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따로·조달 따로 없앤다…정부가 혁신기술 '첫 고객'


정부가 연간 238조 원 규모의 공공구매력을 활용해 인공지능(AI) 로봇과 우주발사체 등 혁신기술의 초기 시장을 직접 만든다.

연구개발(R&D) 과정에서 이미 실질적인 경쟁을 거쳤다면 개발에 성공한 제품을 별도 재입찰 없이 구매하고, 구체적인 제품 규격을 미리 정하기 어려운 첨단기술은 '성과목표'만 제시한 뒤 기업이 해법을 제안하도록 국가계약 제도를 뜯어고친다.

정부는 28일 '비상경제본부 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3대 국가계약 혁신 트랙'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다음 달 국가계약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경쟁입찰과 사전 규격화를 원칙으로 하는 기존 국가계약 체계에 유연성을 더하는 것이다. 첨단기술은 개발 속도가 빠르고 발주 단계에서 최종 규격을 확정하기 어려운 데다, R&D를 마친 뒤 다시 조달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적기에 현장에 도입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R&D 성공하면 재입찰 없이 구매…공공부문이 '첫 고객'

첫 번째는 '개발·구매 연계형' 계약이다. 국가전략기술 R&D 사업을 공모할 때부터 개발 성공 시 후속 구매가 가능하다는 점과 구매 조건·범위를 미리 정한다. 개발 과정에서 실질적인 경쟁이 이뤄졌다면 이를 후속 구매를 위한 경쟁 절차까지 거친 것으로 인정해 별도의 재입찰 없이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

예컨대 산업통상부가 R&D를 추진하고 경찰청과 소방청이 수요기관으로 참여해 AI 휴머노이드나 4족 보행로봇을 개발한 뒤, 개발에 성공하면 사전에 약정한 물량을 경찰청과 소방청이 구매하는 방식이다.

다만 무분별한 수의계약을 막기 위해 국가전략기술 관련 사업 가운데 소관 부처가 신청하고 조달정책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친 경우에만 적용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규격 대신 '목표' 제시…우주발사체도 성능으로 경쟁

두 번째는 '성과목표형' 계약이다. 발주기관이 제품의 세부 규격이나 기술적 해결 방법을 미리 정하지 않고 달성해야 할 성과만 제시한다. 이후 기업과의 대화를 통해 최적의 기술적 해법을 찾아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개산계약과 사후정산, 성과에 연동한 대가지급, 기술 변화에 따른 계약 변경, 성실실패 인정, 지식재산권 공동소유 등도 허용해 기술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

우주발사체 사업이 대표적이다. 우주항공청이 특정한 발사체의 규격을 정해 발주하는 대신 발사단가와 수송능력 등 달성해야 할 목표를 제시하면 기업들이 각자의 기술로 경쟁한다. 가장 우수한 제안서를 낸 사업자와 계약한 뒤 사후정산과 마일스톤별 대금 지급, 지체상금 요건 완화 등을 적용해 사업을 추진한다.

국가계약에도 '샌드박스'…2년간 써보고 제도화

세 번째는 '조달샌드박스'다. 현재 일부 분야에 적용되는 시범특례를 국가계약법상 제도로 확대해 낙찰자 결정뿐 아니라 계약 체결과 이행, 계약내용 변경까지 특례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한다.

새로운 계약 방식이 필요하지만 현행 법령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 우선 2년간 시범 운영한 뒤 성과를 평가해 국가계약법령에 정식으로 반영할지를 결정한다.

정부는 이번 개편을 통해 R&D와 공공구매 사이의 단절을 줄이고 공공부문을 혁신기술의 'First Buyer(첫 고객)'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민간 시장이 형성되기 전 정부가 먼저 제품을 구매해 혁신기업이 초기 실적과 시장을 확보하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다음 달 국가계약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동시에 시행령과 계약예규 등 하위 규정 정비에 착수한다. 법 개정 이후에는 2027년부터 적용 사업을 발굴하고 조달청에 지원단을 설치해 현장 적용을 지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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