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 등 전국 4대 항만공사 통합 방침에 대한 부산지역 반발이 정치권으로 확산하고 있다. 시민사회와 4개 항만공사 노동조합이 잇따라 통합 철회를 요구한 데 이어 부산시의회도 여야 의원 전원이 뜻을 모아 '강제 통합'에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시의회는 항만마다 화물과 배후산업, 발전 전략이 다른 상황에서 정책과 투자 결정권을 하나의 조직에 집중하면 부산항의 자율성과 경쟁력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부산시의회 상임위 '통합 철회' 결의안 채택
4일 부산시의회에 따르면 시의회 해양도시안전위원회는 제339회 임시회 제1차 회의에서 송상조 부의장(국민의힘·서구1)이 대표 발의한 '전국 4대 항만공사 강제 통합 추진 철회 촉구 결의안'을 원안 채택했다.결의안에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부산시의원 48명 전원이 찬성했다. 시의회 차원에서 정부의 항만공사 통합 방침에 사실상 초당적인 반대 입장을 밝힌 셈이다.
정부는 지난 3일 공공기관 기능 개편 방안의 하나로 부산항만공사(BPA)와 인천항만공사(IPA), 울산항만공사(UPA), 여수광양항만공사(YGPA)를 가칭 '한국항만공사'로 합치는 방안을 내놨다. 하나의 법인 아래 기존 항만공사를 지역지사로 전환하고, 통합 본사는 정책·기획 기능을 맡는 방식이다.
시의회는 이런 구조가 항만공사법이 보장하는 항만별 전문성과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책·투자 통합 본사 집중하면 현장 대응 늦어져"
가장 큰 우려는 의사결정 구조다.정부 구상대로 통합 본사가 정책·기획 기능을 담당하고 지역 지사가 현장 업무를 맡게 되면 투자와 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권한이 통합 본사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시의회는 이 경우 지역 항만의 독립적인 의사결정 권한이 약화하고 선사나 화주, 물류기업 등 현장의 요구를 제때 반영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하나의 기관이 전국 항만의 투자와 재원을 조정하게 되면 지역 간 투자 우선순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부산항에 필요한 투자가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앞서 4개 항만공사 노동조합도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현재 각 항만공사가 현장에서 항로 유치와 인센티브, 배후단지 정책 등을 결정하고 있지만 통합 이후 중앙 조직의 승인 절차가 추가되면 오히려 의사결정 속도가 늦어지는 '옥상옥'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부산은 환적·울산은 에너지"…획일적 통합에 반발
시의회는 4개 항만의 성격 자체가 크게 다르다는 점도 강조했다.부산항은 컨테이너와 환적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허브항만이고 울산항은 에너지·액체화물, 여수광양항은 철강·석유화학 산업에 특화돼 있다. 인천항은 수도권 물류와 대중국 교역의 관문 역할을 한다.
화물 구성부터 배후산업, 고객과 투자 수요까지 다른 항만들을 '공공기관 효율화'나 '규모의 경제'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묶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게 시의회 판단이다.
전날 부산지역 시민사회와 4개 항만공사 노조도 같은 논리로 정부 방침에 반발했다.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은 항만별 기능과 발전 전략이 다른 상황에서 중앙집중형 조직으로 통합할 경우 전문성과 자율성, 신속한 의사결정 능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4개 항만공사 노조 역시 항만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과 항만공사를 하나의 법인으로 합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정부에 통합에 따른 구체적인 비용 절감 효과와 해외 성공 사례 등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노조는 공통업무의 경우 법인을 합치지 않더라도 공동 구매나 시스템 연계, 공동 사업 등을 통해 효율화할 수 있다며 조직·인사·정보시스템 통합 등에 들어가는 전환 비용까지 포함한 비용·편익 분석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본회의 채택 뒤 정부 전달…지역 반발 전방위 확산
이번 결의안에는 정부에 △4대 항만공사 강제 통합 계획 즉각 철회 △항만별 설립 원칙과 자율·책임경영 존중 △통합 추진에 대한 충분한 법률적 검토와 사회적 합의 △물리적 통합 대신 항만공사 간 협력체계 강화와 공동사업 확대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결의안이 향후 본회의에서도 채택되면 시의회는 정부에 결의문을 전달하고 통합 추진 철회를 공식 요구할 계획이다.
송상조 부의장은 "항만은 단순한 공공기관 효율화의 대상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 국가 경제와 공급망, 에너지 안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며 "항만별 전문성과 자율성을 약화시키는 통합이 아니라 각 항만의 경쟁력을 살리면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대한민국 항만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야 의원 48명 전원이 함께 뜻을 모은 것은 부산항의 미래를 위해서는 정파를 넘어 힘을 모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발표 직후 시민사회에서 시작된 반발이 항만공사 노동조합에 이어 부산시의회까지 번지면서 향후 통합에 필요한 항만공사법 개정 등 국회 입법 과정에서도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