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그곳…인간 존엄과 회복의 메시지로

[충남의 다음 페이지①-평화] 바티칸에서 발견한 충남 종교문화자원의 의미

서산 해미 천주교 순례길에 위치한 조형물. 서산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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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그곳…인간 존엄과 회복의 메시지로
(계속)

충남 서산 해미에는 이름을 남기지 않은 수많은 이들의 고통과 증언이 켜켜이 쌓여있다.

천주교 박해 당시 해미진영의 감옥은 붙잡혀온 신자들로 가득했고, 서문 밖은 시신으로 산을 이루고 피가 내를 이루었다고 한다.

참극은 생매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수십 명씩 끌고 가 산 채로 구덩이에 몰아넣고 흙과 자갈로 덮어버리는 참혹한 행위가 수없이 반복됐다. 이름과 출신지가 확인된 이는 불과 132명.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무명의 순교자'는 그 열 배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충남 공주 제민천변 황새바위에서도 공개 처형이 자행됐다. 1866년 병인박해 시기 약 1천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까지 발굴·기록된 337명의 수는 국내 단일 순교지 중 최대로 여겨진다.

당진에는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태어난 솔뫼성지가 자리한다. 오늘의 솔뫼성지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공간으로서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당진 버그내 순례길. 당진시 제공

충남의 성지들은 하나의 순례 여정으로 연결된다. 특히 힘없는 민초들이 희생된 슬픔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억압받던 이들이 신념을 지키며 '인간다운 권리와 평등'을 온몸으로 외친 인권 선언의 현장으로서도 의미를 갖는다.

순교자들은 신체를 훼손하는 물리적 폭력과 비참한 죽음 앞에서도 도리어 가해자를 용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폭력이나 죽음조차도 꺾지 못한 정신은 종교적 의미를 넘어 인간 존엄성의 상징으로도 높이 평가받는다.

해미국제성지를 비롯한 충남의 순례지는 바티칸에서도 주목하는 곳이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은 지난 2014년 해미성지를 방문한 고(故) 프란치스코 교황(1936~2025)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유흥식 추기경은 "누구나 고유의 인격과 이름을 갖고 있는데 그 이름을 남기지 않고 죽었다는 것은 교황님으로서는 굉장히 큰 충격이었다"며 "'이름 없이'라는 말을 두 번 반복하셨고, 고개를 푹 숙이고 기도하셨는데 제게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그 모습을 지금도 잊어버릴 수가 없다"고 회고했다.

이어 "미움도 복수하는 마음도 없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죽음"이라며 "지금 세계가 참 어렵다. 전쟁과 테러, 빈부격차 속 많은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고 헤매는 그런 아주 어두운 모습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희망이, 새로운 용기와 힘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각)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박수현 충남지사가 레오 14세 교황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 만남에는 유흥식 추기경이 자리를 함께했다. 바티칸 제공

충청남도 역시 충남에서만 27곳에 달하는 순례지들이 갖는 의미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박수현 충남지사는 충남의 순례지들을 연결해 세계적인 문화유산이자 '동양의 산티아고 길'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종교를 초월해 청년들에게 평화와 인간 존중,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충남도는 내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천주교 세계청년대회를 계기로 교황이 다시 한번 충남을 찾아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박수현 지사는 최근 바티칸에서 레오 14세 교황을 알현해 내년 세계청년대회 때 충남 방문을 직접 청하는 한편, 유 추기경에게도 서한문 전달을 요청했다.

박수현 지사는 "청년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메시지는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생각한다"며 "내년에 방문할 전 세계 청년들에게 바로 이런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어떻게 이것을 회복할 것인가라고 하는 아주 중대하고 무거운, 그러나 가치 있는 질문을 던지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경험은 미래세대에게 주는 중요한 유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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