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씨의 '매관매직' 의혹 항소심 재판부가 이우환 화백 그림의 진위를 감정해달라는 김씨 측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림의 진품 여부보다 김상민 전 검사가 1억 4천만 원을 주고 산 그림을 김씨가 받았는지를 살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고법 형사15-3부(성언주·원익선·이희준 고법판사)는 26일 오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김씨의 항소심 첫 공판을 열었다. 앞서 김씨는 지난 6월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김씨 측은 이른바 '이우환 그림'의 진품 여부를 다시 감정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김씨 측 변호인은 "이우환 화백은 본인 작품에 유리 성분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며 "그림 속 입자가 실제 유리 성분인지, 안료와 물감의 제조 시기가 1980년대와 부합하는지 두 가지만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해당 그림은 김 전 검사가 지난 2023년 자신의 공천을 부탁하며 김씨에게 건넨 것으로 지목된 이우환 화백의 작품 '점으로부터 No. 800298'이다. 1심은 김 전 검사가 1억 4천만 원을 주고 구입한 이 그림이 김씨에게 전달됐다고 판단해 알선수재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반면 김씨 측은 그림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해당 그림이 위작일 가능성이 높고 실제 가치도 공소장에 적힌 가액 1억 4천만 원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그림의 진품 여부가 알선수재 혐의의 성립을 좌우하는 핵심 쟁점인지에 의문을 나타냈다.
재판부는 "위작 판정이 났을 때 그림의 가치가 0원이어서 알선수재가 그 자체로 성립하지 않는 것인지 조금 의문"이라며 "사기나 허위감정처럼 진품 여부가 완전히 쟁점인 것이 아니라면 이 부분을 집중해서 봐야 하는지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상민씨가 1억 4천만 원을 지급하고 매수한 그림을 수수한 사실 그 자체를 재판부에서 살펴볼까 한다"고 설명했다. 그림이 진품인지, 객관적인 가치가 실제 1억 4천만 원인지를 가리는 것보다 김 전 검사가 1억 4천만 원을 들여 구입한 그림을 김씨가 실제로 받았는지를 우선 판단하겠다는 취지다.
김씨 측은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에도 그림에 대한 감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김씨 측 변호인은 "피고인 입장에서는 굉장히 절실하다"며 "이 그림이 과연 진품인지 가품인지 객관적 증거를 통해 다툴 기회까지 허용하지 않으면 어떤 방법으로 방어하겠느냐"고 주장했다.
특검 측은 앞선 재판에서 진품과 위작이라는 상반된 감정 의견을 낸 전문가들을 직접 신문했고 그림에 대한 검증까지 이뤄졌다며 추가 감정이 필요하지 않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양측 의견을 들은 뒤 다시 합의를 거쳤지만 "불채택 입장을 유지하겠다"며 김씨 측의 감정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김씨에게 청탁 목적으로 이우환 그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김 전 검사는 지난 5월 항소심에서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지난달 김 전 검사에 대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