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28일 조희대 대법원장의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 제청을 반려하고 재제청을 요구했다. 조 대법원장이 다시 후보자를 제청하기 위해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를 재구성해야하는지 여부가 갈등의 뇌관이 될 전망이다.
정부여당은 기존 추천위에서 추천한 인사들 중에서 다시 제청하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법조계에선 추천위를 다시 꾸려 새롭게 후보자 추천 및 제청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靑 "'절차적 완결성' 못 갖춰"…재제청 요구
청와대 강유정 수석대변인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자에 대한 제청은 그 절차적 완결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손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조 대법원장이 지난 18일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노 전 대법관 후임자로 제청한 것을 두고, 대통령과의 협의 후 대면으로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해 온 관례를 깼다며 '서면 제청' 논란이 벌어졌다.
강 수석대변인은 "그동안의 협의 관행은 임명권자와 제청권자 어느 한쪽의 의사만으로 최고법원이 구성되는 일을 막고 그 과정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해 온 절차적 장치였다"며 "사법부가 그 관행을 저버린 것은 지금껏 사법부 독립을 지탱해 온 근거를 스스로 약화시키는 일이라는 점에서 매우 안타깝다"고 했다.
다만 청와대는 이흥구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제청된 김성수 후보자에 대해선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낸다는 방침이다.
2012년 양승태 대법원장 때 후보자 사퇴하자 재구성 선례도
1987년 현행 헌법 체제에서 청와대가 대법원장의 제청을 반려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향후 절차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현행 법원조직법 제41조의2 제2항은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대법관 후보 추천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대통령의 반려 후 다시 후보자 추천이 이뤄질 상황 등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은 없어 청와대와 여당 등은 기존에 추천위에서 추린 인사들 내에서 다시 제청해도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도 이날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 내용을 존중해달라"며 기존 추천위의 추천 후보 중에서 재제청해야 하는 것이 맞는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앞서 후보추천위는 지난 1월 손 부장판사 외에도 노 전 대법관 후임 후보로 김민기·박순영 서울고법 고법판사,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조 대법원장에게 추천한 바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추천위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법상 추천위는 후보자들을 추천하고 나면 해산되게 돼 있다. 추천할 때마다 추천위를 구성하게 돼 있으니 법 개정을 하지 않는 이상 다시 추천위를 구성하는 게 안전하다고 본다"고 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도 "2012년 양승태 대법원장 때 대법관 후보자가 사퇴한 이후 추천위를 다시 거친 선례가 있다"며 "'제청할 때마다' 재구성해야 한다고 법에 적힌 건 굉장히 구체적으로 절차를 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靑 '이승만 선례' 참고에 "하필이면" 지적도
조 대법원장이 새롭게 추천위를 구성할지, 기존 추천위 후보자 중 재제청할지는 미지수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에 대해 관련 절차 등에 대해 검토에 착수한 상태다.
만일 조 대법원장이 추천위를 다시 구성하는 절차를 택할 경우 정부여당과의 갈등이 심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편 청와대는 이번 임명 반려 및 재제청 요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 때 대법원장 임명을 거부한 전례를 비롯해 법률 검토 등을 거쳤다는 입장이다. 1957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법원조직법에 따라 법관회의가 제청한 대법관 임명을 거부한 바 있다.
법조계에선 해당 사례를 참고한 것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법조계 지적도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인 정지웅 변호사는 최근 SNS에서 "그 선례가 하필이면 이승만 정부의 사법부 장악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역사의 반면교사가 어느 순간 선례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썼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법관회의 추천 대법관 임명 거부 이후 특정인을 지목해 재제청을 요구했고 법조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