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잖은 일이 벼락같이 이뤄졌다. 엠넷 '슈퍼스타K'에 '투개월'로 나오고 나서 김예림(림킴 본명)이라는 이름과 존재는 예상보다 빠르게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그냥 고등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너무 화려한" 자리로 가게 된 기분이었다. 꿈꾸던 세계에 진입하게 됐고, 좋은 점도 있었지만 내가 여기에 잘 들어맞는 것인지 의문도 생겼다.
데뷔했을 때는 '보컬리스트'로서 정체성이 더 컸던 것 같다는 림킴은 자기 음악을 직접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고민의 형태도 달라졌다. "표현할" 만한 것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의도"가 필요했다. 한 사람의 음악가이자 창작자로서 무엇을 노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끝에, 지난 10년의 이야기를 일기처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일기가 음악이 되었고, 한 장의 앨범으로 엮었다. '앨범' 단위로는 7년, '정규앨범' 단위로는 13년 만의 신작 '엑시트 투 노웨어'(Exit to Nowhere)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CBS노컷뉴스는 싱어송라이터 림킴을 만나, '엑시트 투 노웨어'의 제작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8월의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사옥에서 이뤄졌다.
최근에는 주로 싱글을 냈기에, '앨범을 내고 싶다'라는 마음은 이전부터 갖고 있었다는 림킴은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내야 할 지가 계속 고민이었다. 최근 2~3년 전부터 조금씩 갈피를 잡기 시작했고 작년부터 (작업에)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소속사 유니버설뮤직 코리아는 림킴이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를 한 편의 음악적 회고록으로 풀어냈다고 이번 앨범을 소개한 바 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그런 의도가 없으면 만드는 의미가 조금 없어진다고 해야 하나? 각자 다르겠지만 저는 조금 그런 것 같다"라고 운을 뗀 그는 10년 간을 돌아보는 일기를 쓰면서 "되게 후련해지는 감정"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이어 "제 안에 있던 거를 밖으로 쏟아낸 느낌이 들었는데, 이걸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맥락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걸 바로 프로듀서들과 얘기했다"라고 전했다. 쓴 일기가 7편이어서, 7곡을 수록했다. 일기가 몇 편 더 있었지만 "가장 쓸 만한, 조금 명확한 이야기"들만 추려냈다. 그 "이야기의 흐름"을 바탕으로 트랙 리스트를 짰다. 한 곡 한 곡 본인이 지나온 장면에 관한 감정이 스며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사실 가장 먼저 정한 것은 장르였다. 림킴은 "신스(신시사이저) 기반 사운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제일 먼저 했었고, 그게 제 보컬과도 잘 어울릴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가 타고난 부분을 어떻게 잘 활용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녹여낼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에 그 장르(신스)를 생각했다. 그 후부터 프로듀서를 찾아서 앨범 주제와 이야기를 정리했다"라고 설명했다.
신스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담아내려고 했다고 해 이 장르가 본인과 잘 맞는다고 느꼈는지 묻자, 림킴은 "사운드와 제 보컬의 결이 어울리는 부분이 확실히 있는 거 같다. 사운드를 잡을 때도 굉장히 에어리(airy)하다고 해야 하나, 약간 구름 같이 신스 사운드와 제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돌아봤다.
앨범은 지난 7월 22일 발매됐다. 그에 앞서 7월 9일 브리 런웨이(Bree Runway)가 피처링한 '인사하세요'가 선공개됐다. 림킴은 "'안녕하세요'는 트랙이 가장 세기도 하지만 이 앨범을 처음 진입하는 그런 통로로서 좀 재밌는, 위트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앨범에서 얘기하는 키워드 중에 좀 모순적인 부분이나 대비감을 가장 강하게 담고 있는 곡이라서 첫 이야기로 꺼내면 좋겠다 싶더라"라고 밝혔다.
'인사하세요'는 전혀 안녕하지 않은 채로 매일 '각 잡고' 참신한 빈말을 해야 했던 '사회적 인사의 모순'을 풀어낸 곡이다.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지만 이를 경쾌한 하우스 리듬과 묵직한 베이스라인 위에 얹었다. 힙합·팝·댄스·알앤비(R&B) 등을 자유자재로 소화하는 영국 런던 기반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브리 런웨이가 피처링했다.
원래부터 브리 런웨이를 알고 음악도 종종 들었다는 림킴은 "런던에서 댄스 음악과 랩을 하는, 뭐랄까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분이라고 해야 할까, 이 장르적으로. 이분이 하면 잘 어울리겠다고 해서 연락드렸는데 '재미있을 것 같다'라고 했다. 온라인으로 처음 만나서 얘기하고 곡에 관해 설명하고 어떤 거면 좋겠다고 했더니, 바로 잘 알아듣고 해 주셨다"라고 전했다.
수록곡 중 가장 녹음이 어려웠던 곡은 '인사하세요'였다. "제일 어려웠던 곡인 것 같다"라며 웃은 림킴은 "멜로디나 일단 장르적으로도 제가 많이 안 했던 느낌이어서, 그걸 어떻게 잘 살려야 할지… (노래에) 한국어 가사가 붙으면서 하우스 특유의 느낌이 달라지다 보니까 어떻게 잘 살릴지 싶어서 키(노래의 조)도 바꿔보고 앉아서도 불러보고 서서도 불러보고 여러 시도를 했다"라고 말했다. 최종 녹음본은 '서서 부른' 것으로 들어갔다고.
