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용산공원을 비롯한 서울 주택 공급 방안을 놓고 두 번째 협의를 진행했지만 뚜렷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다만 서울시가 대안으로 제시한 강남구 탄천물재생센터 활용과 재개발 용적률 완화 등에서는 추가 논의를 이어가기로 하면서 향후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27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김 장관과 오 시장은 전날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만나 용산공원을 비롯한 서울지역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 20일 첫 회동 이후 엿새 만에 열린 두 번째 협의다.
약 50분간 이어진 회동에서도 최대 쟁점인 용산공원 본체 부지 활용을 놓고는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김 장관은 회동 뒤 "용산공원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 접근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오해는 많이 푼 것 같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용산공원 전체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숙소 등 건축물이 있거나 이미 훼손된 부지를 제한적으로 활용해 청년·신혼부부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서울시는 용산공원 본체를 주택용지로 활용하는 데 원칙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김 장관은 "용산공원에 제한적으로 청년·신혼부부용 주택을 건설하려 한다는 우리의 진의는 전달된 것 같다"면서도 "오 시장은 용산공원 본체를 건드리는 데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용산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제한적 활용·공론화 강조
특히 김 장관은 "용산공원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은 원래부터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공급할 주택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 서울 안에서 그런 주택을 지을 수 있는 곳을 적극적으로 찾는 과정에서 용산공원도 하나의 검토 대상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용산공원의 기본적인 취지, 즉 서울시민에게 소중한 녹지공간으로 재탄생해야 한다는 취지를 확고하게 인지하고 있다"며 "다만 훼손된 제한적 지역에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을 공급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4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용산 어린이정원이라고 하면 좁은 개념이고 용산공원 전체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힌 것과 비교하면 용산공원 활용의 당위성을 강조하기보다 제한적 활용과 공론화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실제 주택 공급까지 넘어야 할 절차가 많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장관은 "공론화 결과를 바탕으로 용산공원특별법이 개정돼야 하고, 법이 개정되더라도 서울시와 용산구 등 지방정부의 협력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르면 다음 달 말 발표할 7만3천가구 규모의 수도권 신규택지에 용산공원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 장관은 "처음부터 7만3천가구에는 용산공원이 들어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7만3천가구가 경기 지역에만 공급되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서울시와 협의하는 과정에 있다"며 답을 아꼈다. 국토부 관계자는 "상당수는 협의가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탄천 카드' 공식 제안…최대 1만3천가구 공급 구상
용산공원에서는 평행선을 달렸지만 서울시가 새로운 대체지를 제시하면서 협상의 폭은 넓어졌다. 오 시장은 탄천물재생센터를 이전한 뒤 해당 부지에 피지컬 인공지능(AI) 특화단지와 청년주택을 함께 조성하는 가칭 '동남권 청년특화산업단지' 구상을 김 장관에게 공식 제안했다.
탄천물재생센터는 정부가 주택 공급 가능성을 검토해온 용산어린이정원 약 30만㎡보다 넓은 약 40만㎡ 규모다. 서울시는 이 가운데 절반가량을 주거 기능으로 활용하면 1만~1만3천가구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탄천 개발 구상은 이번 회동을 앞두고 새롭게 나온 아이디어는 아니다. 서울시는 이미 2024년 탄천물재생센터와 인접한 동부도로사업소, 세텍(SETEC) 부지 등을 포함한 양재천·탄천 합수부 일대 마스터플랜 수립 용역을 마쳤다. 현재는 탄천물재생센터 이전을 위한 민간투자사업 적격성 조사가 진행 중이며 올해 말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사업 재원은 서울시 소유인 동부도로사업소와 세텍 부지 등을 매각해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오 시장 구상대로라면 탄천물재생센터 이전 부지에 산업과 주거 기능을 함께 배치하는 복합개발 방식이 적용된다.
오 시장은 "이 계획을 심도 있게 말씀드렸고, 검토해보시겠다는 말씀을 들었다"며 "용산공원에 대한 정부 제안이 철회되고 동남권 청년특화산업단지가 대안으로 채택돼 논의가 진전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장관도 탄천물재생센터 활용 가능성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장관은 "현재 관련 자료가 전혀 없어 서울시에 가능한 한 빨리 자료를 달라고 했다"며 "자료를 받아 분석해봐야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주택 공급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대화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탄천물재생센터 역시 단기간에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부지는 아니다. 기존 시설 이전을 확정하고 개발계획 수립과 각종 행정절차를 거친 뒤 주택을 건설해야 해 실제 공급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서울시는 정부 심의와 관련 행정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면 사업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탄천보다 큰 '4만 3천가구' 카드…재개발 용적률 완화 논의
민간 정비사업 규제 완화도 주요 협상 카드로 떠올랐다. 서울시는 재개발 사업의 용적률을 법적 상한의 1.2배까지 완화해달라고 국토부에 요청했다. 서울시는 규제가 완화되면 2031년까지 착공 가능한 주택 가운데 4만3천가구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현재 재개발을 통해 예상되는 순증 물량 8만 7천가구에 4만 3천가구가 더해지면 순증 물량은 13만가구 수준으로 늘어난다는 계산이다.
오 시장은 "국토부가 재개발 용적률 규제를 1.2배까지 완화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며 "용산공원이나 탄천 논의를 다 합친 것보다 많은 물량"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등 정비사업 관련 다른 규제 완화도 지속적으로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오 시장은 이들 사안에 대해서도 국토부의 전향적인 검토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양측은 일주일 뒤 다시 만나 서울 주택 공급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오 시장은 이번 회동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희망적인 것은 여러 부분에서 의견이 좁혀지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라며 "일주일 정도 뒤 다시 만나면 여러 현안이 한꺼번에 합의에 도달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다음 회동에서는 탄천물재생센터를 비롯한 서울시 제안 부지의 공급 후보지 포함 여부와 재개발 용적률 1.2배 완화 등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다만 최대 쟁점인 용산공원 본체 활용과 그린벨트 해제 등에서는 여전히 양측의 입장 차가 큰 만큼, 서울시가 제시한 대체부지와 정비사업 규제 완화를 고리로 어느 수준까지 패키지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