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보수의 시대를 열어갈 책무가 우리 국민의힘에 주어져 있습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26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혁신과 미래'를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불과 하루 뒤 국민의힘이 선택한 행보는 정반대였다. 과거의 상징인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잇달아 정치 전면에 소환한 것이다.
이를 두고 당안팎에서는 겉으로는 야당과 차별화된 통합 행보라고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장동혁 지도부를 견제하고 한동훈계와 거리를 둔 중진들의 구심점을 마련하려는 보이지 않은 손이 작동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민주당 '신·구 대통령간 갈등' 틈탄 보수 대통령들과의 통합 과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7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 참석해 약 20분간 강연했다. 비당권파인 유영하 의원이 놓은 다리를 건너 정점식 원내대표가 대구 달성군 사저를 찾아 직접 요청한 결과다. 보수 정당 연찬회에 전직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어 정 원내대표는 오는 31일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예방하며 '전직 대통령 끌어안기' 행보를 이어간다.정 원내대표가 내세운 표면적 명분은 '화합'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전당대회 과정에서 친명(친이재명)과 문재인 대통령을 필두로 한 친청(친정청래) 세력간 극한 갈등을 노출한 상황과 대비되도록 국민의힘은 전직 대통들을 예우하는 '품격 있는 원팀' 이미지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야당이 전직 대통령을 지우며 분열할 때, 여당은 전직 지도자들을 예우하며 전통적 지지 기반을 결속하는 안정감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동혁 독주 견제'와 '비한(非韓) 결집'의 촉매제
전직 대통령을 활용한 마케팅이 주목받는 또 다른 측면은 국민의힘 내부의 '견제와 균형'에 있다. 장동혁 대표는 취임 1년을 거치며 당권 장악력을 높여가고 있다. 이런 국면에서 비당권파이면서 무소속 한동훈 의원과도 거리를 두는 중진들에게는 새로운 결집 공간이 필요하다. 이들이 주목한 대상이 바로 전직 대통령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일 울산에서 김기현·박대출·이철규·유상범·유영하 의원 등 영남·강원권 핵심 중진들과 만찬 회동을 가졌다.
한 중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의 현실 정치 복귀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며 "장동혁 지도부의 독주를 견제하면서도 한동훈계로 흡수되지 않으려는 중진들이 결집할 수 있는 '상징적 공간'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전직 대통령들의 소환은 장동혁 대표 체제에 대한 견제와 한동훈계와의 거리 두기를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장치라는 것이다.
다만 이 같은 해석이 무리라는 반론도 있다. 장 대표가 단식 농성을 할 때 박 전 대통령이 격려 방문을 했던 만큼 둘 사이가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도 강연에서 '지도부 중심으로 똘똘 뭉쳐라'고 하지 않았나"며 "권력 다툼으로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혁신 실종' 비판…외연 확장 가로막는 '과거 회귀' 딜레마도
논란의 핵심은 이것이 당내 권력 다툼 여부를 떠나 그 결과가 국민의힘의 미래 전략과 충돌한다는 데 있다. '새로운 보수'를 선언했던 국민의힘이 전직 대통령들을 재소환한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다. 당의 화합과 새로운 구심점이 될 인물이 두 전직 대통령뿐이냐는 것이다.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연찬회 강연 내용은 형식적인 인사로 봤다"며 "오히려 한동훈·이준석·유승민 등을 포함한 '보수 통합' 메시지를 냈다면 움직임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사법 리스크와 탄핵의 강을 건넜다던 보수가 다시 과거 실패한 정권의 유산에 기댄다면 중도층 확장은 어렵다"며 "미래 비전이 실종된 자리에 과거의 인물만 채워 넣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