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로맨스 스캠은 사랑을 이용하는 범죄가 아니다

[이승환 경감의 사기(詐欺) 프로파일링]
로맨스 스캠 사기

캄보디아 당국의 범죄단지 단속으로 적발돼 구금됐던 한국인들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이번 송환 대상자들은 이른바 '웬치'로 불리는 캄보디아 범죄단지에서 보이스피싱이나 로맨스 스캠(사기) 등 범죄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인천공항=황진환 기자

사기꾼들은 범행 대상을 속이기 위해 상황과 상대에 따라 서로 다른 수법과 행동 패턴을 보인다. 오늘은 열 번째 이야기로 지난주의 '나체사진 협박 스캠(Sextortion Scam)'에 이어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을 다루고자 한다.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2026년도 상반기(1~7월) 보이스피싱 피해 발생 건수와 피해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26년 1월~7월 기간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7,940건으로 전년 같은기간 (14,707건) 대비 46% 감소했다. 피해액도 7,766억원에서 3,614억원으로 53% 줄었다.

정부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대응단"은 2026년 5월부터 이동통신 3사와 협력해 범행 의심 번호의 사전 탐지를 강화하고, 사설 중계기 집중 단속을 펼쳤는데, 이러한 노력 덕분으로 투자리딩방 사기·로맨스스캠(연애빙자사기)·팀미션 사기 등 신종 스캠 범죄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피해액 감소에도 로맨스 스캠은 지역별로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피해자는 특정 연령층에 국한되지 않고, 중·장년층과 1인 가구, 이혼이나 사별을 경험한 사람들에게서 피해가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2026년 5월까지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였다.(2026년 1~5윌 전체 피싱 발생건수 16,892건 중 1,037건이 발생)  

최근 로맨스 스캠은 단순히 사랑을 가장하는 수준을 넘어 장기간 신뢰를 형성한 뒤 투자, 사업, 긴급 의료비, 세금, 배송비 등의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경찰이 수사한 사건들을 살펴보면 수개월 동안 매일 연락을 주고받으며 연인 관계를 형성한 후 거액을 편취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로맨스 스캠은 사람의 어떤 심리를 이용하는 범죄인지 살펴보겠다.

사랑을 가장한 로맨스 스캠

강원도에 거주하는 50대 중반의 회사원 박모 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한 여성으로부터 친구 신청을 받았다. 자신을 해외에서 의료봉사를 하는 한국계 간호사라고 소개한 여성은 자연스럽게 안부를 묻기 시작했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메시지를 보내며 대화를 이어갔다. 혼자 생활한 지 수년이 된 박 씨는 누군가 자신의 일상을 따뜻하게 들어주고 걱정해 주는 것이 오랜만이라 점차 마음을 열게 되었다.

여성은 매일 아침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사진을 보내왔고, 퇴근 후에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박 씨의 고민도 진심으로 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3개월이 지나자 서로 영상통화를 하기도 했고, 여성은 "한국으로 돌아가면 꼭 만나고 싶다.", "당신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며 미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박 씨 역시 그녀를 평생 함께할 사람이라고 믿게 되었다.

어느 날 여성은 해외 의료봉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해 귀국 준비를 하고 있다며 기쁜 소식을 전했다. 며칠 뒤 그녀는 "귀국하면서 귀금속과 현금을 국제 특송으로 보냈는데 통관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며 다급하게 연락해 왔다. 이어 자신을 국제 배송업체 직원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이메일과 메신저로 연락해 와 "통관 보증금 1,500만 원을 납부하면 바로 배송된다."고 설명했다. 박 씨는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여성은 눈물을 흘리며 "이것만 해결되면 한국에 가서 함께 살 수 있다.", "당신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고 호소했다. 결국 박 씨는 1,500만 원을 송금했다.

며칠 뒤에는 세관에서 추가 세금이 발생했다는 연락이 왔다. 이후에는 환율 차액, 보험료, 자금세탁 방지 확인금, 국제 송금 수수료 등 새로운 명목의 비용이 계속 생겨났다. 여성은 그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곧 당신을 만나 직접 모두 갚겠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조금만 더 힘내 달라."고 말했다. 박 씨는 이미 큰돈을 보낸 상황에서 중간에 포기하면 지금까지 보낸 돈도 모두 잃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퇴직금 일부를 해약했고, 예금과 적금을 모두 인출했다. 부족한 돈은 금융기관에서 대출까지 받아 송금했다. 몇 달 동안 계속된 송금액은 어느새 1억 원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여성과 배송업체 직원 모두 연락이 끊겼다. 메신저 계정은 삭제되었고 이메일도 반송되기 시작했다. 뒤늦게 인터넷을 검색한 박 씨는 자신이 받은 사진과 메시지가 모두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사용된 전형적인 로맨스 스캠 수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찰서를 찾은 박 씨는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돈보다 사람이 믿고 싶었습니다. 오랜 시간 매일 연락하며 제 이야기를 들어주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의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결국 박 씨는 예금과 퇴직금, 대출금을 포함해 1억 원의 재산을 잃었고, 경제적 피해뿐 아니라 깊은 정신적 충격과 인간에 대한 신뢰까지 잃게 되었다.

