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곳 또 지방으로…'나눠먹기·유령도시' 되풀이 안 하려면

정부 '수도권 잔류 최소화' 원칙…내년부터 2차 공공기관 이전
1차 이전 '지역 나눠먹기·정주여건 부족' 한계 되풀이 우려
이번엔 혁신도시 중심 집적 배치…지역 성장거점 육성 구상
노조 반발·지자체 이해관계에 법 개정까지 넘어야 할 산

한성숙 국무총리가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법무부-성평등가족부 등 행정·공공기관 이전 및 공공기관 기능 개혁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법무부·성평등가족부를 비롯한 중앙부처와 수도권 공공기관 350여 곳을 내년부터 지방으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공공기관 109곳을 통폐합·재편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기능개혁도 동시에 추진한다. 수도권에 남을 기관을 최소화하고 공공기관의 기능과 배치까지 한꺼번에 다시 짜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전 대상과 지역조차 아직 확정되지 않은 데다 공공기관 통폐합에 대한 노동계 반발도 거세다. 상당수 기관은 법 개정까지 필요해 연말까지 구체적인 이전 계획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수도권 잔류 최소화'…법 바꿔서라도 지방으로



정부는 지난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행정·공공기관 이전 및 공공기관 기능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내세운 대원칙은 '수도권 잔류 최소화'다. 반드시 수도권에 있어야 하는 기관이 아니라면 지방 이전을 원칙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미 상당수 중앙부처가 세종 등으로 이전한 만큼 이제는 '왜 지방으로 가야 하는가'보다 '왜 수도권에 남아야 하는가'를 따져 이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현행 행복도시법상 이전 제외기관으로 규정된 법무부와 성평등부는 연내 법 개정을 추진해 내년 상반기부터 순차적으로 이전한다.

성평등부는 업무 특성상 지방자치단체·지방교육청을 비롯해 교육부·보건복지부 등 사회부처와 협력할 일이 많은 반면 서울에 남아야 할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이전 대상으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

법무부 역시 검찰·법원 등과의 업무 연계 때문에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형사사법체계 개편으로 검찰 기능이 분산되면서 이전 여건이 달라졌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경찰청 등도 청사 신축 이후 이전을 추진한다.

외교공관 및 군과 긴밀하게 소통해야 하는 외교부와 통일부도 장기적으로 이전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정부는 대통령 세종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이 들어서는 2030년 전후 여건 변화를 고려해 이전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아울러 수도권 공공기관 350여 곳에 대해서는 올해 4분기 중 구체적인 이전 계획을 발표하고 내년부터 이전에 착수한다. 한성숙 국무총리는 "'나눠먹기식' 배분을 지양하고, 지역 성장의 에너지를 모닥불처럼 모아서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집적 배치해 지역 거점의 힘을 극대화하겠다"고 설명했다.

350곳 어디로 보내나…지역 안배·정주 여건부터 난제

문제는 정작 어떤 기관을 어디로 옮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날 가장 관심을 모았던 금융위원회와 금융 관련 공공기관, 국책은행 등의 이전 여부도 공개되지 않았다.

발표 시점도 계속 늦어지고 있다. 정부는 당초 8~9월 구체적인 이전 계획을 내놓겠다고 예고했지만 10월로 미룬 데 이어 이번에는 다시 4분기로 늦췄다.

실제 발표는 연말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크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올해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하고, 지방정부·노조와의 소통이 굉장히 필요하고, 준비하는 과정 중간에 국정감사가 있는데 국감 기간에는 사실상 논의가 활발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

3일 정부가 발표한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법무부와 성평등부 등 중앙부처와 수도권 공공기관들이 세종특별자치시로 옮겨간다. 연합뉴스

350여 개 공공기관을 어디에 배치할지도 난제다. 1차 공공기관 이전은 기관 간 시너지를 고려한 집적보다 '지역별 나눠먹기'에 치우쳐 지역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었고 업무 효율성도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전만으로 지역 정착까지 담보할 수도 없다. 1차 이전 당시 기관 노동자의 약 70%가 지방에 정착했지만 주말이면 수도권으로 돌아가는 생활패턴이 이어지면서 일부 혁신도시가 공동화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2차 이전이 같은 문제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일자리뿐 아니라 교통과 교육, 의료, 문화 등 정주 여건을 함께 개선해야 한다.