타이틀곡은 순서상 세 번째에 실린 '네버 고나 비 얼론'(Never Gonna Be Alone)이다. '엑시트 투 노웨어'의 공동 프로듀서 중 한 명인 드레스가 데모(임시 녹음곡)를 보내줬을 때부터, 림킴은 이 곡을 "굉장히 인상 깊게" 들었다. 이처럼 '네버 고나 비 얼론'은 "압도적"이었고, 수월하게 타이틀곡이 됐다.
마음을 파고든 요소는 많았다. "뭔가 예상치 못했던 사운드에, 굉장히 풍성하고 클래식한 느낌이 있으면서도 가사로는 좀 특이한 흐름이에요. 가사를 보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외국인들은 '어, 이게 무슨 말이지?' 이렇게 될 만큼. 그런 것들이 재밌다고 느꼈던 거 같고 그 조화가 이 앨범을 대표할 곡으로서 좀 적절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네버 고나 비 얼론'을 비롯해 '엑시트'(Exit) '인사하세요' '림보'(Limbo) '나우 히어'(Now Here)까지 총 5곡 작사에 참여한 림킴. 쓴 가사 중 제일 마음에 남는 가사를 골라달라고 하자, "작사에 (곡 수로는) 참여를 많이 했는데 메인으로 많이 쓰지는 않았다"라고 운을 뗀 그는 "좀 기억에 남는 건 '네버 고나 비 얼론'"이라고 답했다.
림킴은 "(가사가) '유 아 올웨이즈 비 얼론'(You're always gonna be alone)으로 끝난다. 그게 사실은 이 노래의 주제"라며 "뭔가 되게 따뜻한 곡처럼 느껴지지만 제일 외로운 이야기를 하는 노래라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소개했다.
더블 타이틀곡은 윤상이 피처링한 '스루 더 글로우'(Through the Glow)로, 마지막 곡으로 실렸다. 타인의 시선이나 규칙은 뒤로한 채, 자신만의 속도와 낭만을 찾아 떠나는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곡으로, 레트로한 모타운 소울과 가스펠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림킴은 "그 곡이 마지막 곡이기도 하고 뭔가 좀, 나이가 있으신, 인생을 이미 겪은 것 같은 선배님이 해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프로듀서분들이랑도 의논하다가 윤상님에게도 연락했는데 제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다. 낯을 많이 가리신다고 해서 녹음해서 보내주셨는데 너무 좋았고 맘에 들었다. (이번) 활동할 때 라디오 나가서 처음 뵙게 됐다"라고 말했다.
총 7곡 중 '21'과 '스루 더 글로우' 2곡은 작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에 림킴은 "특별한 건(이유는) 없고, 전체 이야기는 다 짜서 작사가분들한테 드려서 모든 것이 제 이야기이긴 하다. 가사의 맛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걸 더 잘 살린 작사분들 거를 많이 쓰기도 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이라고 전했다.
자기 감정을 가장 잘 꺼낸 곡으로는 '나우 히어'를, 애정하는 곡으로는 '21'을 각각 꼽았다. 우선 '나우 히어'는 "앨범을 딱 만들 당시에 가장 그 시기를 잘 담아낸 거 같다. '나우 히어'는 지금 여기라는 뜻이지 않나. 어떻게 보면 수많은 다양한 일들을 거치고 지금에 딱 도착한, 오롯이 나한테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이랑 되게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의 저를 잘 보여주는 곡"이라고 설명했다.
'21'를 두고는 "처음 데모 들었을 때부터 되게 귀에 맴돌았었고, 뭐랄까 레트로한 바이브가 있는 거 같으면서도 지금 들어도 좋은 트랙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좀 그림이 그려진다고 해야 하나? 계속 찾아 듣게 되는 곡이어서 애착이 간다"라고 말했다.
'엑싯'은 전에 낸 앨범과 이어져서 첫 곡으로 배치했다. 림킴은 "(전 앨범이) '엑싯'으로 끝났는데 또 다른 출구로 들어가서 이 이야기가 시작되는 구성으로 만들어서 전 앨범 잘 들었던 분께는 이 앨범이 통로같지 않을까. 모호한 통로 안에 있는 느낌으로, 공간감을 만들려고 했다. 트랙 자체에 공간감이 잡혀 있었고"라고 설명했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들은 '림보'는 "어떻게 보면 이 앨범의 실제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는 노래"다. 림킴은 "여행 갔을 땐데 이탈리아 햇빛이 굉장히 강하다. 발산하는 에너지의 노래가 너무 좋았고, 이 앨범이 좀 그려지기 시작한 신호처럼 느껴졌다"라고 되짚었다.
회사(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안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이번 앨범을 녹음했다. 림킴은 "원하는 마이크가 있어서 그거를 매번 빌려와서 썼다. (출력되는) 사운드가 일단 다르고,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니까 거기에 더 잘 맞는 마이크가 있더라"라며 "지난 앨범도 사실은 마이크를 (따로) 사서 작업실에서 (녹음)했다"라고 밝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