피해자의 심리

박 씨는 단순히 이성을 만나고 싶어서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혼자 생활하면서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기를 바라는 평범한 마음이 범죄에 이용된 것이다. 사기범은 처음부터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수개월 동안 매일 연락하며 신뢰를 쌓고, 관심과 배려를 보여주면서 피해자가 정서적으로 의지하도록 만들었다. 사람은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사람을 쉽게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오랜 시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으면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심은 점차 사라진다. 이러한 정서적 친밀감은 객관적인 판단보다 훨씬 강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박 씨는 이미 여러 차례 돈을 송금한 이후에는 쉽게 중단하지 못했다. "이번만 해결하면 한국에 온다.",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말을 들을수록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돕는다는 책임감과 지금까지 보낸 돈을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는 심리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피해는 점점 커졌다. 무엇보다 사기범은 박 씨가 외롭다는 사실을 이용했다. 사람은 경제적 손실보다 정서적 관계를 잃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의심보다 앞서게 되면서 결국 거액의 송금으로 이어진 것이다.

심리학적 해설

로맨스 스캠은 사랑을 이용하는 범죄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받고 싶고, 누군가를 믿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는 심리조작형 범죄다. 사기범은 처음부터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오랜 시간 감정을 쌓아간다.

첫째는 친밀감 형성(Rapport Building)이다. 사기범은 매일 아침 인사를 건네고, 하루 일과를 묻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위로하면서 피해자의 일상 속으로 들어온다. 수개월 동안 반복되는 대화는 어느 순간 낯선 사람을 가장 가까운 사람처럼 느끼게 만든다. 신뢰는 한 번의 거짓말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접촉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둘째는 상호성의 원리(Reciprocity)다. 사기범은 먼저 사랑과 관심을 베푼다. "당신을 만나서 행복하다", "내가 힘들 때 당신이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며 감정적 빚을 만든다. 그러다 갑자기 "이번 한 번만 도와달라"는 부탁이 시작된다. 피해자는 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셋째는 감정적 의사결정(Affect Heuristic)이다. 사랑과 신뢰가 깊어질수록 사람은 사실보다 감정을 먼저 판단하게 된다. 상대의 신분이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확인해야 하지만,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속일 리 없다"는 생각이 의심을 대신한다. 평소라면 이상하다고 느꼈을 송금 요구조차 연인의 부탁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넷째는 매몰비용 효과(Sunk Cost Effect)다. 한 번 돈을 보내면 사기범은 "조금만 더 보내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한다. 피해자는 이미 보낸 돈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추가로 돈을 보내서라도 지금까지의 손실을 되찾고 싶어 한다. 결국 손실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 오히려 더 큰 손실로 이어진다.

다섯째는 미래보상 심리(Future Reward Orientation)다. "이 문제만 해결되면 한국에 가겠다", "함께 살자", "결혼하면 지금까지 받은 돈을 모두 돌려주겠다"는 약속은 피해자가 현재의 의심보다 미래의 행복을 바라보게 만든다. 사기범이 파는 것은 돈을 돌려준다는 약속이 아니라 함께할 미래에 대한 기대인 셈이다.

마지막은 고립 전략(Isolation Strategy)이다. 사기범은 가족이나 친구에게 관계를 알리지 못하도록 만든다. "우리 관계를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괜히 이야기하면 우리 사이가 깨질 수 있다"는 말로 외부의 조언을 차단한다. 사람은 혼자 판단할수록 자신의 판단이 맞다고 믿기 쉬워진다.

결국 로맨스 스캠의 무서움은 돈을 빼앗는 과정에 있다기보다 피해자가 돈을 보내면서도 그것을 사기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사기범은 사랑을 연기하고, 신뢰를 쌓고, 감정을 지배한 뒤 마지막에 돈을 요구한다. 그래서 로맨스 스캠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지갑이 아니라 판단력이다.

이승환 경감의 조언

최근 로맨스 스캠은 국제결혼, 해외 의료봉사, 군인, 사업가, 엔지니어, 투자전문가 등 다양한 신분을 내세우며 접근하고 있다. SNS와 데이팅 앱, 메신저 등을 통해 장기간 친밀감을 형성한 뒤 귀국 비용, 통관비, 병원비, 사업자금, 투자금 등의 명목으로 송금을 요구하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진정한 인간관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만, 신뢰를 이유로 돈을 먼저 요구하지는 않는다. 특히 직접 만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금전을 요청하거나 해외 송금, 가상자산 송금, 통관비·세금·보증금 등을 대신 내 달라고 한다면 거의 대부분 사기를 의심해야 한다. "이번만 보내면 끝난다.", "곧 만나 모두 갚겠다."는 말은 로맨스 스캠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전형적인 심리 조작 수법이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럽다면 송금을 중단하고 가족이나 지인, 경찰과 금융기관에 즉시 상담해야 한다.

사기범은 피해자가 다른 사람과 상의하지 못하도록 관계를 독점하려 하지만, 제3자의 객관적인 판단은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안전장치가 된다.  현장에서 로맨스 스캠 피해자를 만나 보면 피해자들은 사랑에 눈이 멀어 돈을 잃은 사람들이 아니다. 외로움 속에서도 진심 어린 관계를 믿고 싶었던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 따뜻한 마음과 신뢰가 오히려 범죄조직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 사랑은 신뢰를 쌓는 과정이지 돈을 송금하는 과정이 아니다.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이 사랑을 이유로 돈을 요구하거나 각종 명목으로 송금을 재촉하는 순간에는 반드시 로맨스 스캠을 의심해야 한다. 단 한 번의 확인과 가족과의 상담이 여러분의 소중한 재산뿐 아니라 마음까지 지키는 가장 확실한 예방책이다.

이승환 경감(경찰청 치안정보국), '사기 프로파일링' 저자

※ 외부 필진 기고는 CBS노컷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