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 싣는 순서 |
| ①[르포]상상하던 미래, 벌써 현실로…'IFA'로 베를린 들썩 ②[르포]삼성은 왜 유럽 최대 가전박람회 'IFA 전시장'을 떠났나 ③LG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미래의 집은 뭘까 (계속) |
퇴근길, 스마트폰에 "나 이제 집에 들어가"라고 메시지를 남긴다. 집은 귀가까지 걸리는 시간과 평소 선호하는 실내 온도를 파악한다. 잠시 뒤 "도착 시간에 맞춰 집을 시원하게 해드릴까요?"라는 답이 온다. "그래"라고 허락하면 에어컨과 공기청정기가 알아서 움직인다.
아이의 방학이 시작되면 집은 낮 동안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으니 냉방과 청소 시간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마트 할인 전단을 찍어 보내면 시간대와 가족의 취향을 고려해 저녁 메뉴도 추천한다.
아직 완성된 현실은 아니다. LG전자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26에서 보여준 '미래의 집'을 가정한 시나리오다. 핵심은 가전 하나하나가 똑똑해지는 것을 넘어 집 자체가 사람의 일상과 맥락을 이해하고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명령 기다리는 집에서 '먼저 제안하는' 집으로
그 중심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 실행형 AI 에이전트 '씽큐 클로(ThinQ Claw)'다.
기존 스마트홈이 사람이 "에어컨 켜줘", "청소 시작해줘"라고 명령하는 방식이었다면 LG가 그리는 다음 단계는 다르다. AI가 대화와 생활 패턴, 일정, 현재 상황을 종합해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판단하고 제안한다.
LG전자 AI홈솔루션사업개발담당 노범준 상무는 IFA 테크브리핑에서 "공간, 가전, 사람을 연결했을 때 AI가 어떻게 도움이 될지 고민했다"며 "억지로 AI를 쓰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도움이 될지를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I가 판단하는 대로 무조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해드릴까요?"라고 물은 뒤 사람이 허락해야 가전을 움직인다. 이후 "다음부터는 이런 건 묻지 말고 실행해줘"라고 하면 대화를 기억해 선호도를 반영한다.
노 상무는 "처음부터 완벽한 개인화는 있을 수 없다"며 데이터를 쌓아 개인화하고, 대화를 장기간 기억하는 '롱텀 메모리'를 활용해 맞춤형 선제안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씽큐 클로는 현재 개념검증(POC)과 베타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연말 공식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가전 넘어 공간·에너지까지 알아서 관리
LG가 바라보는 미래의 집에서는 가전의 경계도 흐려진다. 노 상무는 "가전이 공간의 한 부분으로 변화하는 트렌드가 있다"며 "키친, 리빙룸, 방, 세탁공간 등 각 공간의 맥락을 어떻게 파악하고 AI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IFA에서는 거실과 주방, 침실, 욕실을 하나의 AI홈으로 구성했다. 냉난방공조(HVAC)와 조명, 에너지까지 연결하고, 빌트인처럼 주변 가구에 밀착하는 '핏 앤 맥스(Fit&Max)' 제품군도 냉장고에서 세탁기·건조기·식기세척기까지 확대했다.
미래의 집이 관리하는 것은 사람의 편의만이 아니다. LG전자는 스마트홈 플랫폼 '호미(Homey)'를 기반으로 AI가전과 냉난방공조, 태양광 발전,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연결한 홈 에너지 관리 시스템(HEMS)을 선보였다. 집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에너지의 흐름을 통합 관리해 불필요한 전력 사용과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
개별 제품의 효율도 높였다. 세탁기는 유럽 최고 에너지 효율 등급인 A등급 기준보다 에너지 사용량을 최대 70% 더 줄였고, 식기세척기는 30%, 냉장고는 35% 낮췄다.
이 모든 기술이 향하는 종착지는 '제로 레이버 홈(Zero Labor Home)'이다. 결국 LG가 꿈꾸는 미래의 집은 사람을 기억하고 상황을 이해해 필요한 일을 먼저 제안하고 대신 실행하면서 에너지까지 관리하는 집인 셈이다.
다만 이런 미래가 LG만의 청사진은 아니다. 이번 IFA에서도 글로벌 가전업체들은 AI가 개별 제품을 제어하는 단계를 넘어 집 안의 여러 기기와 서비스를 연결하고 사용자의 생활 패턴에 맞춰 작동하는 'AI홈'을 공통적으로 미래 전략으로 내세웠다. 비슷한 미래를 그리는 경쟁사들과 비교해 LG만의 AI홈이 어떤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지는 숙제로 남는다.
데이터 확보도 관건이다. AI가 사용자를 더 잘 이해하려면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축적해야 하는데, LG전자는 이미 스마트폰 사업에서 철수했다. 하루 종일 사용자의 손에 들려 위치와 일정, 검색·소비 등 다양한 접점을 만들어내는 스마트폰 없이 가전과 씽큐를 중심으로 얼마나 풍부하고 지속적인 고객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느냐가 AI홈의 개인화 수준을 좌우할 수 있다.
노 상무는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고, 가전과 공간을 이해하면서 나에게 맞춤형 AI 에이전트 만들어주는 일에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투자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