 필요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며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설득하는 과정도 뒤따른다. 개별 사안은 모두 의미가 있더라도 동시에 쌓이면 조직의 힘은 분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은 '더하기'보다 '빼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당장 바꾸지 않아도 되는 것은 조금 더 지켜보고, 나중에 논의해도 되는 것은 뒤로 미룰 필요가 있다. 새로운 논란이 예상되지만 시급하지 않은 일이라면 조직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행정의 선택이다.

숙의는 민형배 정치의 장점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강점이다. 하지만 숙의에도 순서가 있고 변화에도 때가 있다. 모든 문제를 논의 테이블에 올리는 것만이 숙의의 정치는 아니다. 어떤 문제를 지금 논의하고 어떤 문제를 잠시 내려놓을지를 결정하는 것 역시 정치다.

특별시청 안팎에서는 "통합 초기에는 새로운 과제를 계속 만들어내기보다 조직을 안정시키고 반도체 등 미래 먹거리와 당면 현안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며 "무엇을 할 것인가 못지않게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리더십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지 않고, 나중에 해도 될 일을 뒤로 미루는 것 역시 결단이다. 지금 민형배 시장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의제를 하나 더 꺼내는 '더하는 정치'보다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덜어내는 정치'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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