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의 아이콘 글로리아 스타이넘 별세…향년 92세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 연합뉴스

미국 여성운동의 아이콘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2세.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스타이넘 재단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가 뉴욕 자택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스타이넘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 페미니즘 운동을 이끈 저널리스트이자 상징적 인물이다.

그는 1934년 미국 오하이오주 털리도에서 태어나 동부 명문 스미스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잡지 기자로 일하던 1963년 플레이보이 클럽에 '바니걸'로 잠입해 내부 노동 착취 실상을 폭로한 기사로 이름을 알렸다. 다만 스타이넘은 훗날 이 기사를 후회했다. 당시 사회는 젊은 백인 여성 기자가 성인 클럽에 잠입했다는 사실에만 주목했고, 그는 한동안 조롱과 성적 대상화에 시달렸다. 이후 낙태 금지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취재하면서 자신 역시 여성 문제에 무지했음을 깨달았다.

6년 뒤인 1969년 '흑인 민권운동 이후의 여성 해방'이라는 기사로 여성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3년 뒤에는 진보 성향의 여성주의 잡지 '미즈'(Ms)를 공동 창간했다. 미즈는 여성을 결혼 여부에 따라 '미시즈'(Mrs)·'미스'(Miss)로 구분하지 말고 '미즈'로 통일해 부르자는 주장을 널리 퍼뜨리며 큰 호응을 얻었다.

스타이넘은 참정권 쟁취에 주력한 1세대 페미니스트에 이어, 사회 구조적 문제로 관심을 넓힌 2세대 페미니즘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그는 성차별 금지를 명문화하려는 헌법수정조항(ERA) 입법을 비롯해 여성의 의회 진출, 흑인 시민권 보장, 베트남전 종식 등 다양한 사안에 목소리를 내며 1960~70년대 사회운동을 이끌었다.

한국과의 인연도 있다. 2002년 처음 방한했고, 2015년에는 비무장지대(DMZ)를 걸어서 넘는 '위민크로스DMZ' 행사의 명예위원장을 맡아 남북 군사분계선을 밟았다.

AP통신은 그가 평생을 길 위에서 보내며 집회와 행진에 앞장섰다고 전했다. 스타이넘은 2015년 이 통신 인터뷰에서 "한 공간에 함께 있지 않으면 진정한 공감은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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