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에서 가장 위험한 단어는 '남들도 다 그렇게 해'일 것입니다. 네 살배기 어린아이만 돼도 이 말은 어떤 행동에 대한 변명으로 삼기에 형편없는 핑계로 여겨집니다."
살아있는 투자의 전설 워런 버핏이 2010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서한을 통해 한 말입니다. 버핏의 일침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누군가 그 말을 명분으로 내세운다면, 사실상 그는 '내세울 만한 타당한 이유가 없다'고 자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누군가 그런 변명을 늘어놓는다면, 언론사 기자나 법정 판사 앞에서도 그 말이 통하는지 한번 해보라고 하십시오."
그가 이런 말을 한 배경은 '관행이 때로는 파멸로 이끈다'는 경고를 위해서였습니다.
남들도 다 레버리지 투자 하니까, 남들도 다 빚투(빚내서 투자) 한다는 핑계로 위험한 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고요. 월가와 기업 이사회를 향해 '업계 관행'을 이유로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에 있는 일을 하지 말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관행은 '오래전부터 해 오는 대로 함 또는 관례에 따라서 함'이라는 뜻입니다.
최근 사법부를 뒤흔들고 있는 대법관 재제청 논란 역시 이 '관행'이라는 단어에서 촉발했습니다.
청와대는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재제청을 요구했습니다. 그 명분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사전 협의라는 '관행'을 깨고 일방적으로 후보자를 서면 제청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 4명에게 전화해 추천 절차를 다시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도 '공정성에 대한 신뢰 훼손'이라고 밝혔습니다. (참고기사 : 靑,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87년 헌법체제 첫 사례)
특히 청와대는 "대법관후보추천위의 추천 결과를 존중해 재제청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즉 △김민기 △박순영 △윤성식 후보 중 한 명을 제청해 달라는 셈인데요. 법조계 안팎에선 청와대가 김민기 후보를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초 조 대법원장은 이해충돌 발생 우려로 김민기 후보를 제청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김 후보의 남편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명한 첫 헌법재판관인 오영준 재판관입니다. 따라서 김 후보가 대법관이 되면, 헌법소원 제도에 따라 김 후보 판결의 위헌성을 오 재판관이 심판하는 '이해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죠.
어쨌든 공은 다시 조 대법원장에게 넘어왔습니다.
논란은 여기에서도 발생합니다. 조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요구대로 기존 후보 중 한 명을 다시 제청해야 하는지 아니면 새로 대법관후보추천위를 꾸리고 후보를 다시 추천받아야 하는지입니다.
법조계는 대법관후보추천위를 다시 꾸리고 새로운 후보를 추천받아야 한다는 해석에 무게를 싣습니다. 법원조직법을 보면, 추천위는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구성한다고 돼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기사 : 靑 대법관 재제청 요구에…'추천위 재구성' 여부 뇌관으로)
전례 없는 일이라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해야 합니다. 다행히 참고할 만한 '나침반'은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5년(2005헌마33)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원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대법관 임명제청은 대법원장의 전속적 권한에 속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여기서 전속적 권한은 '대법원장 고유의 권한' 즉, 대법원장만 할 수 있는 권한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에 대해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제청은 대법원장만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국회의 동의와 대통령의 임명권과는 별개이고, 대통령의 임명권이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고 해석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헌재는 또 1998년(98헌라2) △대법관 △헌법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 등 헌법기관 인사에 국회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이유에 대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관여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대통령의 독선과 독주를 견제해 권력의 균형을 꾀하고자 하는데 그 근본적 의의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강조한 판례인데요.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대한 문제를 헌재가 심리하게 된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상해 볼 수 있는 단서로 보입니다.
다만 조 대법원장이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 후보자를 7개월 만에 제청한 것은 논쟁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입니다. '전속적 권한'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에 소요하는 시간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판사 출신인 변호사는 "전속적 권한을 무제한적 재량으로 이해한다면 확대 해석이다. 제청을 1년 뒤, 10년 뒤에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청와대와 의견 조율이 안 된 탓인지, 아니면 허송세월을 보낸 것인지에 따라 7개월이라는 소요 시간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7개월의 공백에 대해 고발장을 접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조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결국 관행, 즉 '남들도 다 그렇게 해왔다'는 비즈니스계의 가장 위험한 변명이 대한민국 헌정사에 청와대와 대법원의 권력 충돌이라는 전례를 남기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