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이 미국 최초 '전기로 기반 자동차 강판 전문 제철소' 건설 프로젝트의 첫 삽을 떴다. 수조 원이 투입되는 이 제철소는 현대제철의 본격적인 글로벌 진출을 뒷받침하는 전략적 거점이자, 현대자동차그룹 미국 현지 공급망의 핵심기지로서 역할을 할 전망이다.
해당 프로젝트는 현대차그룹이 2028년까지 추진 중인 260억달러 규모 대미투자 사업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현지 기공식 환영사를 통해 "이곳에서 생산되는 철강은 현대차그룹은 물론, 미국의 자동차 기업들이 차세대 모빌리티를 생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美 최초 전기로 기반 자동차 강판 전문 제철소…연산 270만톤 규모
현대제철은 4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주 어센션 패리시 도널드슨빌에서 '현대·포스코 루이지애나 전기로 제철소'(HPLS) 기공식을 개최했다. 약 223만평의 광활한 부지에 미국 최초의 전기로 기반 자동차 강판 전문 제철소를 짓는 58억 달러(약 8조 원) 규모 프로젝트다.
연간 270만톤의 열연·냉연·도금 강판을 생산하는 해당 제철소는 2029년 양산을 목표로 올해 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건설이 시작될 예정이다. HPLS는 현대제철이 지분율 50%로 최대주주며, 포스코는 20%,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15%씩 지분 투자를 했다.
현대제철은 해당 제철소에 원료인 직접환원철(DRI)부터 최종 강판 제품까지 생산하는 일관 공정 시스템을 구축하고, 전기로를 활용해 탄소배출량을 고로 생산 대비 약 70% 감축할 계획이다. 이렇게 생산되는 탄소저감 철강재를 토대로 현대차·기아 뿐 아니라 미국 내 완성차 업계로까지 공급망을 넓힌다는 구상이다.
제철소 부지는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기아 조지아 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는 물론 GM 텍사스 공장, 폭스바겐 테네시 공장, 혼다 앨라배마 공장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공장과의 접근성도 우수하다.
美 '50% 철강 관세', 현지 생산으로 극복
특히 미국 정부가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50% 품목 관세를 부과 중인 가운데, 현대제철은 이 관세장벽을 현지 생산으로 넘을 수 있다. 고관세 부담 영향 하에 지난해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량은 254만 톤으로 전년 대비 약 8%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철강업계에서는 현대제철이 HPLS 전기로 제철소 건설을 계기로 무역 장벽에 따른 통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한편 글로벌 판매 물량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제철이 미국을 투자처로 정한 건 통상 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이 기업은 미국 철강 시장의 견조한 수요도 주목했다. 지난해 8200만 톤의 조강 생산량을 기록한 미국은 세계에서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쇳물을 생산했음에도, 생산이 수요에 못 미쳐 매년 2천 만톤 이상의 철강을 수입하고 있다.
또 미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자동차 생산 국가이기도 하다. 지난해 미국의 자동차 생산 규모는 1024만 대로, 미국 정부의 자국 내 생산 우선 정책으로 그 규모는 향후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현대제철 설명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제철소 건설이 아니라 미래 철강산업과 수소 생태계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견조한 수요와 높은 내수 가격으로 HPLS 전기로 제철소의 지속가능한 수익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의선 "철강 산업이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가는 시작점"
정의선 회장도 기공식 현장에서 "HPLS 전기로 제철소는 철강 산업이 보다 자원순환적이고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가는 시작점"이라며 "AI 데이터센터에서 발전 분야에 이르기까지 핵심 산업 기반을 구축하고 더 안전한 일터를 조성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소중한 파트너인 포스코와 함께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한미 양국의 미래 세대를 위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HPLS에서 생산되는 철강이 현대차그룹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에 적용될 가능성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당연히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나아가 "앞으로 저희가 더 열심히 해서 스페이스X 등 로켓에도 철강을 공급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미국에서 생산하는 우리 차에 HPLS 철강을 사용하고 싶다"며 "가능한 한 많은 차종에 적용할 계획이다. 앨라배마와 조지아에 있는 미국 공장에서 사용하는 철강을 최대한 현지화하고 싶다"고 했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도 기자들과 만나 "전기로로 만든 강재가 자동차용 최고급 강재가 되려면 포스코의 수소 환원 제철 기술과 자동차 강판 기술이 필요하다"며 "현대제철과 협력하게 되면 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회사가 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번 행사에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강경화 주미대사,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 윌리엄 키밋 미 상무부 차관 등 한미 정부 관계자를 비롯해 총 250여명이 자리했다. 현대차그룹에서는 정 회장과 성 김·서강현 사장, 이보룡 현대제철 사장, 무뇨스 현대차 사장, 송호성 기아 사장이 참석했으며, 포스코그룹 장 회장도 함께했다.
김정관 장관은 축사를 통해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제철소 건설을 넘어서는 한미 산업 협력의 상징"이라며 "일방적인 투자가 아니라 상호 협력에 기반한 파트너십으로 루이지애나와 미국, 한국 모두의 이익이 되는 사업"이라고 밝혔다.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도 "현대제철의 투자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루이지애나 지역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올 것"이라고 환영했다. 현대제철에 따르면 이번 프로젝트에서 파생되는 고용창출 효과는 약 5400명에 달할 전망이다. HPLS는 루이지애나주 거점도시인 인구 83만 명의 주도 배턴루지, 인구 96만 명의 뉴올리언스 등과 1시간 내외의 거리로 인접해 제철소 운영에 필요한 인적 자원 확보에도 유리한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