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리 슈퍼스타' 돌리 파튼 사망…"밝게 빛난 삶, 영원한 영감으로 남을 것"

25일(현지 시각) 세상을 떠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돌리 파튼. 돌리 파튼 공식 트위터

미국의 컨트리 대가로, 가수와 영화배우로 활약한 시대의 아이콘 돌리 파튼(Dolly Parton)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0세.

돌리 파튼의 대변인은 그가 "짧은 암 투병 끝에 용감하게 싸운 후" 25일(현지 시각)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그는 가수, 작곡가, 배우, 극작가, 작가, 자선가 등 다양한 역할을 해내며 큰 사랑을 받은 인물이었다.

대변인은 "돌리의 삶은 세계가 볼 수 있을 만큼 밝게 빛났다. 영원한 그의 음악과 다량의 작곡, 우리 모두를 가족처럼 느끼게 한 재치, 따뜻함, 친절함을 통해 영원한 영감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돌리가 70년 이상의 경력을 지녔다는 점을 먼저 언급한 대변인은 "흔들리지 않는 헌신으로 여러 세대의 예술가와 팬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의 노래는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공명할 것이고, 그가 해온 자선 활동도 (앞으로)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고인 요청에 따라, 장례식은 가까운 가족을 위한 소규모의 비공개 장례식이 치러질 예정이다. 대변인은 돌리의 팬과 전 세계 친구들에게 소셜미디어에 '돌리 파튼'을 태그하거나 고인의 공식 홈페이지에 메시지를 남기는 것으로 추모의 뜻을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고인은 지난해 9월 본인 인스타그램에 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까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건강 문제 회복 중'이며, 60년 가까이 함께한 남편의 죽음 후 슬픔을 여전히 극복해 나가는 중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미국의 탄생 250주년을 축하하며 돌리 파튼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 돌리 파튼 공식 트위터

1946년생인 돌리 파튼은 다섯 살 때부터 노래를 쓰기 시작한 일화가 있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어머니에 이어, 돌리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챈 삼촌이자 유명 작곡가였던 빌 오웬스(Bill Owens)는 돌리가 타고난 재능을 갈고닦을 수 있게 도왔다.

그 덕에 돌리는 불과 열 살 때부터 지역 라디오와 TV 프로그램에서 노래할 수 있었고 13살에는 그랜드 올 오프리 무대에 데뷔했다. 내슈빌로 이동하고 나서는 남편 칼 딘(Carl Dean)을 만났다. 1966년 조지아주에서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59년 동안 부부의 연을 이어갔다.

데뷔 앨범 '헬로, 아임 돌리'(Hello, I'm Dolly)의 두 싱글 '덤 블론드'(Dumb Blonde)와 '썸띵 피시'(Something Fishy)는 컨트리 차트에서 대성공을 거뒀고, 이를 바탕으로 돌리는 '포터 웨고너 쇼'에 합류했다. 1967년부터 1974년까지 포터와 돌리는 컨트리 음악계를 대표하는 듀오로 자리매김했다.

세상만사가 겉보기와는 다르다는 교훈을 담은 '조슈아'(Joshua)라는 싱글로 첫 번째 1위를 거머쥔 돌리는 본격적으로 컨트리 음악계의 '스타'로 거듭났다. 이 싱글의 성공은 돌리가 음악적 재능을 갖춘 것은 물론 뛰어난 스토리텔러이자 작곡가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현재는 고전으로 평가받는 '코트 오브 매니 컬러스'(Coat Of Many Colors) '마이 테네시 마운틴 홈'(My Tennessee Mountain Home) '히어 유 컴 어게인'(Here You Come Again) 등 히트곡이 쏟아지는 가운데, 돌리는 1975~1976년 컨트리 음악 협회(CMA) 선정 '올해의 여성 보컬리스트'가 됐고, 1978년에는 '올해의 엔터테이너' 상도 받았다.

1980년부터는 흥행작 '9 to 5'로 영화배우 경력을 시작했다. 영화 주제곡도 금세 히트해 전 세계 여성 직장인에게 사랑받는 명곡이 됐고,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정상에 올랐다. 돌리는 '스틸 매그놀리아'(Steel Magnolias) '스트레이트 토크'(Straight Talk) '조이풀 노이즈'(Joyful Noise) 등 여러 영화, TV 영화에서 활약했다.

돌리 파튼 공식 트위터

그는 유명한 자선가이기도 했다. 교육, 의료, 재난 구호 등 다양한 분야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1988년 돌리우드 재단을 설립해 동부 테네시 지역 주민들에게 장학금을 주어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1995년에는 돌리 파튼의 '상상력 도서관'을 지어, 현재까지 전 세계 5세 미만 어린이들에게 3억 권 이상의 책을 무료 기증했다.

2022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른 돌리 파튼은 '록스타'(Rockstar)라는 앨범을 발매했다. 70년 경력 중 가장 높은 주간 판매량으로 데뷔했고, 빌보드 차트에서 '톱 록 앨범' '톱 록 & 얼터너티브 앨범' '톱 컨트리 앨범' '톱 앨범 판매' '톱 최신 앨범 판매' '인디 앨범' 등 6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미국 음반산업협회(RIAA)에서 골드, 플래티넘, 멀티 플래티넘까지 29개의 인증을 획득한 돌리의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1억 장 이상 팔렸다. 빌보드 컨트리 차트 1위에 등극한 곡만 26곡에 이르는데, 이는 여성 아티스트로서는 최다 기록이다.

미국 음악 전문 매체 '롤링스톤'은 "컨트리 음악, 대중음악, 전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모습을 재편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아이콘이 사망했다"라며 돌리의 부고 소식을 전했다.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 뉴욕시장은 돌리 파튼의 사망을 두고 "이건 정말 가슴 아픈 일"이라며 "돌리 파튼은 비범한 사람이었고, 노동 계급의 대체 불가능한 수호자였다. 돌리 덕분에 우리는 더 나은 나라가 되었다"라고 추모했다.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타임'은 돌리 파튼이 나타난 표지를 공개했다. 그러면서 "3천 곡 이상 음원에서 노동 계층의 삶을 다룬 것으로 유명한 그는,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약 3억 권의 책을 기부했다. 돌리의 삶은 진정한 신데렐라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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