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기자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한나라당 부총재 때였다. 당시 박 부총재는 신비로운 인물이었다. 말수도 적고 언론과 접촉도 거의 없었다. 운 좋게도(?) 박 부총재와 개별 식사를 몇 차례 한 적이 있었다. 당 안팎의 현안에 대해 몇 가지를 물어봤지만 박 부총재의 답변은 모호했다. 의도적 모호함이 아니라 모호함 그 자체였다. 식견이 뛰어나다는 느낌도 없었다. 그런데 측근들을 통해 나오는 메시지는 명확했고 전략적인 면도 있었다. 이 괴리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박 부총재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박근혜는 정치적 능력을 정말로 갖추고 있는가? 부모의 정치적 유산이 그가 가진 유일한 정치적 능력 아닌가? 측근들이 박근혜를 신화화하는 것은 아닌가?'
이런 의문은 15년이 지나서야 명확히 풀렸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폭로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민낯이 온 세상에 드러났다. 그의 무능과 무지, 나태함이 까발려졌다. 헌법재판소도 이듬해 박근혜를 국정운영의 부적합자로 판단해 파면 결정을 내렸다.
이런 박근혜를 국민의힘은 놓지 못하고 있다. 27일 열리는 당 연찬회에 박 전 대통령을 초청해 의견을 듣기로 했다. 국민이 쫓아낸 무능한 전직 대통령에게 들을 것이 남아 있기나 한지 의문이다.
국민의힘은 탄핵 이후 박근혜를 강제출당시키며 절연을 선언했었다.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는 '자유한국당이 보수 우파의 본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박근혜라는 멍에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이렇게 보수 우파가 허물어진데 대해 철저하게 반성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듬해 지방선거 대패 뒤에는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는 현수막 아래에서 소속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무릎 꿇고 대국민 사과까지 했었다. 2020년에도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재차 박근혜 국정농단에 대해 사과했다.
국민의힘이 소속 의원들과 당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는 연찬회에 박 전 대통령을 초청해 자문을 구한다는 것은 그동안의 절연과 사과가 기만적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국민의힘은 6.3지방선거에서도 박근혜를 소환했었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허구적 신화에 기대어 재미를 본 덕분인지 국민의힘은 이제 본격적으로 박근혜를 정치판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절연을 거부하고 있는 윤석열에 대한 재소환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26일 취임 1년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보수'를 강조했다. 그러나 취임 1년 뒤 갖는 첫 당내 행사에 박근혜를 불러 들이는 행태는 아무리 봐도 새롭지 않다. 뒷걸음질이며 국민 기만이고 TK(대구 경북) 집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