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의 시대, 다시 만나는 강원용의 대화와 화해의 정신…'사이와 너머'



[앵커]

한국교회와 시민사회에 깊은 발자취를 남긴 여해 강원용 목사의 삶을 기리는 20주기 추모예배가 열렸습니다.

군사독재와 분단, 산업화의 그늘 속에서 대화와 평화의 길을 모색했던 강 목사의 정신이 극단적 대립과 혐오가 깊어진 오늘, 더욱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오요셉 기자입니다.

[기자]

강원용 목사는 해방과 전쟁, 군사독재와 산업화로 이어지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교회 강단을 넘어, 민주화와 평화, 사회 통합의 길을 모색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일제강점기 학창 시절엔 농촌계몽운동에 힘썼고, 해방 직후에는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하며 분단을 넘어 민족 화합의 길을 찾았습니다.

이후 김재준 목사와 함께 경동교회 설립에 참여해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했으며, 크리스챤아카데미를 세워 민주화, 평화, 대화를 위한 시민사회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급속한 산업화의 그늘에선 노동자와 도시 빈민, 여성과 청년 등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 구명운동과 반유신 운동에 나서는 등 독재와 불의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또, 교단과 종교의 벽을 넘어 대화와 화합에 힘썼으며, 평화와 통일을 위한 활동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안재웅 목사 / 한국YMCA전국연맹 유지재단 이사장]
"극단적 대립 속에서 대화의 공간을 만들어낸 리더요, 사회적 공의와 인간의 존엄을 승화시킨 탁월한 성직자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억압받는 구조를 깨버리고 복음으로 인간 존엄성을 회복시키는 '인간화'를 목회의 핵심가치로 삼으셨습니다."

지난 22일 서울 중구 경동교회에서 진행된 여해 강원용 목사 서거 20주기 추모 행사. 참석자들은 "강원용 목사는 '여해(如海)'라는 호처럼 바다 같은 포용력과 불의 앞에서 타협하지 않는 파도 같은 역동성을 함께 갖고 있었다"며 "오늘날 같은 갈등과 분열이 심화한 사회에서 여해의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된다"고 강조했다. 오요셉 기자

추모예배에 참석한 각계 인사들은 강 목사가 이 땅에 구현하려 했던 인간화와 평화, 대화의 가치를 되새겼습니다.

특히 강 목사의 삶을 관통한 '사이와 너머(between & beyond)'의 정신에 주목했습니다.

어느 한쪽의 편에 안주하기보다 갈등의 '사이'에 서서 서로를 이해하게 하고, 단순한 중립이나 타협을 넘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너머'의 길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참석자들은 "강 목사의 대화 정신은 갈등을 덮거나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실천이었으며, 사랑과 정의, 자유와 평화를 함께 붙드는 '제3의 길'을 모색하는 일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박명림 이사장 / 대화문화아카데미]
"여해의 영과 삶과 뜻은 영혼 구원과 공동체 갱생의 공진이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깨달은 믿음의 선진들이 세상과 세상 속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빈 들에서 외쳐왔듯이 그도 똑같았습니다. 따라서 '사이, 너머'는 새 생명이요 새 길이며, 새 시간과 새 시대를 향한 푯대입니다."

강원용 목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실행위원·중앙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이끌었고,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 의장, 한국종교인평화회의 회장, 세계종교인평화회의 공동의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 현대사 속에서 교회와 사회를 잇는 데 힘썼다. 오요셉 기자

참석자들은 또, "한국교회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교회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역사 전체 속에서 펼쳐진다는 강 목사의 가르침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신앙의 열매는 현실을 외면하는 경건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새 생명이며, 교회는 예배당 안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 존엄이 무너지는 현장에서 복음의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겁니다.

대화보다 혐오가, 공존보다 진영 논리가 앞서는 오늘 참석자들은 대화의 자리를 열고 사랑과 정의, 평화와 공존을 모색했던 강 목사의 삶과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故 여해 강원용 목사 생전 육성 메시지]
"결국에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산다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삶의 현장에서 만나서 그분을 모시고 그 새로운 생명, 새로운 인간성으로 나 자신이 사는 것… 새 생명을 받아들인 증거는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나가서 이 썩을 것들을 썩지 않을 것으로 바꾸는 것, 망할 것들을 망하지 않는 것으로 바꾸는 일, 그러고 미움을 사랑으로 바꿔버리는 일을 하는 것이 부활에 대한 증언이다…"

경동교회에서 진행 중인 추모 전시. 참석자들은 "강원용 목사는 교회가 세상을 향해 문을 닫을 때,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고 잘라 말씀하셨다"며 "교회는 역사와 사회의 아픔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선교' 신학을 몸소 실천한 목회자였다"고 말했다. 오요셉 기자

한편, 강 목사의 생전 어록과 활동을 담은 추모 전시 '빈 들에서 외치는 소리'는 오는 30일까지 서울 경동교회 선교관 2층 경동갤러리에서 열립니다.

갈등의 '사이'에서 대화의 자리를 만들고, 그 '너머'에서 화해와 상생의 길을 찾았던 강원용 목사의 삶.

20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의 교회와 사회에 다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CBS뉴스 오요셉입니다.

강원용 목사의 어록. [1993, 빈들에서 3], p.307. 오요셉 기자

[영상기자 최내호] [영상편집 서원익]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