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사가 111일간 이어진 임금·단체협약 교섭 끝에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아직 노조 투표 절차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10년 만의 전면파업으로까지 치달았던 노사 갈등은 일단 봉합된 것이다.
다만 정년 연장 등 뒤로 미룬 과제도 있는 데다가, 피지컬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 등 미래 기술 전환을 둘러싼 고용 문제 등에 대해 노조는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갈등의 씨앗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4천만원 인상 효과…손배소 전액 철회
26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사는 지난 24일 오후부터 12시간가량 이어진 마라톤 교섭 끝에 전날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지난 5월 교섭을 시작한 지 111일 만이다.주요 내용을 보면 노사는 월 기본급 10만원(호봉승급분 포함) 인상, 기본급 400%에 1270만 원을 더한 경영성과금 지급, 자사주 15주와 복지포인트 50만 원 지급에 합의했다. 성과금은 타결 즉시 기본급의 300%에 870만 원을 더해 지급하고, 나머지는 오는 11월 말과 연말에 나눠서 지급하기로 했다.
노조 측은 현대차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9.5%(14조2천억 원→11조5천억 원) 감소했지만, 성과금 감소율은 9.85%로 최소화 했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이번 협상 결과로 조합원 1명당 올해 4084만 원의 임금 인상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대차 노사는 정년 연장과 관련해서는 향후 법제화가 이뤄질 경우 임금피크제를 추가로 확대하지 않고 현행 만 60세에서 만 65세로의 연장을 추진하기로 했다. 65세 정년 연장이 법제화하면, 현행 '59세 기본급 동결·60세 10% 삭감'인 임금피크제는 만 64세 이후 적용된다. 61~63세에도 임금이 상승하는 것이다.
양측은 과거 노조 활동과 관련한 법적 분쟁도 매듭지었다. 회사는 하청지회 점거 농성과 직영 라인 정지 등과 관련해 제기했던 총 10건(213억7천만 원 규모)의 손해배상 가압류 소송을 조건 없이 전액 철회하기로 했다. 해고자 복직 문제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AI·로봇 도입 공동 대응하기로 했지만…노조 입장 '강경'
노조 내부에서는 미래 기술 도입에 따른 고용 안정성 측면에서 이번에 최소한의 안전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측은 역량을 집중 중인 피지컬 AI와 로보틱스 등 미래 기술 도입에 대해 "향후 신사업 및 신기술 관련 진행 경과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미래 산업 전환에 노사가 공동으로 대응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신기술을 국내 공장에도 도입할 수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다. 시장의 관심도 이날 열리는 현대차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그룹의 피지컬 AI 비전을 사업·투자 전략에 어떻게 구체화할지 쏠리고 있다.
반면 노조는 회사가 신기술 도입을 독단적으로 추진하지 못하도록 협의 절차를 확보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사측의 일방적인 로봇 도입을 차단하는 절차를 마련한 것으로 보고 있는 만큼, 향후 로봇과 전동화 중심으로 현대차그룹의 생산 체계가 바뀌는 과정에서 노사 간 충돌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전동화 전환에 따른 고용 불안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도 이번에 마련됐다. 노사는 핵심 부품의 국내 공장 내재화를 추진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연기관 차량 생산 감소에 따라 엔진·변속기 공장 인력의 유휴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외부에 맡겼던 전동화 부품 생산을 울산공장 등 기존 완성차 공장으로 돌려 조합원들의 고용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노사는 또 신규 인력 채용에도 합의했다. 2027년 하반기 기술직 200명, 2028년 기술직 300명 등 총 500명을 추가 채용하기로 했다.
찬반투표 주목…기아는 무분규로 잠정합의안 도출
파업에 따른 손실 규모와 신차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노조가 한 발씩 양보해 마련한 잠정합의안이지만, 아직 오는 31일 전체 조합원 투표라는 절차가 남아있다. 투표에서 과반이 찬성하면 합의는 확정된다.현대차 노조는 이번 잠정합의안의 현금성 보상 총액이 기존 요구안이었던 순이익의 30%에 소폭 못미치는 약 25%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노조 관계자는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라는 요구는 이후에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기아 노사 역시 전날 임금 및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노조가 부분 파업을 철회하면서 6년 연속 무분규 합의를 이어가게 됐다. 막판 협상은 사측의 추가 제시안이 없었다는 이유에서 정회되기도 했지만,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합의를 이뤘다.
기아 노사 잠정합의안의 핵심은 기본급 10만원 인상, 경영성과금 300%에 400만원 지급, 품질향상 격려금 100%에 470만원 지급, 2026 오토카 어워즈 수상 기념 격려금 400만원 지급, 단체교섭 타결 격려금 성격의 자사주 47주 지급, 최대 생산·판매 달성 특별 포인트 50만포인트 지급 등이다.
기아 노사는 '중대재해 예방과 미래 경쟁력 강화를 통한 고용안정 합의'도 맺었다. 안전 문화를 확립해 중대재해를 막고, 미래 산업 전환에 함께 대응해 고용 안정을 도모한다는 내용이다. 지역사회 상생과 소외계층 지원을 위한 사회공헌기금 40억원도 조성하기로 했다. 기아 노조는 오는 28일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