반대로 기관을 기능별로 집적하려는 정부 구상과 지역 안배 요구가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의 유치 경쟁이 본격화하면 어느 지역에 어떤 기관을 배치할지를 둘러싼 갈등도 불가피하다.

옮기면서 109곳 통폐합까지…노동계 반발 '이중고'

문제는 이전만이 아니다. 정부는 지방 이전과 동시에 전체 공공기관의 약 20%에 해당하는 109곳을 통폐합·재편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기능개혁에도 착수한다.

구조개혁 15곳, 유사·중복 기능 일원화 11곳, 소규모 기관 통합 83곳 등이다.

발전 5사는 '한국발전'(가칭)으로,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 등 4개 항만공사는 '한국항만공사'(가칭)로 각각 통합한다. 코레일과 SR도 합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택지개발·주택건설과 주거복지·자산비축 기능을 각각 다른 공사로 분리한다. 대한석탄공사는 청산을 추진한다.

기능이 겹치는 기관과 자회사, 정원 100명 미만의 소규모 기관도 대거 통합·정비한다. 공공기관 노동자 입장에서는 '어디로 옮겨갈지'뿐 아니라 '소속 기관이 어떻게 바뀔지'까지 동시에 불확실해진 셈이다.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다.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는 "대국민 서비스를 후퇴시킬 우려가 큰 통폐합·기능조정 방안이 다수 포함됐다"며 "소수 관료와 전문가 주도하에 철저한 비공개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비판했다.

특히 전체 감축 대상의 76.1%가 자회사와 소규모 기관이라는 점을 들어 "20%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힘이 약한 자회사와 소규모 기관을 무분별하게 포함시킨 것 아닌지 묻고 싶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고용승계와 처우 보장을 약속했다. 정부는 통폐합 과정에서 직원들의 고용을 승계하고 기존보다 보수 등 처우가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한편 복리후생 강화와 경영평가 인센티브 등 지원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이미 확정된 계획의 이행 방식만 논의해서는 실질적인 노정협의가 될 수 없다며 총고용 보장과 노동조건 상향평준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법도 바꿔야 하는데 연말까지 결론…'속도전' 가능할까

정부가 2027년 상반기부터 법무부와 성평등부 등 수도권 소재 중앙행정기관의 세종 이전을 순차적으로 추진한다고 3일 밝혔다. 연합뉴스

넘어야 할 가장 높은 문턱은 법 개정과 이해관계자 설득이다. 법무부·성평등부를 옮기려면 행복도시법을 고쳐야 한다. 본사 소재지를 법률로 정한 공공기관 역시 이전을 위해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

공공기관 기능개혁도 마찬가지다. 발전사와 항만공사, 석유·가스공사, LH, 코레일 통합 등 주요 구조개혁에는 법 개정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는 법 개정이 필요하지 않은 기관부터 통폐합 절차에 착수하고, 중앙부처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내년부터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반발은 이미 본격화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정부 발표 당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충분한 노정협의 없이 지방 이전을 강행한다며 '밀실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1차 이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부터 공개하고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융노조도 지방 이전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며 4일 총파업을 시작으로 투쟁 수위를 높일 방침이다. 금융기관의 경우 전문인력 이탈이 현실화하면 신규 인력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도 비슷한 갈등이 불거졌다. 금융감독원 노조 등의 반발 속에 금융정책 기능을 재정경제부로 옮기려던 구상이 무산된 바 있다.

정부는 정주 여건 개선과 주거지원 등 각종 지원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공공기관 이전 직원 특별공급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김 장관은 "1차 이전 시기 특공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있었다"며 "특공 여부에 대해서는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고 의견 수렴이 필요해 오늘 발표에는 빠졌고, 논의를 거쳐 최종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민간기업을 유치하고 지역 산업·대학과 연계해 이전 지역을 활성화한다는 구상 역시 현실화가 관건이다. 1차 이전으로 조성된 혁신도시에서도 기업과 대학 유치는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총리는 공공기관 개혁과 관련해 "국회의 관련 예산 심의와 처리, 그리고 신속한 관련 법령 개정이 필수적"이라며 국회의 협조를 요청했다.

정부는 국토부 주도로 관계부처 및 노정 협의, 지자체 의견수렴 등 본격적인 공론화 절차에 착수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전 대상과 지역, 시기를 밝히기까지 길어야 석 달가량 남았다. 노동계의 반발과 지자체 간 이해관계, 법 개정이라는 산적한 과제를 풀고 연말까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이전안을 내놓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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