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들이 기존의 업무를 넘어 유통업으로까지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단순한 협업이 아닌, 고객들을 직접 만난 수 있는 쇼핑의 '현장'에 뛰어들면서 금융과 유통의 경계가 흐려지는 모습이다.
하나증권, 현대백화점 입점…리모델링 비용에 아파트 한 채 값 '투자'
병원을 운영하는 60대 A씨는 지난주 서울 양천구의 현대백화점 목동점 6층 식당가를 찾았다.중식당을 지나친 A씨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하나증권의 프리미엄 금융센터인 'THE H1 W'이었다.
지난 6월 문을 연 'THE H1 W'은 현대백화점 우수 고객인 쟈스민 등 VIP 등급 고객을 대상으로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증권사가 백화점 매장이 직접 지점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장소를 물색하던 하나증권과 백화점 내에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는 백화점 측의 의지가 맞아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백화점 고객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지점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썼다. 리모델링 비용으로만 28억원을 투자했다. 서울의 고가 아파트 가격에 맞먹는 비용이다. 하나증권 관계자는 "의자나 조형물 등 소품에도 백화점 고객들의 높은 취향을 고려했다"고 전했다.
THE H1 W에서는 주식과 채권 등 전통적인 자산관리 포트폴리오 이외에도 목동점에 특화한 'NEW 패밀리오피스 인수창업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NEW 패밀리오피스 인수창업 서비스는 기존 증여나 상속에서 벗어나 자녀의 창업을 지원하는 형태로 자산을 증여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기술력을 가진 지역의 중소기업 중 후계자나 자금이 부족한 기업을 인수해 이를 자녀에게 상속하는 방식이다.
하나증권 관계자는 "실제로 경북 지역의 한 음식점을 인수해 공정 과정을 자동화로 바꿔 수출까지 하는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면서 기업 가치가 10배 이상 뛰었다"고 말했다.
하나증권은 백화점 멤버십 포인트 적립과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강의 등 접점을 넓혀 금융 서비스와 유통의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지점 내에서 미술 전시나 명품쇼도 진행할 예정이다.
NH농협은행, 모두투어와 출시한 여행적금 '완판'…케이뱅크는'무신사'와 협업
유통사와의 협업은 금융사들에게 새로운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KB금융그룹도 지난해 현대백화점그룹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KB금융은 백화점 고객에게 고금리 제휴 상품, 간편결제 서비스 등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백화점은 KB금융 우수고객을 위한 쇼핑 담당자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NH농협은행이 여행사와 손 잡고 만든 여행특화적금은 조기에 매진됐다. NH농협은행은 지난달 모두투어와 출시한 여행특화상품 'NH모두트래블리적금'이 출시 8일 만에 한정 판매 1만좌가 조기 완판됐다고 전했다.
'NH모두트래블리적금'은 3개월 자유적립식 적금으로 최고 연 7.3%의 금리를 제공한다. 가입고객 전원에게 모두투어 3만 마일리지를 제공하고, 선착순 5천명에 NH포인트 추가 증정 이벤트도 진행해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여름 휴가철 여행 수요와 금융과 여행을 결합한 차별화된 혜택이 조기 완판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롯데백화점과 업무협약을 맺은 SC제일은행은 에비뉴엘 고객에게 SC제일은행의 프라이빗 뱅킹 전용 서비스와 정기예금 우대금리를 제공한다. 프라이빗 금융세미나 초청 혜택도 제공할 예정이다.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도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 손을 잡았다. '무신사머니 케이뱅크 통장 및 체크카드'를 출시했다. 우리은행은 CJ올리브네트웍스와, NH농협은행은 컬리와 제휴를 맺고 금리, 쿠폰팩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신한은행이 운영하는 배달앱 땡겨요, 회원수 940만명 돌파
성장세가 둔화된 보험사들도 유통사로의 외연 확장에 뛰어들었다.DB손해보험은 이마트와 함께 몰리스(Molly's) 전용 펫보험인 '올라!펫보험'을 출시했다. 일상진료와 장기치료, 배상책임 등 핵심 보장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질병이나 상해로 인한 입원·통원·수술 치료비를 횟수 제한 없이 사고 당 최대 700만 원까지, 연간 최대 3천만원 한도 내에서 보장한다.
가입 가능 연령은 12세까지로 넓혔으며, 갱신을 통해 최대 20세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 이마트·스타필드 내 몰리스 전문점에서만 가입이 가능하다.
신한은행은 상생 배달앱 '땡겨요'를 직접 개발, 운영중이다. 30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땡겨요 회원수는 947만명, 가맹점 수는 35만 5천개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가맹점의 안정적인 사업 운영과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땡겨요 우수가맹점 대출'도 출시했다.
대출 한도는 최대 1억원이며, 직전 6개월 월평균 매출액 또는 월평균 신한카드 매입액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이번 상품은 땡겨요 가맹점이 사업을 통해 쌓아온 매출과 영업 데이터를 실질적인 금융 혜택으로 연결해 소상공인의 성장을 지원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금융사와 유통사의 협업은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단순한 할인이나 제휴카드가 아니라 일상에서 금융 서비스를 경험하면서 고객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차별화된 협업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