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부위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난치성 유전 질환 '헌팅턴병'의 증상이 악화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콩 유래 천연 식물성 성분을 활용해 질환의 진행을 억제·개선하는 새로운 치료법 개발 가능성이 제시됐다.
1일 UST에 따르면 헌팅턴병은 '헌팅틴(HTT)' 유전자에 이상이 생겨 발병하는 유전성 뇌질환이다.
유전자 내에 특정 DNA 서열이 비정상적으로 반복되면 변형된 헌팅틴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이 변형된 헌팅틴 단백질이 신경세포에 쌓이면서 운동 조절을 담당하는 뇌 부위 신경세포가 서서히 손상돼 의지와 무관하게 몸이 움직이는 증상이 나타난다. 환자가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동작을 보여 '무도병'이라고도 불린다.
헌팅턴병 발병 돌연변이 유전자는 1993년에 밝혀졌고, 그동안의 헌팅턴병 연구는 주로 병든 신경세포 내부에 초점을 맞춰왔다.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스쿨 바이오-메디컬 융합 전공 류훈 교수(KIST 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와 프엉 티 탄 응우옌(Phuong Thi Thanh Nguyen) 박사과정생으로 구성된 연구진은 신경세포를 보조하고 주변 환경을 관리하는 '성상교세포'의 변질에 주목했다.
연구진은 환자 및 마우스 모델 분석을 통해, 변질된 성상교세포 내에서 신호물질인 'WNT5B'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관찰했다. 이 물질이 과도해지면 세포 안에서 유전자를 조절하는 단백질인 'NFATc2'가 활성화되고, 이로 인해 단백질 분해 효소인 'MMP14'가 지나치게 생성되어 신경세포 주변의 세포외기질을 파괴하는 새로운 병리 연결 고리를 찾아냈다.
또 WNT5B와 NFATc2, MMP14를 각각 감소시키는 실험을 진행했으며, 그 결과 세 물질 중 어느 하나만 줄여도 손상됐던 세포외기질이 보호되고 신경세포의 상태가 현저히 개선됨을 입증했다.
연구진은 또 이 병리 신호를 약물로 조절할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이를 위해 콩에 풍부하며 혈액-뇌장벽(BBB) 투과율이 높고 항염증 효과가 검증된 식물성 천연 물질인 '제니스테인(Genistein)'을 헌팅턴병 마우스에 투여한 결과 유전자 조절 단백질(NFATc2)의 활동이 억제되면서 단백질 분해 효소(MMP14)의 생성이 감소했고, 세포외기질의 분해와 신경세포 손상이 감소했다.
제니스테인을 투여받은 헌팅턴병 마우스는 몸의 균형 유지 및 걸음걸이 등 운동기능이 뚜렷하게 향상됐으며, 중앙 생존기간이 105일에서 125일로 약 19% 연장되는 뛰어난 치료 효과를 확인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유전자 이상으로 발병한 헌팅턴병이 추가적인 신경세포 손상으로 이어지는 악화 경로를 차단하고 호전시키는 새로운 치료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헌팅턴병뿐만 아니라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과 같은 다른 퇴행성 뇌질환 역시 신경세포와 성상교세포, 세포외기질 등 주변 환경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함을 밝혀, '신경세포 및 주변 환경 동시 보호'라는 새로운 치료 전략의 토대를 마련했다.
연구를 총괄한 류훈 교수는 "향후 헌팅턴병을 비롯한 다양한 퇴행성 뇌질환의 치료 후보물질 개발 및 임상 연구 확대에 중요한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무엇보다 베트남에서 유학 온 프엉 티 탄 응우옌 학생이 UST 박사과정을 통해 세계 수준의 모범적이고 우수한 뇌과학자로 성장한 모습이 뜻깊고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생화학 및 분자생물학 분야 JCR 상위 0.2%에 달하는 초수월성 학술지 '시그널 트랜스덕션 앤 타겟티드 테라피(Signal Transduction and Targeted Therapy)'에 게재되며 학술적·의학적 우수성을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