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물건을 찍어내던 3D 프린터가 이제 고무처럼 부드럽고 잘 늘어나는 제품까지 만들 수 있게 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기계공학과 이승철 교수 연구팀이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극한물성소재연구센터 나종범 박사 연구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생산시스템 및 설계공학전공 박범수 교수와 공동으로 AI를 활용해 3D 프린팅이 가능하면서도 고무처럼 크게 늘어나는 소재를 개발했다고 1일 밝혔다.
연구팀이 활용한 DLP(Digital Light Processing)는 액체 소재에 빛을 비춰 원하는 모양으로 굳히는 3D 프린팅 기술이다. 복잡한 구조를 빠르게 만들 수 있지만, 소재를 잘 늘어나고 튼튼하게 만들수록 액체가 잘 흐르지 않을 정도로 점도가 높아져 출력하기 어려워진다. 반대로 잘 출력되도록 묽게 만들면 신축성과 강도가 떨어진다.
연구팀은 AI를 활용해 이 두 조건을 만족하는 최적의 '소재 레시피'를 찾았다. 특히 프린터에서 잘 출력되는 소재뿐 아니라 점도가 높아 출력하기 어려운 소재까지 학습 데이터에 포함했다.
연구팀은 다양한 배합의 액체 소재를 작은 틀에 넣어 굳힌 뒤 얼마나 잘 늘어나는지, 얼마나 단단한지, 빛을 받으면 얼마나 빨리 굳는지, 얼마나 잘 흐르는지 등을 측정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소재의 배합과 각각의 성능을 연결한 데이터를 구축했다.
이어 머신러닝(데이터를 학습해 규칙과 관계를 찾아내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소재의 배합과 성능 사이의 관계를 학습시켰다. AI는 이를 바탕으로 3D 프린팅이 가능하면서도 잘 늘어나는 최적의 소재 조합을 찾아냈다.
AI가 찾아낸 소재는 실제 DLP 3D 프린터에서도 안정적으로 출력됐으며, 잡아당겨도 쉽게 끊어지지 않고 원래 길이의 6배 이상 늘어나는 높은 신축성을 보였다.
연구팀은 실제 활용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이 소재로 '소프트 액추에이터'를 3D 프린팅했다. 소프트 액추에이터는 공기압 등을 이용해 사람의 근육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장치다. 공기를 넣자 풍선처럼 부풀면서 사람의 손가락처럼 자연스럽게 휘어졌다.
여러 개의 액추에이터를 결합해 만든 소프트 로봇 손은 1kg짜리 물병을 들어 올렸으며, 깨지기 쉬운 달걀부터 유리병, 달걀판, 컴퓨터 마우스까지 모양과 단단한 정도가 다른 물체를 안정적으로 잡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AI가 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망한 소재 조합을 먼저 찾아내고 연구자가 이를 실험으로 검증하는 방식으로 시행착오와 소재 개발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승철 교수는 "앞으로 소프트 로봇과 웨어러블 기기, 맞춤형 의료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요한 성능을 갖춘 3D 프린팅 소재를 보다 빠르게 개발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